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을 집요하게 흔들었던 미국계 행동주의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본전도 찾지 못하고 철수한 사실이 23일 확인됐다. 한 때 경영권 분쟁을 일으키며 광폭행보를 보였으나 주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지난해 매출 100조원 달성에 성공한 현대차 입장에서는 '앓던 이'가 빠진 셈이다.

▲ 엘리엇이 현대차 지분을 판 것으로 보인다. 출처=현대차

엘리엇, 지분 모두 팔아
엘리엇은 지난해 말 보유하고 있던 현대차 지분을 모두 처분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2.9%, 기아차 2.1%, 현대모비스 2.6%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가운데, 이를 모두 처분한 셈이다. 엘리엇이 지분을 사들이던 당시와 현재의 내려간 주가를 고려하면 상당한 손실을 봤을 가능성이 높다.

엘리엇은 2018년 2월 현대차가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하고 순환출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하자 그 해 3월 제동을 걸며 전면에 나섰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저지에 나서는 한편 2016년에는 삼성전자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쪼개고 30조원의 배당을 해달라며 압박하는 등, 국내 기업과는 악연이 많은 사모펀드다. 지난 2001년 아르헨티나를 디폴트에 빠뜨린 주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엘리엇은 현대차의 행보을 걸며 지분 1억달러를 확보했으며,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하는 한편 8조3000억원의 고배당을 요구했다. 엘리엇은 성명을 통해 “현대차가 회사와 이해 관계자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기업 지배 구조개선, 대차 대조표 최적화와 각 회사의 자본 수익률 증가 방법에 대한 로드맵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분위기가 험악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나서 "엘리엇의 요구는 부당하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합병 후 지주사 전환 요구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한다"고 지적했으나 현대차는 같은 해 5월, 결국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했다. 

정의선 당시 현대차 부회장은 입장문을 내고 “이번 방안을 추진하면서 여러 주주분들 및 시장과 소통이 많이 부족했음도 절감했다”면서 “현대차그룹은 더욱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여러 의견과 평가들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사업경쟁력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보완하여 개선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현대모비스 중심의 개편안이 실현되면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의 순환출자 구조가 해소되고 정의선 부회장의 지배력은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여기에 엘리엇이 개입하며 사태가 복잡하게 흘러간 셈이다.

엘리엇은 2018년 9월 다시 포문을 열었다.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차 등 3사에 서신을 보내 개선된 기업 구조와 자본 관리와 주주 이익 환원 최적화는 물론 다양성과 전문성을 갖춘 이사회 구성의 개선 등을 요구했다. 당장 논란이 커졌다. 특히 마지막 이사회 구성 개선은 결국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이사회에 '심겠다'는 뜻이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전투는 지난해까지 이어졌다. 결과는 현대차의 압승이다. 현대자동차 주주총회가 지난해 3월 열린 가운데 엘리엇의 요구조건은 모조리 거부됐다. 사외이사 선임에 있어 엘리엇이 내세운 후보들인 존 Y. 류 베이징사범대 교육기금이사회 구성원 및 투자위원회 의장, 로버트 랜들 매큐언 발라드파워시스템 회장, 마거릿 빌슨 CAE 이사 등은 모두 탈락했다.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은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신규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며 입지를 탄탄히 했다.

이런 가운데 엘리엇은 결국 손실을 보더라도 현대차에서 손을 떼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 현대차 51회 주총에서 엘리엇이 완패했다. 출처=이코노믹리뷰DB

'리스크 털었다'
현대차는 22일 지난해 105조7904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당기순이익은 3조2648억원, 영업이익은 3조6847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영업이익률은 3.5%다. 극적인 반등에 성공하며 매출 100조원 클럽에 들었다. 여기에 엘리엇 리스크도 사라지며 앞으로의 불확실성을 덜어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높은 매출을 기록했으나 일각에서는 완성차 업계가 저성장 기조를 이어가고 있으며, 차량공유 플랫폼의 등장이 이어지는 등 현대차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경영권 자체를 흔들었던 엘리엇이 사실상 손을 때면서, 현대차의 행보에 여유가 생긴 것은 사실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