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판매는 더욱 둔화되고 있는 장난감 제조업자들에게, 어른들은 보다 탐나는 시장이 되었다.   출처= BrickLink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엘리자베트 브리그스는 작은 플라스틱 벽돌을 서로 연결해 여러 가지 색상의 뭔가 알 수 있는 모양의 플라스틱 더미로 변신시키면서 마음이 가라 앉는 자신을 발견한다.

37세인 그녀는 레고 벽돌을 가지고 놀면서 종종 맥주를 마시거나 TV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사용설명서를 옆에 두고 그 설명서 대로 블록을 만든다.

브리그스에게는 레고 조립이 자신을 일종의 명상으로 이끌어 주는 놀이다. 그녀는 파리 여행을 다녀와서 321개의 블록으로 구성된 에펠탑 레고를 35달러에 산 것을 계기로, 지금은 버킹엄 궁전, 루브르 박물관, 금문교 등 그녀가 다녀온 곳을 묘사하는 레고 블록 세트를 30개 이상 가지고 있다.

시애틀 근처 올림픽 칼리지(Olympic College)의 수학 교사인 브리그스는 "이 나이에도 넉 놓고 놀거나 다른 사람의 지시를 따르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내가 이 나이를 먹도록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번 후에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명상의 세계로 이끄는 어른들만의 레고

세계 최대 장난감 제조업체인 레고가 이제 어린이들뿐 아니라 인구 통계학적으로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성인에 눈을 돌리고 있다. 

87년 된 이 덴마크 회사가 최근 주로 밝은 색의 벽돌을 많이 생산하는 이유도, 그 날에 있었던 여러가지 스트레스를 잊게 하고 아마도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방편의 하나다. 

미국 인기 시트콤 ‘프렌즈’(Friends)의 센트럴 퍼크(Central Perk) 카페나 고풍스러운 1989년형 배트모빌(Batmobile) 등을 묘사하는 이 회사의 최신 키트는 의도적으로  X세대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고, 최근 출시된 공룡 등 동물 블록들도 손을 부지런히 놀리면서도 마음을 다잡고 싶어하는 어른들을 겨냥하고 있다.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판매는 더욱 둔화되고 있는 장난감 제조업자들에게, 어른들은 탐나는 시장이 되었다. 이 회사가 7541개의 블록으로 구성된 스타워즈 밀레니엄 팔콘(Star Wars Millennium Falcon)세트에 800달러의 가격표를 붙이거나 해리포터 호그와트성(Harry Potter Hogwarts Castle)에 400달러의 가격표를 붙인 것은 모두 어른 고객을 고려한 것이다(이 두 제품 모두 브리그스의 희망 목록에 있다).

레고의 수용자 마케팅(audience marketing) 전략가 제네비에브 카파 크루즈는 "높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업을 가진 어른들이 그날의 힘든 일을 잊기 위해 레고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휴식을 취하면서 마음을 가라 앉히는 경험을 찾고 있으며, 누군가가 이끌어 주기를 바라지요. 누군가가 이끌어주면 그런 경험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크루즈는 회사가 지난 5년 동안 스트레스로 탈진한 어른들도 쉽게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사용설명서를 고쳤다고 말했다. 레고는 지난해, '즐거운 창조적 도전'을 찾는 어른 레고 팬을 타깃으로 달래는 동작을 할 수 있는 잉어와 상어 모델을 선보였다.
 
▲ 경연 프로그램 ‘레고 마스터스’(LEGO Masters)에서는 성인 레고 마니아들이 출연해 레고 만들기 대결을 펼친다.    출처= The Spinoff

물론 레고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장난감이다. AFOL(Adult fans of Lego)라고 불리는 레고의 성인 팬들은 수십 개의 페이스북 계정과 레딧(Riddit) 그룹, 그리고 유튜브 채널 ‘블로큐멘터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또 성인 레고 팬들에게 복잡한 모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과정을 즐기기 위한 스트레스 해소의 한 형태로 레고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책도 나와 있다. 그리고 다음 달에 폭스(Fox)에서 방영될 경연 프로그램 ‘레고 마스터스’(LEGO Masters)에서는 성인 레고 마니아들이 출연해 서로 대결을 펼친다.

자신을 토이 가이(Toy Guy)라고 부르는 뉴욕의 컨설턴트 번(Byrne)은 "성인 팬의 증가가 장난감 산업을 견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400달러 800달러, 성인팬 상승이 장난감 산업 견인.

"499달러 짜리 데스 스타(Death Star, 스타 워즈에 나오는 죽음의 별)나 399달러 짜리 호그와트 성을 누가 살 것 같습니까? 이 모든 것이 그것을 살 만한 돈이 있는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진 장난감입니다."

1940년대 후반에 덴마크에서 처음 소개된 초기의 레고는 주로 몇 가지 색상의 직사각형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후 10년 동안 레고는 문과 지붕, 나무, 덤불, 도로 표지판, 곡면판 등을 추가했다. 1961년에 미국으로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세트는 더 정교해져 비행기, 보트, 소방서가 그대로 그대로 구현됐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회사의 분위기는 이미 예전 같지 못했다. 아이들이 비디오 게임, 컴퓨터, 타마고치(Tamagotchi) 같은 디지털 애완동물과 같은 유행에 매료되면서, 단순한 플라스틱 벽돌은 인기가 떨어졌다. 레고는 1998년에 사상 첫 적자를 기록했다. 이듬해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와 첫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브랜드화된 키트로 변신하면서 매출이 반등하자 디즈니, 마블 슈퍼 히어로즈, 해리 포터 등과 비슷한 라이선스 계약이 뒤따랐다. 지난해 레고는 54억 달러(6조 2500억원)의 매출에 12억 달러(1조 3900억원)의 이익을 기록했다.

그러나 레고 같은 장난감 회사들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NPD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9월까지 미국 장난감 판매량은 약 5.5%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