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쓴 <총, 균, 쇠>는 인류의 다양한 문명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며 역사를 음미하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과감하게 예측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저자의 인류 역사에 대한 인식이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는 지금까지 갖은 고난을 이겨내며 문자 및 기술, 정부의 등장 등 많은 진화를 거듭했으나 무기와 학살, 전쟁을 비롯해 질병이라는 축복받지 못한 사생아들도 잉태했다. 결국 인류의 역사는 2차원의 직선이 아니라 롤러코스터와 비슷한 3차원의 굴곡이라는 해석이다.

특히 질병, 즉 바이러스와 인류의 전쟁에 시선이 집중된다. 진화생물학자인 제러드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인류는 아직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지 못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막대한 희생이 유발되는 치열한 국지전을 치르고 있다.

사례는 많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인 훈족은 당나라의 대대적인 토벌과 천연두라는 급성 바이러스에 타격을 받아 인구의 30%가 사망하며 서쪽으로 이동, 로마제국 멸망이라는 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뒤흔들었고 찬란했던 아즈텍 문명의 멸망도 유럽의 신식무기와 내부분열, 여기에 천연두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따른 체계붕괴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14세기 처음 유럽에서 발병한 흑사병은 최대 6000만명의 희생자를 낳아 최악의 역사로 기록됐다.

20세기도 마찬가지다. 1918년 발병해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 1968년 100만명을 희생시킨 홍콩 독감, 2002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스(SARS)는 총 774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또 2015년 국내에 상륙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는 185명의 환자, 38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인류가 유일하게 완전정복한 바이러스는 천연두가 유일하다는 말까지 나오는 가운데, 여전히 치열한 전투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최근 이 처절한 전투의 최전선에 새로운 무기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바로 빅데이터를 통한 인공지능 기술이다.

우한폐렴, 인공지능이 처음 감지했다
중국 우한에서 발병한 우한폐렴, 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국에서 3000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4번째 확진자가 나왔다. 현재 우한폐렴은 중국을 넘어 미국과 프랑스 등 세계로 번지며 판데믹(대유행) 현상을 보이고 있다.

흥미를 끄는 대목은 우한폐렴 판데믹 최초 경고다. 세계보건기구인 WHO가 6일 세계의 병원격인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CDC에 우한폐렴 판데믹 경고를 처음 한 가운데 이미 지난해 12월 31일 먼저 비슷한 경고를 한 곳이 있다. 바로 캐나다 건강 모니터링 플랫폼 블루닷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는 블루닷은 우한폐렴의 판데믹 조짐이 보이던 시기 글로벌 항공사의 발권 데이터에 주목했다. 이어 언론보도 등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우한폐렴의 확산추이를 예측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중국 정부가 우한폐렴의 확산을 막으려는 노력보다 이를 덮으려는 시도에 나서며 정보가 통제되는 사이, 블루닷은 웹상에 흐르는 데이터를 통해 가장 정확한 예측을 가장 빠르게 한 셈이다. 갖은 음모설이 나도는 소셜네트워크 데이터는 무시한 상태에서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모아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판데믹 전조를 잡아냈다.

인공지능 기술은 단순히 '경보'차원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 최전선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최고의 방사선과 의사 4명과 현지 스타트업 엔리틱이 개발한 인공지능 의사는 0%에 가까운 진단 오류율을 자랑해 최근 학계를 놀라게 만들었으며 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병원 송영구, 이경화(이상 감염내과), 동재준 교수(가정의학과) 연구팀과 인공지능 전문기업 셀바스 AI는 10개의 임상변수를 활용해 폐혈증을 조기에 측정하는 플랫폼을 공개하기도 했다.

유럽의 인공지능 수도로 불리는 영국은 보건분야와 인공지능의 결합에 특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당장 영국 이노베이트 UK는 인공지능과 ICT 기술의 발전을 통해 보건분야의 발전을 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무려 500억원의 금액을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구글 및 애플 등 다양한 ICT 기업들은 헬스케어 시장에 전사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국내의 네이버와 카카오 등 기업들도 다양한 투자를 하고 있다. 최근 네이버의 기업형 액셀러레이터(CVC, Corporate Venture Capital)인 D2SF(D2 스타트업 팩토리)가 디지털 헬스 분야의 스타트업 4곳에 투자하기도 했다.

스타트업 유라이크코리아도 눈여겨 볼 기업이다. 축우에 IoT(사물인터넷) 기술이 집약된 바이오캡슐을 경구 투여해 가축의 체온, 활동량 등을 측정, 개별 데이터를 수집한 후 해당 개체의 질병, 발정, 분만 등을 진단하고 관리하는 라이브케어를 공격적으로 출시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말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지난해 7월 기준 가축질병 빅데이터 5억개를 확보했으며 글로벌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유라이크코리아 김희진 대표는 “지금은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 유라이크코리아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출처=유라이크코리아

콜라보가 중요하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인공지능이 빅데이터라는 신형엔진을 바탕으로 무서운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도 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기초가 튼튼한 과학기술 강국 ▲DNA를 기반으로 혁신을 선도하는 AI 일등 국가 ▲미래 성장을 견인하는 디지털 미디어 강국 등 3대 전략을 공개하며 바이오헬스 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상태다.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신약개발에 2조 8000억 원을 투자해 신약수출 18조원 달성을 이룬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최근 데이터 3법이 통과된 가운데 이러한 인공지능 플랫폼 전략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도 효과적인 '승률'을 보장할 수 있다.

다만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만으로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 강력한 ICT 기술을 통해 인류의 숙적 에볼라 바이러스를 극복하려는 행보를 보이는 GVP(Global Virome Project)가 가동되고 있으나, 여기에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바이러스의 다양한 변신을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시드니 대학의 에드워드 홈즈 연구팀이 GVP가 보여주는 ICT 만능주의에 제동을 걸며 국제 의학계의 논란이 벌어진 이유다.

결국 협업이다. 지난해 대한영상의학회 학술대회(KCR)에서 많은 의사들은 "우리의 적인 인공지능이 아닌 질병"이라는 대전제에 동의했다. 인공지능이 의사의 입지를 흔들 수 없다는 아집도 일부 보이지만, 여기에는 인공지능이 모든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만능통치약이 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인식과 맞닿아 있다. 아직 데이터의 양과 자본의 밀도, ICT 및 인공지능 기술력은 성장의 여백이 크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공지능을 다루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이를 통한 콜라보가 최선의 답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 김경환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AWS

김경환 서울대병원 교수는 지난해 AWS 서밋 서울 2019 현장에서 <이코노믹리뷰>와 만나 클라우드와 의료현장의 콜라보를 촉구하며 사이앱스의 존재감을 어필한 바 있다. 사이앱스는 미국 IT 기술 기업인 사이앱스가 개발한 정밀의료 플랫폼이며 의료진이 환자의 임상 및 게놈 프로파일에 기반한 정밀 암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재 서울대병원은 사이앱스 가동을 AWS의 클라우드로 지원하고 있다.

ICT 기술과 인간의 협업이 필수라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의료 현장에서 클라우드를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면서도 “사이앱스를 AWS로 가동하는 상황에서 드는 생각은 오히려 ‘의학계가 지금까지 클라우드 도입을 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로 좁혀진다. 다양한 강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물론 사이앱스라는 플랫폼만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며 제대로 된 팀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는 단기간에 구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면서 “우리만의 활용 노하우를 발전시켜 지금에 이른 것”이라고 말했다. 답은, 콜라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