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일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 확산 우려에 위험 자산 회피 심리가 커지고 있다. 원유, 금속 등 중국 시장에 의존하는 원자재 및 주식 등 위험 자산 회피 현상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안전 자산인 국채, 금값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염병의 추가 확산 속도와 기간에 주목하면서 추가 변동성에 대비할 것을 조언했다.

2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3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전 거래일보다 1.9%(1.05달러) 하락한 53.1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지난해 10월 15일 이후 약 3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이라는 것이 알려진 1월 7일 이후 유가는 17%나 떨어졌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사스 시기와 비교해 유가의 하락폭은 작지만, 전염병이 전세계로 확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격에 선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고 설명했다.

위험자산 중에서는 특히 원유와 금속의 가격 하락폭이 크다. 이들 원자재들은 글로벌 수요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구리 가격은 우한 폐렴 우려가 커지면서 하락폭이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재고 감소세가 증가세로 전환된 가운데 우한 폐렴 여파로 최대 소비국인 중국의 성장세 위축 우려가 신규 매도세를 자극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1월 17일부타 27일까지 7거래일 연속 하락세다.

니켈 가격도 최근 5거래일 연속 내림세를 보이면서 톤당 1만200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주석, 아연 등도 가격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앞서 미중 간 무역합의로 글로벌 무역 불확실성이 낮아지면서 제조업 경기가 회복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이에 구리, 니켈 등 비철금속의 강세가 점쳐졌지만 우한 폐렴 우려를 피하진 못했다.

▲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 추이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표 경기순환자산으로 분류되는 에너지와 산업금속 섹터, 농산물 섹터도 하락했다"면서 "역대 최대 정유제품 재고 부담 속에서 계절적인 정유시설 가동률 하락세까지 가시화됐고, 그로 인한 석유시장 공급과잉 우려가 단기 유가 하방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주식 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우한 폐렴 우려가 확산된 지난 20~27일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2.6% 하락했다.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오던 미국 증시는 우한 폐렴 우려로 지난 24일부터 3대 지수가 모두 하락세로 돌아섰다.

27일 영국의 런던 FTSE 100 지수는 우한 폐렴 확산 우려에 2.29%나 떨어졌다. 프랑스 파리의 CAC 40 지수 2.68%, 독일 프랑크푸르트 DAX 지수는 2.74% 하락하며 장을 마쳤다.

반면 위험 회피 심리에 안전자산에는 돈이 몰리고 있다.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613% 지난해 10월 10일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수익률이 떨어졌다는 것은 찾는 이가 많아 채권 가격이 올랐다는 의미다.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평가되는 금값도 상승세다.

27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2월 인도분 금은 전 거래일보다 온스당 0.4%(5.50달러) 오른 1577.40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13년 4월 이후 6년여만의 최고 수준이다.

▲ 국제 금 선물 시세 추이

엔화 환율은 달러당 108엔대까지 고점을 높였다. 이는 1월 7일 이후 최저 수준이다. 시장 리스크 회피 심리가 높아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인 엔에 매수가 몰렸다.

앞으로의 추가 변동성은 확산속도 및 기간에 달려 있다는 전망이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세계 각국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확산 차단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초 미국-이란 중동불안처럼 '찻잔 속의 태풍'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중국 춘제 이후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지면 제 2의 사스사태로 비화될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예상했다.

김일구 연구원은 "사스 시기에는 제 2, 제 3의 슈퍼 전파자가 등장하면서 전염병의 확산 속도가 빨라질 때마다 유가의 하락폭이 더 커졌는데, 이번에도 감염 확진자 수의 증가가 크게 둔화될 때까지는 유가의 추가적인 하락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