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과 결별 나이키, 플랫폼 비즈니스 종말?

콘텐츠가 플랫폼 운명 선택하는 것은 사실

플랫폼 자체 연속성에 주목해야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지난해 세계 최대 스포츠 의류 신발 브랜드인 나이키가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글로벌 이커머스의 최강자인 아마존에서 자사의 모든 상품을 철수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나이키는 소비자와 직거래하기 위해 아마존에 상품을 공급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는 전체 물량의 30%를 직접 판매한다고 밝혔다.

업계 일각에서는 나이키와 아마존의 결별을 두고 거대 플랫폼의 종말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ICT 혁명 1세대를 이끌었던 플랫폼 비즈니스의 종말이며, 이제 개인과 개인이 연결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사실일까?

▲ 나이키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출처=나이키

콘텐츠가 플랫폼 압도하는 시대
5G 시대가 열리며 통신사들은 망 네트워크 기술 고도화에 나서는 한편, 이른바 탈통신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단순히 네트워크라는 고속도로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을 위한 다양한 휴게소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는 한편 이 과정에서 고속도로, 즉 네트워크를 보유한 자사의 강점을 가감없이 발휘하기도 한다. 네트워크 슬라이스의 개념이 등장하며 망 중립성의 근본적인 개념까지 뒤흔드는 전사적인 노력이 이어지는 이유다.

단적인 사례가 SK텔레콤이다. SK텔레콤은 이제 단순한 통신사가 아니라 SK그룹 ICT 역량을 결집시킨 종합 솔루션 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웨이브 출시 및 증강현실 앱 점프, 나아가 보안 역량과 모빌리티 전반의 다양한 강점을 체화하며 이제는 사명까지 바꾸려고 준비하는 중이다. 물론 여기에는 지배구조개편이라는 큰 틀에서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으나, 인공지능 등 다양한 ICT 기술을 최종 먹거리로 삼으려는 박정호 사장의 야망이 더욱 크게 넘실거리고 있다.

박 사장은 최근 CES 2020 현장은 물론 13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2020년 과학기술인‧정보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회사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시키는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박정호 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SKT

통신사들의 이러한 탈통신 전략, 나아가 비즈니스 모델 변화까지 고려하는 과격한 행보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기존 플랫폼 사업자의 한계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통신사도 마찬가지지만, 구글 및 페이스북 등 1세대 ICT 플랫폼 사업자들은 '장터'를 만들어 이용자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일종의 수수료를 받아 생존하는 모델을 정착시킨 바 있다. 그러나 이제 단순히 사람들을 모아 장터를 제공하고 자리세와 통행세를 받는 방식으로는 장기적인 생존이 어렵게 됐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콘텐츠의 다변화, 나아가 매력적인 플랫폼 만으로는 더이상 고객에게 어필할 수 없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의 숫자가 다양해지며 각각의 경쟁력을 보유하는 상황에서, 하나의 플랫폼으로 이를 전부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OTT 시장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시장에는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디즈니 플러스 등이 활동하며 국내에는 웨이브, 왓챠, 시즌, 티빙 등이 활동하는 가운데 이들은 각기 다른 콘텐츠 '색'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성인 드라마, 왓챠는 국내 영화, 디즈니 플러스는 아동 콘텐츠 등 본연의 콘텐츠 특성을 가진다.

이들은 각자의 플랫폼 정체성에 맞는 콘텐츠를 '다량'으로 확보하기 위해 쩐의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 매체인 더 헐리우드 리포터는 17일(현지시간) 시장조사업체 BMO 캐피털의 자료를 인용, 넷플릭스가 올해 173억달러의 투자를 통해 콘텐츠를 수급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시장조사업체 DMC미디어는 디즈니가 지난해 미국에서 무려 187억원을 콘텐츠에 투자한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아마존이 미국에서만 58억달러를 콘텐츠에 투자한 가운데 상당금액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몫일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미국 드라마 사상 최대 투자금인 15억달러가 들어간 TV판 <반지의 제왕> 확보에 성공했다. 컴캐스트는 지난해 159억달러, AT&T는 122억달러를 콘텐츠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적으로 콘텐츠의 색이 플랫폼의 우월적인 지위를 일부 무너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 연장선에서 플랫폼 사업자들은 구독경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플랫폼 생명력을 지키려 노력하는 한편, 콘텐츠의 다양한 색을 품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기서 정해진 콘텐츠 색은 잠재력의 제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파워를 의미함과 동시에 플랫폼의 성격마저 결정하는 권력을 상징한다.

▲ TV판 반지의 제왕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가 방영한다. 출처=갈무리

플랫폼이 해체된다?
콘텐츠, 즉 상품이 플랫폼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를 맞아 나이키가 아마존의 품에서 멀어지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이제는 거대 플랫폼 비즈니스가 사라지고 직접적인 거래를 통한 업의 본질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만으로 플랫폼이 무너지고 '직접적인 거래'만 이어질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아디다스의 스마트 팩토리가 새로운 제조 패러다임을 단숨에 보여줄 것이라는 헛된 믿음 만큼이나 위험하다.

아마존과 나이키의 사례는 거대 플랫폼의 종말이 아니라, 콘텐츠 제작과 플랫폼의 결합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즉 아마존과 나이키의 방식은 개인과 개인 거래(P2P)의 방식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신사들의 탈통신 전략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이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종말이 아니라, 콘텐츠와 플랫폼을 모두 가진 하이브리드 비즈니스 시대가 시작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콘텐츠와 플랫폼을 가진 하이브리드 사업자의 종류가 두 가지로 갈린다는 점이다. 바로 비즈니스의 뿌리가 콘텐츠냐, 혹은 플랫폼이냐다. 아마존과 결별한 나이키와 통신사의 탈통신 전략이 또 달라지는 순간이다.

콘텐츠가 뿌리라면, 하이브리드 사업자로 변신한 이들은 말 그대로 업의 본질에 집중한다. 아마존과 결별한 나이키의 사례다. 이들은 자사의 풍부한 콘텐츠 역량을 바탕으로 플랫폼을 활용할 뿐이며, 이를 통해 고객과의 밀접한 접점을 추구하게 된다.

스타벅스가 단적인 사례다. 2001년 이미 선불충전 방식을 선보인 스타벅스는 2011년 아예 앱을 통해 결제를 지원하는 수준까지 도달했으며 최근에는 암호화폐 시장까지 두드리고 있다. 커피를 판매하는 스타벅스가 유통이 이뤄지는 오프라인 플랫폼에 이어 온라인 플랫폼까지 아우르는 소위 하이브리드 비즈니스 시대를 열어가는 셈이다. 아마존과 결별한 나이키의 모델은 이런 측면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 스타벅스 선불카드. 출처=갈무리

반면 뿌리가 플랫폼이라면 탈통신 전략을 추구하는 통신사의 사례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은 플랫폼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콘텐츠에서 하나의 업을 정하지 않았다. 통신사들이 가상 및 증강현실, 자율주행차 등 다양한 먹거리에 관심을 두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스스로가 콘텐츠 제작자로서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고 그 플랫폼 위에 제3자의 콘텐츠를 가져오거나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배척하려고 한다. 뿌리가 콘텐츠인 하이브리드 사업자와는 결정적인 차이다.

결국 플랫폼 비즈니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콘텐츠가 플랫폼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어도, 거대 플랫폼은 사라지지 않고 모습을 바꿔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TV에 나오고 싶으면 방송사라는 플랫폼 대신 유튜브를 택해 직접 시청자와 만나면 그만이지만, 유튜브도 결국 플랫폼이다. 개인과 개인의 거래를 이어지는 낮은 간섭도의 플랫폼도 결국 플랫폼이다. 나이키가 아마존에서 나와 자기만의 고객 접점을 만들어도, 결국 플랫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