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기업이 판매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가 달라지고 있다. 고객들이 단순한 가치만 찾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시간이나 편리함은 물론 있어빌리티('있어보인다'와 'Ability(능력)'를 합친 단어)를 적극적으로 찾는다. 기업이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무형의 가치 극대화
스마트폰으로 모든 작업을 할 수 있는, 포노 사피언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혜가 있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라는 단어를 지혜가 있는 전화기라는 뜻으로 변주해 만든 단어며, 스마트폰이 없으면 삶을 영위할 수 없는 현대인을 뜻한다.

그 말 그대로 스마트폰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으나, 최근에는 또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해 O2O 플랫폼 비즈니스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아예 생활밀착형 서비스가 강화되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고객들은 굳이 세탁기를 사지 않고 앱을 통해 세탁을 대행하거나,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고 차량공유 플랫폼을 찾는다. 장을 보지 않고 배달의민족 B마켓, 마켓컬리를 찾으며 심지어 심부름도 시킨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먼저 앱 사업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플랫폼 비즈니스를 스마트폰 기능을 통해 순식간에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핵심은 결국 중개며,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일이다. 모든 O2O 기업들이 온디맨드 기업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다만 지금까지는 이 중개의 기술이 허술했다. 대부분 오프라인에 중개 플랫폼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특히 공급자의 경우 직접 오프라인과 연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이러한 번거러움은 사라지고, 또 수요와 공급의 만남은 더욱 즉각적이고 유연해졌다. 이제 앱 사업자는 공급자 생태계만 확보한다면 다양한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전개할 수 있게 됐다.

다른 측면으로 보면, 산업 구조 개편에 따른 후폭풍도 생각해야 한다. 당장 런드리고같은 세탁 대행 앱이나, 우버 및 카카오 모빌리티와 같은 차량공유 플랫폼은 기존 산업의 파괴적 후폭풍을 수반한다.

런드리고의 예를 들면, 기존 삼성전자 및 LG전자 등 백색가전 시장에 근본적인 공포를 초래할 수 있다. 물론 지금 단계에서 이러한 공포를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에 많은 전문가들도 동의하고 있다.

▲ 프로젝트 프리즘이 발표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대책은 이미 나왔다.

삼성전자는 밀레니얼 세대를 적극 공략하고 있다. 런드리고 쇼크와 같은 현상이 1인 가족, 즉 젊은층을 대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원점타격과 비슷한 개념이다. 프로젝트 프리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프로젝트 프리즘은 단조로운 백색 광선을 갖가지 색상으로 투영해 내는 프리즘처럼 삼성전자가 밀레니얼 세대를 포함한 다양한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이 반영된 ‘맞춤형 가전’ 시대를 만들어 가겠다는 뜻을 담았으며,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프로젝트 프리즘을 발표한 바 있다.

비스포크를 통해 일차적인 로드맵이 나온 바 있다. 비스포크는 맞춤형 양복이나 주문 제작을 뜻하는 말로 되다(BE)와 말하다(SPEAK)라는 단어의 결합이다. 이 단어를 냉장고에 도입해 도어 패널의 색상, 소재, 디자인을 고객이 직접 고르게 만다는 마법을 보여준 바 있다.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은 “세대변화, 고령화, 도시화의 3대 트렌드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해 주기 위해서는 올바른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프로젝트 프리즘을 만들었다”면서 “핵심은 공급자 위주의 제품 개발에서 다양한 소비자 위주의 제품 개발로의 전략 수정”이라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프로젝트 프리즘은 ‘나만의 가전’을 선호하는 밀레니얼의 취향을 ‘저격’하는 한편, 딱딱한 제품 라인업에 유연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생활밀착형 플랫폼으로 끌어내려는 삼성전자의 전략으로도 풀이된다.

CES 2020에 등장한 큐브 냉장고가 단서다. 보관하는 내용물에 따라 와인큐브, 비어큐브, 뷰티큐브 등 세 종류며 최적의 온도를 설정해 보관한다는 설명이다. 침실이나 주방, 거실 등 집안 어디에나 자유롭게 두고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이는 프로젝트 퓨리즘이 지향하는 일종의 모듈형 가전제품 라인업 건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단독으로 설치하거나 위아래로 쌓을 수도 있어 공간 활용이 용이하고 스타일리시한 인테리어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는 모두 밀레니얼, 즉 굳이 백색가전을 사용하지 않는 1인 가족을 위한 킬러 콘텐츠 상품으로 분류된다.

▲ 큐브 냉장고가 보인다. 출처=삼성전자

신발관리기도 눈길을 끈다. 집에서도 쉽게 신발을 청결하게 관리할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이라는 설명이다. 신발관리기에 신발을 넣어두기만 하면 탈취는 물론 습기까지 제거해 최적의 상태로 보관할 수 있으며 장마철이나 눈이 많이 오는 날에도 외출 후 간단하게 신발을 말릴 수 있다. 이 역시 밀레니얼 대상이며, 일반 가정을 겨냥한 제품으로는 보기 어렵다.

한편 '있어빌리티'의 갸념도 중요하다. 이제 고객들은 단순히 제품이나 서비스가 주는 강점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징성에도 특히 주목한다. 이를 위해서는 웃돈을 주고라도 구입하려고 한다. 모든 것이 연결된 초연결 사회에서 '자랑'을 위한 다양한 통로가 마련된 점이 큰 영향을 미쳤고, 이는 역으로 현재의 우리 삶이 더욱 팍팍해지고 어렵기 때문에 나온 반작용이기도 하다.

판매 방식을 바꿔라
인기 웹툰작가 이말년의 <잠은행>편에는 말 그대로 인간의 잠을 매개로 거래하는 은행이 나온다. 유머코드로 소급되는 장면이지만, 시간과 편리함을 구매하는 지금의 시대를 돌아보면 간단히 웃어 넘길 일이 아니다. 이제는 무형의 재화도 적극적으로 소비되는 가치소비의 시대기 때문이다.

기존 앱 사업자의 생활밀착 서비스가 밀레니얼을 중심으로 가동되며 기존 사업자들이 위기를 겪는 가운데, 이미 삼성전자 등은 그들의 취향을 정조준한 다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 이상의 가능성은 없을까?

차랑공유 시대가 열리며 자동차를 구매하지 않는 시대가 되자, 직접 차량공유 시장에 뛰어든 현대자동차의 행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차사업의 저성장 기조를 극복하기 위해 아예 새로운 모빌리티 산업으로의 진격을 택했다. 또 구독경제라는, 팬덤을 유치할 수 있고 안정적인 생태계를 지킬 수 있는 앱 플랫폼 사업자의 전략도 강하게 추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당분간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전쟁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배우며 새로운 판매 방식을 창출하는 쪽으로 시장이 정리될 소지가 충분하다. 이와 관련된 전투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IBM은 "디지털 상호 작용이 소비자의 쇼핑 방식에 영향을 미치므로, 유통업계는 매장의 혁신을 통해 모든 채널에서 일관성 있는 브랜드 경험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소비자의 기대에 계속 부응할 수 있도록 기존 매장 환경에 새로운 기술을 신속히 구현하고 통합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