[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우한 폐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중국은 물론 세계가 공포에 휘말린 가운데 최악의 판데믹(대유행)이 현실이 되고 있다. 글로벌 증시가 혼조세를 보이며 휘청이는 상황에서 세계의 공장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이 크게 흔들리는 분위기도 연출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그리고 우한 폐렴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탈중국' 행렬에 동참했다. 실제로 테크뉴스 등 중국 언론은 22일 페가트론의 베트남 공장 설립 소식을 보도하며 최근 이어지는 제조사들의 탈중국 행렬을 우려했다. 페가트론은 베트남 하이퐁 일대에 공장을 건설했으며 추가 부지 선정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페가트론은 애플 기기의 30%를 제조하는 곳이다.

이 외에도 많은 기업들이 탈중국 러시에 동참하는 가운데 중국 당국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중국을 떠나는 글로벌 기업들의 발을 묶어둘 동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렴한 인건비라는 매력이 사라진 것이 결정타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인의 GDP는 1만276달러를 기록했고, 본격적인 샤오캉 시대(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윤택한 삶을 누리는 시대)로 접어드는 분위기지만 이면에는 기류가 사뭇 다르다. 

부의 불평등을 측정하는 지니계수는 0.5에 육박하고 있으며 60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8%에 이른다. 지난해 출생률도 사상 최저를 기록하는 등 고령화 사회가 시작된 상태에서 노년층을 부양해야 하는 젊은층이 줄어들며 인건비가 올라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중국 경제가 크게 휘청이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고민이 크다. 17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전년 대비 2019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1로 집계됐으며, 이는 29년만에 최저치다. 지난해 초 2조1500억 위안 규모의 인프라 투자와 2조 위안 수준의 감세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으나 역부족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을 떠나고 있다.

제조 중심의 글로벌 기업들이 떠나도, 중국을 소비 시장으로 규정한 기업들이 남아 있다면 일정정도 문제를 해결할 소지도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1인 체제로 굳어지며 외국 기업에 대한 배타적인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 당장 홍콩 사태를 둘러싸고 서구와 충돌이 벌어지는 가운데 콘텐츠 글로벌 기업들도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중국 최고위 인사들이 연일 글로벌 기업들에게 부드러운 메시지를 던지고 있으나 현장의 분위기는 정반대로 흘러간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우한 폐렴은 소비 시장으로서의 중국은 물론, 세계의 공장 중국이라는 입지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질병의 창궐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은 사실상 소개령에 가까운 컨틴전시 플랜을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중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중국 출장 금지령이 떨어졌다. 삼성전자 쑤저우 가전공장은 현재 가동 중단 상태며 내달 10일 재가동이 예정되어 있으나, 상황에 따라 언제든 가동 일시가 달라질 수 있다. LG전자는 항저우 및 난징 등 현지 제조 거점 라인업이 모두 멈췄다. 현대기아차는 현지 제조 거점 가동을 모두 중단했으며 내달 9일까지 휴업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의 창저우 전기차 배터리 공장도 가동을 멈췄고 우한에 거점을 둔 포스코의 공장 20개도 모두 멈췄다.

다른 글로벌 기업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일본 토요타는 톈진 등 현지 5개 거점 가동을 중단했고 혼다도 모든 현지 공장 가동을 멈췄다. 미국 GM(제너럴 모터스)를 비롯해 르노, PSA 모두 현지 공장 가동 중단에 들어간 상태다. 우한이 중국 차세대 자동차 선봉장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도 불똥이 튈 전망이다.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전문가 쥐드 블랑쉐가 "중국에는 최악의 시기에 발생했다"고 말한 이유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도 우한'발' 악재가 이어질 전망이다. 우한은 반도체 공급이 아닌 수요처 측면에서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막 살아나기 시작한 메모리 반도체 업황 호조 기운이 꺾일 수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특히 화학공장의 경우 재가동에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업계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 현대차 베이징 공장. 출처=현대차

단기적 충격..그러나
우한 폐렴을 둘러싸고 글로벌 기업들이 일시적인 철수에 나서고 있으나, 그 파급력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질병에 의한 판데믹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고, 공장들은 언제든 재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최근까지 이어지던 탈중국 행렬이 이번 우한 폐렴을 기점으로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의 탈중국 러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우한 폐렴은 현지 제조 거점에 불확실성을 키웠으며,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플랜B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인 플랜B가 가동되지 않으려면 우한 폐렴에 따른 타격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결국 이번 일로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이 어떤 타격을 입는지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CDT 인사이트의 박경우 연구위원은 "우한 폐렴으로 인한 중국 제조업 타격, 글로벌 기업의 탈중국 행렬은 일시적인 현상"이라면서도 "우한 폐렴의 파급효과가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전체에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친다면, 이미 진행되고 있는 탈중국 행렬이 더욱 공고히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