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형 아이템 피로감 느긴 유저들 배틀패스 인기
모바일도 확산, 美 앱마켓 매출 톱100 중 20% 적용
배틀패스,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과금 평가

[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도박’. 일부 PC온라인·모바일 게임에 씌워진 오명이다. 게임에서 유료로 판매하는 확률형 아이템이 도를 넘어서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 미만의 극악의 뽑기 확률, 반복 구매 유도, 페이투윈(Pay-to-Win) 시스템 등이 그 주요 이유로 꼽힌다. 부분유료화 BM(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한 게임에서 이 같은 불만이 나오는데,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임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해야 하는 게임사와 지나친 과금 스트레스가 불만인 유저 사이에서 나타나는 대립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뜨거운 논쟁거리다. 과금 유도가 지나치다는 공감대가 일각에서 형성된 가운데 이에 대해 정부가 직접 규제를 해야 한다는 국내외 법안 발의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한국은 현재 업계 자율규제로 게임사가 아이템의 뽑기 확률을 공개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건전한 생태계 조성을 유도하고 있다.

배틀패스 BM, 가능성 보인다

▲ 포트나이트 이미지. 출처=에픽게임즈

가챠, 랜덤박스, 루트박스로도 불리는 확률형 아이템 BM의 대안은 없을까?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이달 발간한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2020년 1+2월호)’에 따르면 최근 ‘배틀패스’ BM이 해외 게임 시장을 중심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배틀패스는 특정 기간인 ‘시즌’ 동안 정해진 금액을 결제한 유저들에게 꾸미기 아이템, 미션달성 시 차등보상 등을 주는 시스템이다. 게임마다 명칭을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기도 한다. 배틀패스는 유료 결제이긴 하지만 확률성이 없고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야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유저들도 합리적인 과금 체계로 인정 하는 분위기다.

특히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는 배틀패스의 수익성을 증명했다. 슈퍼데이터에 따르면 배틀패스가 주력 BM인 포트나이트는 2018년 매출 24억달러(한화 약 2조8000억원)를 기록하며 전세계 부분 유료 게임 매출 부문 1위에 올랐다. 포트나이트는 하루 최대 5000만달러(한화 약 580억원)를 벌어들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펍지의 배틀그라운드 또한 기본적으로는 패키지 판매 게임이지만 배틀패스 개념의 BM으로 지속적인 수익을 도모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보고서를 통해 “이미 다양한 게임들이 배틀패스를 수익모델로 적용하고 있다. 특히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선제적으로 규제 움직임을 보였던 유럽권을 공략 하는 PC 및 콘솔 분야 게임들 상당수가 확률형 아이템 대신 배틀패스 를 적용하는 추세가 강화되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모바일 배틀패스 빠르게 도입…美 매출 톱100 도입 비중 1년새 3%→20%

▲ 미국의 매출 100대 모바일 게임 내 배틀패스 적용 게임 비중이 크게 늘었다. 출처=게임리피너리, 한국콘텐츠진흥원

게다가 당초 PC·콘솔 게임에 주로 적용되던 배틀패스가 지난해부턴 글로벌 인기 모바일 게임에도 발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해외 게임 분석툴 게임리피너리에 따르면 미국 앱마켓 매출 톱100 게임 중 배틀패스 BM을 적용한 게임은 2019년 말 기준 20% 수준으로 나타났다. 일년 전인 2018년 말에는 2%에 불과했다. 또 다른 주요 게임 시장인 중국에서도 매출 톱100 모바일 게임의 배틀패스 도입 비중은 2018년 말 3%대에서 지난해 말 30%대로 급증했다.

‘클래시오브클랜’ ‘클래시로얄’ ‘포트나이트’ ‘펍지 모바일(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콜오브듀티 모바일’ ‘라이즈 오브 킹덤즈’ ‘마블콘테스트오브챔피언스’ 등 국내외에서 높은 인지도와 함께 장수하고 있는 게임들이 배틀패스를 도입했다. 국내 주요 게임사에서도 신작에 배틀패스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크로스 플랫폼으로 출시될 예정인 넥슨의 ‘카트라이더:드리프트’의 주력 BM은 배틀패스이며, MMORPG와 배틀로얄 장르를 융합한 넷마블의 모바일 게임 ‘A3:스틸얼라이브’에도 배틀로얄 콘텐츠 부문에 배틀패스 상품을 준비 중이다.

배틀패스의 인기가 확장되고 있는 이유는 게임 자체는 무료로 제공하며 유저의 심리적 장벽을 무너트리되, 합리적인 가격에서 더 큰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서비스 방침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가령, 이와 비슷한 BM은 게임이 아닌 다른 플랫폼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유튜브 프리미엄, 에버노트 프리미엄, 각종 모바일 앱 등이 그 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배틀패스는 기존에 프리미엄 형태로 서비스되고 있는 게임들에 적용하는 것이 비교적 쉽다. 게임은 무료로 이용하고, 더 큰 즐거움을 얻으려면 돈을 내라는 프리투플레이 모델의 기본 원리에 위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배틀패스가 게임 수명 연장에도 긍정적이라는 말도 나온다. 배틀패스 결제를 한 유저는 게임을 지속적으로 플레이를 하도록 유도되기 때문이다. 이는 유저 접속 시간 증가로 이어지며 게임 활성화와 수명 연장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배틀패스,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 정착 가능할까? 

▲ 서울 다이너스티 플레타 선수가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을 플레이 하고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배틀패스 BM 영향력은 여전히 미미하다. 우선 MMORPG 장르의 매출 비중이 매우 높은데, 해당 장르에서는 배틀패스 BM으로 성공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그나마 앱마켓 매출 톱10에선 중국산 SLG(시뮬레이션게임) 라이즈오브킹덤즈가 대표적 사례다.

시장의 경쟁 과열탓에 모바일 게임의 수명이 짧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때문에 현재 합리적이라고 평가받는 배틀패스 BM도 결국 유저 착취의 형태로 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그러므로 중소형 게임기업 입장에선 최소 한의 콘텐츠로 단기간에 수익을 내고 새로운 게임으로 넘어가야 한다 는 유혹이 항상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이 점점 더 소비자 를 착취하는 구조로 진화한 이유를 여기에서 보고 있다. 모바일게임에 도입된 배틀패스 역시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