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이 20일(현지시간) 돌봄노동에 관심을 가질 시간 : 무급 저임금 가사노동과 세계적 불평등 위기 보고서를 발표한 가운데 커지는 부의 불평등을 두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의 불평등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다. 전 세계 억만장자 2100여명이 세계 인구의 60%에 해당하는 46억명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 빈곤층 여성이 매일 125억시간 무급 돌봄노동을 하고있다.

커지는 부의 불평등 문제는 결국 자본주의의 종말 가능성을 시사하며 이미 우리는 2000년대 후반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와 월가 1% 시위로 위기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기업, 즉 탐욕스러운 기존 기업에 대한 불만이다. '돈을 벌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업'에 대한 근본적이고 회의적인 논란이 증폭되는 이유다.

기업들도 고민하고 있다. 부의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고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업의 사회적 가치
기업은 일반적으로 이윤을 추구해 영속성을 전제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가동하지만 이는 순전히 홍보, 나아가 위기관리 인프라의 한 영역으로 치부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지고 있다. 이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더욱 확장해 적극적으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선한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곳은 SK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공격적으로 시도하며 지금까지 다른 기업들이 보여주지 못한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 CEO들을 대변하는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은 최근 포용적 번영(inclusive prosperity)을 강조하며 기업은 모든 이해당사자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주주 이익만이 최우선 가치가 아니며, 기업의 사회적 가치가 그 이상의 목표라는 주장이다. SK의 사회적 가치도 이러한 트렌드의 연장선에 있다. 나아가 기업의 사회적 가치는 지속가능한 연속성의 가치와도 일맥상통한다.

최태원 회장은 최근 북미 지역 심장부인 워싱턴 DC에서 "사회적 가치는 일자리 창출, 세금납부, 교육제공, 친환경 재료 사용 등을 통해 다양하게 창출할 수 있다”면서 “SK는 지난2018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24억 달러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확실한 정의를 내리는 작업이다. 단순히 '시혜'의 개념에 머물면 선한 파급력 자체가 반감되고 의미도 퇴색되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멜트 전 회장은 2016년 자기의 저서에서 “기업의 사회적 활동은 다분히 전략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돈을 벌어 사회에 ‘베푸는’ 개념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활동도 기업의 경영처럼 냉정한 분석과 판단에 기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SK도 비슷한 연장선에 있다. 정현천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회 팀장은 사회적 가치를 두고 ‘정체를 잘 모르겠다’는 일각의 반응에 대해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팀장은 “사회적 가치 창출을 시작하며 일각에서는 그 실체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지만 이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개념정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2019 기업시민 포스코 성과공유의 장’에서 "기업이 세금을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트렌드가 생겼다”며 “사회문제가 매우 심화하고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기업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사회적 가치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이는 기업의 기본 임무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는 “구글은 개발자 연례 콘퍼런스에서 슬로건과 함께 장애인 접근성만 이야기 했다"면서 “기업의 생존은 사회적 가치 창출에 달려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제는 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확한 사회적 가치 구현을 위해서는 그 수단도 명확해야 한다. SK는 이러한 사회적 가치 구현을 위해 이를 측정하는 가이드 라인을 구성하는 한편 SK하이닉스의 에코 얼라이언스, SK이노베이션의 그린 밸런스 로드맵을 가동하고 있다. 그룹만 봐도 국내 지주사 최초로 주주총회 분산 개최, 전자투표제 실시로 이사회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ESG(환경경영·사회책임경영·지배구조) 실천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 계열사별로 상황에 맞는 사회적 가치 창출 공헌도가 측정되는 등, 정량적 평가에도 집중하고 있다.

▲ SK의 사회적 가치가 설명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세상이 변하고 있다
SK가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생존의 문제라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고객은 가치소비에 익숙해지고 있으며, 가능하다면 선한 영향력을 가진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에 지갑을 열려고 한다. 고객의 개념도 변한고 있다는 뜻이다. 고객은 단순히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사람만을 의미했으나, 이제는 그 개념이 훨씬 넓어진다. 

자기의 소비생활이 어떤 긍정적인 사회적 가치를 끌어낼 수 있는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고객은 사회 전체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정현천 팀장은 이를 “전 사회가 이해 관계자가 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최근 각 기업들이 준법경영위원회를 구성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신설과 관련된 조직구성, 향후 운영방향 등을 밝혔다. 위원장은 김지형 전 대법관이다.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겸 비상근직으로 삼성 준법감시위 위원장직을 겸임한다. 김지형 위원장은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 설립에) 정말 진정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은 저만의 우려가 아니다"라며 "완전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갖고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총수의 확약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재용 부회장과) 직접 만나서 약속과 다짐을 받았다"라고 강조했다.

KT도 비슷한 기구를 마련한다. 구현모 CEO 체제로 전환하며 그동안 비상설로 운영하던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이를 이끌어갈 수장으로 최고준법감시책임자(CCO, Chief Compliance Officer)를 이사회 동의를 얻어 선임할 예정이다. CCO는 경영 전반과 사업 추진에서 적법성과 제반 규정준수를 선도해 KT 준법경영의 수준을 글로벌 기준에 맞게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는다.

물론 삼성과 KT의 준법경영과 관련된 기구는 또 다른 포석이 깔린 행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 자체가 기업의 준법경영을 강조하며 고객의 마음을 잡으려는 시도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역시 기업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행보이자, 변화된 고객의 가치소비 패턴에 부합되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