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6년 청강 김영기 화백

◇그런 성향이 관조'의 작품세계를 가능케 한 것이겠죠?

그 제목은 창덕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신 김소영 선생님을 통해 얻은 거예요. 시인이신데 어눌한 말투지만 재미있는 선생님이셨어요. 학생들에게 문학적 감수성을 심어주시려 애쓴 분인데, 어느 날 수업시간에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며 관조라는 개념을 잡게 되었어요.

나중에 내 그림의 제목으로 해야지 생각했는데, 지나보니 제목을 넘어 삶의 태도, 예술의 태도로까지 승화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한국화를 하면서도 그 제목을 계속 지켜갈 수 있었죠. 오히려 한국화의 정체성에 더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싶어요.

◇전통회화 수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서울대학교 입시에 연거푸 실패한 뒤 1965년에 서라벌예술대학교로 진학하시면서죠?

네. 거기서 안상철, 권영우, 변관식 선생님을 뵙게 됩니다.

▲ 觀照(meditation), 130x97cm

◇좋은 선생님들을 모시게 되었군요.

행운이죠. 안상철 선생님은 한국화 전공의 유일한 전임 교수님이셨어요. 전공으로 진입한 2학년 여름방학 때, 갑자기 집으로 전화가 왔어요. 당장 학교 로 나오라는 안선생님의 호출이었어요. 방학인데 그림 안 그리고 집에서 왜 놀고 있느냐고 꾸중을 하시더군요.

놀랐어요. 전 평범하고 조용한 학생이어서 잘 모르실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실제로 선생님은 학생 욕심이 많은 분이셨어요. 당장 저더러 구도를 잡아오라고 과제를 내주셨어요.

마침 집에서 가까운 중앙대학교 연못에 수련이 피어 있어서 부지런히 스케치를 해 가져갔더니, 다시 사진을 찍어오라고 하시더군요. 어쨌든 그 사진과 스케치를 바탕으로 여름방학 내내

작업을 했어요. 지수 280150, 그러니까 150~200호 정도 크기로 화선지 여섯 장을 붙여서 그림을 그리게 하셨어요.

하나가 끝나면 새로 구도를 잡아서 계속 그리게 하는 방식으로 당시에 열세 장 이 그림을 만들었어요. 그 작업 내내 선생님은 실기실을 지키며 뒤에 서서 지도하셨어요. 안상철 선생님에게서 프로 화가로서의 그림에 대한 의지와 인내심 그리고 철저한 마무리 훈련을 받았어요. 아, 예술가들은 이렇게 집요하게 작업을 하는구나, 나도 이렇게 평생 살아야겠다,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죠.

◇안상철 선생님은 추상 작업을 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사실 선생님께 추상을 배운 것은 4학년 2학기부터예요. 당시 서울대학교에 온 외국인 교수가 한 분 계셨대요. 안 선생님이 분에게서 영향을 받아서 추상 작업을 시작하셨는데 당신도 거의 새로 시작하다시피 하는 작업이어서 공부하듯 학생들에게 가르치신 거죠. 학생들에게 당신을 따라 실험적 추상작업을 하도록 강하게 요구하셨어요. 그것이 제가 추상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지금도 이따금, 만일 추상작업을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어땠을까요?

조금은 덜 어렵게 그림을 풀어나가지 않았을까요. 내(한국화가 송수련,한지화가 송수련,송수련 화백,宋秀璉,SONG SOO RYUN,송수련 작가,Hanji Painter SONG SOO RYUN,한지작가 송수련,종이회화 송수련,여류중견화가 송수련, KOREA PAPER ARTIST SONG SOO RYUN, KOREAN PAPER ARTIST SONG SOO RYUN) 그림이 어렵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곤 해요.

△글=박철화, 중앙대학교 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