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수의 등장

펭수의 부산 사인회 현장, 오랜 기다림 끝에 펭수를 마주한 중년의 아주머니는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모든 이를 당황케 한 이 모습에, 이내 따뜻하게 안아주는 펭수. 그리고 던지는 한마디. "오~ 그렇게 좋습니까?" 

키 210cm, 10살, BTS를 넘어 우주최강 캐릭터를 꿈꾸며 남극에서 헤엄쳐왔다는 EBS 크리에이터 연습생 펭수. 자칫 뽀로로 아류로 남을 뻔 했던 이 캐릭터가 이미 뽀로로를 넘어서 2020년 제야의 종을 타종하게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뽀로로가 어린이의 '뽀통령'이라면, 펭수는 직장인의 '직통령'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직장인의 조직문화와 트렌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펭수의 인기는 좋은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예상되는 틀을 깨다.

펭수는 EBS, 즉 교육방송에서 기획한 캐릭터이다. 펭수를 보기전부터 '펭수는 거침없다'는 말은 듣고 시청했지만, 실제로 본 펭수는 확실히 교육방송의 색깔을 지워버린 듯 하다. 오직 '펭귄 탈을 쓴 인형'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전혀 교육방송의 프로그램이라고 보기 어렵다. 인터뷰 중 소리를 지르고, 될대로 되라는 뻔뻔한 컨셉, 툭하면 매니저를 찾는 모습은 '펭성논란'(펭귄 인성논란)이라는 애교스러운 이슈가 생길만큼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교육방송의 캐릭터들이 바른 생활, 바른 언행, 바른 교육을 지향하고 있었음을 생각해 보면, 펭수는 EBS가 오랜 기간동안 지켜왔던 '교육'이라는 성역(聖域)에 트렌드를 적극 반영하여 재창조한 캐릭터이니 우리에게는 ‘반전의 묘미’를 던져주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실제로 자이언트펭TV 초창기에는 구독자 증가추이가 완만하였으나 펭수의 인성이 제대로 드러난 2019년 9월 ‘E육대’편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구독자가 늘어나게 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어른이도 아프다. 억눌림의 공감.

이번 기회에 EBS 사장의 이름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김명중. 모자라는 제작비를 충당해줄 사람으로 '김명중'을 지목하고, MBC '최승호' 사장과는 밥한끼 하자고 해버리니 시청하는 직장인으로 하여금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묘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그간 솔직한 표현을 하더라도 '사장님'이라는 표현은 기본값이었다는 점에서 이름 석자를 부르는 모습은 분명 전에 볼 수 없었던 과감함이라 하겠다. 강경화 장관에겐 여기 대빵이 누구냐고 묻고, 1일 보건복지부 장관을 하며 아픈 직원들에겐 퇴근이 명약이라고 그 자리에서 퇴근을 시키니... 펭수야말로 직장인에겐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는 진정한 '신화속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B급 감성, 솔직함

"왕따시키는 사람은 지구끝까지 쫒아가서 죽ㅃ을 날리겠습니다." 

"휴일에 연락하면 지옥갑니다." 

펭수는 분노할 때는 분노한다. 가식없는 사이다 발언을 던지는 펭수. 그의 '명언모음영상'이 생성되면서 한층 더 펭수의 솔직함이 부각되고 있다. '솔직함'은 이 시대를 관통하는 'One Word'다. 회사라는 곳을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회사내 유리천장이 있다.' 72.3%, 잡코리아&알바몬 설문) 직장인에게 펭수의 솔직한 발언들은 속시원함을 넘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대변해주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펭수를 펭수 그대로로 사랑하고 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중요하지 않고, 펭수가 실제 누구인지도 알고 싶지 않다. 지금처럼 펭수는 펭수로 남아서 우리 직장인이, 그리고 김난도 교수의 표현처럼 '어른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줬으면 좋겠고, 항상 '내편'이었으면 좋겠다. 세상에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 줬으면 좋겠고, 펭수라는 캐릭터(이제는 엄연한 하나의 인격체로 봐야한다)가 그 자리를 계속 지켜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나저나 펭수 전편을 시청하는 동안 필자 역시 펭수에 입덕해 버렸으니.. 앞으로도 펭수의 활약을 구독자의 한명으로서 힘껏 응원하는 바이다. 펭..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