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목동물+인간 2007-4, 2007, 한지에 수묵채색, 112×145.5cm/Nomadic Animals+Human 2007-4, 2007, ink and pigment on hanji, 112×145.5cm

허진 회화 이미지는 실체도 허상도 아니면서 실재의 일부가 되는 그 무엇으로 들뢰즈가 말하는 ‘형상(figure)’의 개념과 가깝다. 형상은 구상이나 재현과 달리 어떤 구체적 서술이나 설명을 허락하지 않고, 대상으로부터 고립시켜 오직 신체감각의 직접성을 통해서만 구현되는 무엇으로 지시할 모델이 없는 이미지이다.

이처럼 허진(ARTIST HUR JIN,許塡,허진 작가,한국화가 허진,HUR JIN,허진 교수,허진 화백,A Painter HUR JIN)의 회화는 경험적 재현에서 출발하면서 의미론적인 상징성과 상투적인 서술성을 거부하고 하나의 순수한 ‘형상’으로 귀착되는 과정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유목동물+인간 2007-1, 2007, 한지에 수묵채색, 130×162cm/Nomadic Animals+Human 2007-1, 2007, ink and pigment on hanji, 130×162cm

이러한 ‘형상으로서의 회화 이미지’는 경험과 관념, 구상과 추상, 내재와 초월, 의식과 무의식, 관심과 무관심이라는 인간 이성이 설정한 이분법적 경계를 내파(implosion)시켜 실체와 관념 사이에 또 다른 실재로서 존재하는 이미지의 세계를 복원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이미지는 재현과 달리 어느 특정 대상에 종속되지 않는 동시에, 초월적이고 관념적인 추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현실을 구성해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미학적 의미를 지닌다.

△최광진(미술평론가, 理美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