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2차 세계대전 후 상호 첩보 동맹을 맺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체제에 균열이 가고 있다. 브렉시트를 앞 둔 영국이 화웨이 5G 통신장비를 전격 활용하기로 결정하면서 미국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장비 시장의 지형도 변화는 물론 외교 안보적 측면의 파급력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럽연합 내부에서는 여전히 화웨이 장비 사용을 둘러싼 이견도 존재하기 때문에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의 선택, 화웨이

영국 정부가 화웨이의 손을 잡았다. BBC 및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28일(현지시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국가안보회의(NSC)를 열어 5G 통신 네트워크 공급망에 관한 검토 결과를 확정했으며, 여기에 화웨이 장비가 들어간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민감한 네트워크 핵심 부문에서는 화웨이를 배제하고, 비핵심 파트에서도 화웨이의 점유율이 35%가 넘지 않도록 제한을 뒀으나 사실상 화웨이와 함께 5G 동행을 선택한 셈이다.

물론 영국 정부는 고위험 공급업체(high risk vendors)와 관련해 지켜야 할 지침을 발표했을 뿐이다. 여기에 화웨이와 관련된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영국 정부가 사실상 화웨이와의 협력을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이같은 내용을 최대한 신속하게 입법화한다는 방침이다.

화웨이와의 동맹을 맺은 영국 정부가 내세운 원칙은 다양성이다. 통신망 장비와 관련해 특정 업체에 의존하지 않도록 만들어 오히려 국가 안보를 지킨다는 논리다. 니키 모건 문화부 장관은 "우리는 가능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결성을 원하지만, 이는 국가 안보를 대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직은 ‘미심쩍은 화웨이’를 소위 코어 네트워크에 활용하지 않는 선에서 시장 점유율 제한까지 전제해, 다양한 협업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된다.

영국과 화웨이의 만남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지난해 12월 영국 더 메일 온 선데이는 영국의 보안 책임자들이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 안보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화웨이가 영국의 5G 네트워크를 제공 할 수 있도록 녹색 표시를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영국의 선임 보안 책임자는 더 메일 온 선데이에 “국가 안보와 영국에 대한 경제적 이익 사이의 균형은 우리가 관리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런던에는 화웨이 5G 이노베이션 & 익스피리언스 센터까지 설립된다. 화웨이는 “5G 지식과 기술 공유의 장(場)인 이 센터를 통해, 화웨이는 영국 전역에서 5G 협력을 강화하고, 5G가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전 세계에 선보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런던에 화웨이 5G 이노베이션 & 익스피리언스 센터가 설립된다. 출처=화웨이

방문객들은 대화형 실시간 게임을 체험하거나 가상 및 증강현실 속에서 좋아하는 밴드와 협연할 수 있다. 또, 스마트 제조나 헬스케어와 같은 산업에서 5G 기술로 실현되는 미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제리 왕(Jerry Wang) 영국 화웨이 대표는 "화웨이는 5G 센터를 런던에 개소함으로써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를 마련하게 됐다"며 "영국 기업과 기술전문가가 서로 긴밀히 협업하고, 5G 애플리케이션들이 더욱 폭넓게 개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존슨 영국 총리는 아예 ‘특정 브랜드를 배제할 수 없다’는 메시지까지 내보낸 바 있다. 그는 지난 1월 14일 화요일 영국 BBC 텔레비전과 인터뷰를 통해 미국 정부의 강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영국 5G 광대역통신망 설치에 필요한 장비 공급 업체에 화웨이를 배제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인터뷰에서 존슨 총리는 “영국 국민은 (현존하는) 최고의 기술을 접할 자격이 있다”며, “영국 정부는 모든 국민을 위해 기가비트 광대역통신을 도입할 의사가 있다. 만약 특정 브랜드를 반대한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지 준비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화웨이는 빅터 장 화웨이 부사장 명의의 이메일 성명을 통해 “영국 정부가 근거 없는 의혹에서 벗어나 명확한 증거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것이라 확신한다”며, “영국 의회 위원회 두 곳에서도 화웨이의 5G 장비 공급을 금지할 기술적 이유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이미 영국 정부가 코어 네트워크를 제외한 곳에 화웨이 장비를 활용하기로 결정한 상태에서, 결국 화웨이와의 동행은 시간문제였던 셈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전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다. 독일 업계 2위 이동통신사인 텔레포니카 도이치란트(Telefonica Deutschland)가 자국 5G 네트워크 망 구축을 위해 화웨이와 노키아를 장비 공급업체로 선정했다고 밝힌 장면이 눈길을 끈다. 마르쿠스 하스(Markus Haas) 텔레포니카 도이치란트 CEO는 지역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아직 장비 공급업체에 대한 정부 허가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불확실성이 가능한 빨리 해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노르웨이 최대 통신사 텔레노어는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 5G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협력업체로서 화웨이와의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고 프랑스 대표 이통사인 오렌지(Orange)의 스테판 리차드(Stéphane Richard) CEO는 화웨이 보안 논란을 일축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프랑스 국회의원들에게 "중국산 안테나를 이용해 대화하면 모든 대화내용이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도청당할 수 있다는 발상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증언했다. 미국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화웨이에 대한 루머를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포르투갈 외무장관도 지난해 자국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에게 포르투갈은 5G 네트워크에 중국 기업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현재 포르투갈 업계 선두의 알티스 포르투갈(Altice Portugal)은 작년부터 화웨이와 함께 2020년 포르투갈의 5G 상용화를 목표로 협력하고 있다.

영국은 왜 화웨이 손 잡았나

미중 무역전쟁은 최근 1단계 합의를 통해 극적인 접점을 찾았으나, 미국 정부는 여전히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캐나다에 머물고 있는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의 딸인 멍완저우 부회장은 미국 송환 여부를 가리는 현지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1차 무역합의는 이뤘으나 아직 두 나라의 최종 협의에는 시간이 다소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 정부는 2단계 협상에서 화웨이 제재를 협상카드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여전한 상황에서 미국은 복잡한 심경이다. 화웨이 장비 사용이 국가 안보에 패착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중국의 기술굴기 예봉을 꺾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해 12월 영국에 특별팀까지 파견해 ‘영국 정부의 화웨이 장비 사용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내각에 전달하기도 했다. 화웨이의 배후에는 중국 정부가 있으며, 오래된 화웨이 백도어 ‘설’까지 꺼내며 사실상 영국 정부를 압박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특별팀은 화웨이 장비 사용을 고려하는 영국 정부를 겨냥해 ‘미친 짓’이라는 격한 표현까지 쓴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이 화웨이의 손을 잡기로 최종 결정하자 미국은 아예 영국과의 근원적인 정보공유 체제도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중이다. 앤드루 파커 MI5 국장은 이를 두고 “가능성 없다”고 일축했으나 미국의 분위기는 사뭇 강경하다. AFP 통신에 따르면 미국 당국자는 영국 정부의 발표가 나온 직후 성명을 내고 “미국은 영국의 결정에 실망했다"면서 "신뢰할 수 없는 업체들이 5G 네트워크의 어떤 부분을 통제하는 데 있어 안전한 선택지는 없다"고 강조했다. 일부 외신에서는 영국의 결정이 미국에 대한 모욕이라는 감정적인 발언도 나온다.

미국의 강한 반발에도 영국이 화웨이의 손을 잡은 배경에 시선이 집중된다. 

일차적으로는 미국에 대한 반감이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나온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집권 후 강력한 보호 무역주의를 선언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오랜 우방과의 관계가 예전같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심지어 미국 정부는 중국과의 무역전쟁 합의에 다가서며 유럽과 철강 등 새로운 분야에서 경제적 충돌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러한 총체적인 분위기가 영국의 화웨이 동행을 끌어냈다는 평가다.

브렉시트를 앞 둔 영국의 특수한 상황이 화웨이와의 5G 동맹을 끌어냈다는 주장도 있다. 브렉시트 초읽기에 들어가며 영국은 새로운 경제 방파제가 필요하며, 여기에 화웨이와 중국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화웨이의 기술력에 따른 반사이익도 고려해야 한다. 

17일 세계적인 경제전망 기관인 옥스포드 이코노믹스가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 8개 주요 시장에서의 5G 네트워크 장비 공급 제한에 따른 잠재적 비용을 연구한 보고서를 발간한 가운데 5G 네트워크 장비와 인프라 시설에서의 경쟁 제한은 투자비용을 상승시킨다는 결론이 나왔다.

보고서는 “한 국가의 네트워크 구축 과정에서 5G 인프라의 핵심 공급업체를 제한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5G 투자 비용을 향후 10년 동안 8%에서 29%까지 증가시킬 것이다. (3가지 시나리오 중) 중간 비용 시나리오에 따르면, 미국은 향후 10년 동안 연간 약 10억 달러를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핵심을 요약했다.

특히 유럽의 타격이 크다. 보고서는 5G 경쟁을 제한한다면 프랑스, 독일, 영국과 같은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5G 투자비 증가율이 뚜렷한 것으로 보고서는 예상했다. 결국 보고서에 따르면 5G 시장에서 화웨이의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에, 특정 업체를 배제할 경우 소모적인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영국이 통신장비 1위 화웨이의 손을 잡은 이유다. IHS에서 발표한 2018년 글로벌 통신 장비 시장 점유율에서 화웨이는 31%로 1위를 차지했으며 3분기까지의 글로벌 5G 통신 장비 시장에서도 화웨이는 30%를 점유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글로벌 통신 장비 시장 점유율을 놓고 보면 이미 전세계의 약 1/3은 화웨이 장비를 통해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화웨이가 통신장비 시장에서 1위를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막대한 R&D 투자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EU 집행위원회가 발간한 ’2019 산업 R&D 투자 스코어보드’에 따르면 2018년 화웨이의 R&D 투자 규모는 세계 5위로127억 3960만 유로(약 16조 4393억 원)에 달했다. 매출액 대비 R&D에 투자하는 비율을 얘기하는 R&D 집중도는 13.9% 에 달한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는 이러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미국과 기술협력을 하겠다”는 자신감 넘치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 런정페이 창업주. 출처=화웨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미국이 유럽의 동맹국들에게 화웨이 장비 배제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으나 오히려 유럽과 화웨이의 교집합은 점점 커지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화웨이와의 거래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와의 거래 제한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기업들도 더 이상 화웨이와 거래가 막히면 곤란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관련된 논란은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17일 FT는 소식통을 인용해 미 국무부가 지난 몇 달간 AT&T와 버라이즌 등 13개 미 이통사 및 반도체 제조사에 화웨이 제재 동참에 참여를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IT업계는 미 정부의 조치에 따를 경우 향후 '반독점법 소송'이라는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 요구를 거절했다고 알려졌으나, 내막에는 화웨이와 멀어지면 기술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기술의 화웨이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WSJ는 24일 상무부가 미 기업이 해외 시설을 통해 화웨이에 부품을 파는 걸 어렵게 하는 규정을 만들려고 했으나, 다른 부처들의 반대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상무부는 지난해 5월 화웨이와 계열사들을 거래제한 기업으로 지정하며 미국산 부품 및 기술이 25% 이상 적용된다면 화웨이에 부품을 넘기면 안 되고, 거래 시 미 정부의 수출 면허가 필요하도록 했다. 여기서 25%의 기준을 10%로 변경해 추가 압박에 나서려고 했다. 그러나 미 예산관리국(OMB)이 국방부, 재무부 등 관련 부서에 의견을 요청한 결과 대부분 반대 의견을 표했다. 특히 화웨이와의 거래가 제한될 경우 핵심 수입원을 잃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컸던 것으로 확인됐다.

재미있는 점은 미 국방부도 화웨이 거래 제한에 반대했다는 대목이다. 국가 안보적 차원에서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이어간다는 미 정부의 의견을 고려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결론적으로 화웨이의 기술력은 강력하고, 화웨이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은 영국을 비롯해 미국 내부에서도 나오는 실정이다. 올해 대선을 앞 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할 수 밖에 없다.

다만 화웨이 낙관론을 마냥 기대하기에는 상황이 복잡한 것도 사실이다. 당장 미 정부는 2차 무역협상을 앞두고 멍완저우 화웨이 창업주의 미국 송환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당분간 이 문제로 강대강 대치를 이어갈 분위기다.

▲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출처=갈무리

WSJ이 지난해 12월 화웨이가 중국 정부로부터 최소 750억달러 상당의 지원을 받았다고 보도하는 등 여전히 반 화웨이 정서가 미국에서 넘실거리는 것도 부담이다. WSJ은 화웨이가 1988년부터 최근까지 최소 560억달러의 금융 지원을 받았으며 여기에는 중국개발은행(CDB)과 중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300억달러의 신용한도 제공, 수출 및 금융 대출로 받은 160억달러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기술부문 인센티브로는 2008년부터 최근까지 약 250억달러의 지원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정부 공식 지원금이 더해지면 총 750억달러의 지원금이 화웨이로 흘러갔다.

WSJ의 보도는 중국 정부와 화웨이가 유착하고 있다는 미국 정부의 시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각을 담은 미 언론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 미 내부에서 화웨이에 대한 견제감이 팽배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영국이 화웨이의 손을 잡고 유럽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려고 하지만, 유럽연합 일각에서는 회의적인 반응도 분명히 나온다. 실제로 호르스트 제호퍼 독일 내무장관이 화웨이를 배제하면 5G 네트워크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고 주장한 가운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티에리 브르통 산업정책 담당관이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아직은 화웨이 이슈에 대해 이견이 많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