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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단장하기] ‘모르겠다’는 어떤 고백

‘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문장의 첫 부분부터 ‘개’를 언급하는 방법은 단도직입적이기는하나 매력적이지는 않은 시작일지 모른다. 하지만 투박하게 시작해보기로 하자. 오늘의 이야기는 우리 집 ‘개’로부터 출발한다.

이름은 둔둔. 나이는 한 살 반. 경기도 변두리의 산업지대를 방황하던 떠돌이 강아지였는데 여러 번의 우연을 반복하다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길어 걸을 때면 궁둥이를 빵실빵실 흔들며 걷는데, 그 뒷모습이 몹시 귀엽다. ‘볼기 둔(臀)’자를 두 번 써 ‘둔둔이’라고 이름 붙여주었다. 남들보다 궁둥이가 두 배로 귀엽다는 뜻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슨 일만 생겼다 하면 그와 관련된 책부터 사 모으는데, 나 역시 그런 부류 중 하나다. 둔둔이가 온 날부터 반려견에 대한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반려견을 키우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한 가지는 바로 그들이 보내는 ‘신호’를 읽어내는 것이라고.

그래서인지 반려견의 ‘시그널’을 해석하는 책들이 다양하게 출간되어 있다. 책에서 말하는 ‘시그널’은,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반려견이 자기의 코를 자꾸만 핥으면 그것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목덜미의 털을 곤두세우면 경계, 긴장 상태라는 신호다. 내 얼굴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는 것은 나를 신뢰한다는 표시이다 등등. 반려견의 시그널은 수도 없이 다양하다. 더욱이 단순하게 행동을 범주화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깊게 헤아려봐야 알 수 있는 신호들이 대부분이다. 반려견의 시그널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완전히 다른 언어를 배우려는 것과 다름없다.

어제는 이런 일이 있었다. 평소보다 길게 외출을 하고 돌아오자 둔둔이가 뛰어나와 반겼다. 활짝 펴진 얼굴로 발치에 매달려 꼬리를 열정적으로 흔드는 모습. 여기까지는 쉽게 알아차릴만한 ‘반가움’의 신호다. 이상한 장면은 이 다음부터다. 요것이 갑자기 밥그릇으로 달려가 사료를 와구와구 먹는 게 아닌가. 꼬리는 여전히 가열차게 흔들면서, 내가 도로 나가버리지는 않을까 불안한지 눈치를 보면서 말이다. 낯선 행동을 접한 나는 한 발짝 떨어져 앉아 그 모습을 곰곰이 바라본다. ‘둔둔아 그건 무슨 신호니? 언니가 오래 나갔다 들어왔다고 항의하는 거니? 이제 혼자가 아니라서, 안심이 돼서 밥을 먹는 거니? 그것참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그것참.. 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주 귀엽고 사랑스럽구나’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이 작은 생명체를 이해해보고자 애를 쓰다가, 나는 문득 ‘시’를 떠올린다. 그렇지! 어디서 많이 느껴본 감정이라니! 모호하고 어렵지만 너무 좋아서 자꾸만 이해하고 싶은 마음, 잘 알고 싶어서 곰곰이 살펴보려는 마음. 이러한 심정은 시를 읽는 것과 닮았다. 반려견을 향해, 시를 향해 ‘모르겠어!’라고 말할 때 내 마음은 애정으로 넘친다.

시는 아리송하다.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기 위해 집요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읽기를 반복해야 하고, 시어를 더듬어봐야 한다. 때로는 시인에 대해서 찾아봐야 할 때도, ‘시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식의 근본적인 물음을 품어야 할 때도 있다. 은유와 리듬, 함축과 생략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다 우연히, 아니, ‘우연히’가 아니다. ‘부단한 노력 끝에’ 그들의 언어에 가닿는 것이다. 그리하여 점점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 김이경은 자신의 책 <시 읽는 법>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렵다고요? 그럴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시라서 어려운 게 아니라 뭔가를 안다, 이해한다는 것이 원래 어려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어 그녀는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연설을 덧붙인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지 않는 모든 지식은 머지않아 소멸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르겠어”라는 두 단어를 저는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진정한 시인이라면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해야 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모든 작품을 통해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외 <아버지의 여행가방 : 노벨문학상 수상연설집> 문학동네 2009

모른다는 고백, 모르니까 더 열심히 바라보겠다는 시도는 소중하다. 서로의 언어를 살피고, 존재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더 사랑하려는 노력과 다름없다. ‘개’로 시작한 오늘의 이야기는 ‘시’를 거쳐 ‘사랑’으로 끝맺는다. 이 뜬금없는 조합이 낯설거나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도 자체가 ‘시’ 아닐까? 그러고 보면 일상은 온통 시범벅이다. 이상할 것도 없다. <시 읽는 법> 김이경 / 유유출판사 / 2019년 3월

공백 북 크리에이터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20.01.22  09: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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