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OTT 업계에 본격적인 '쩐의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양질의 콘텐츠를 수급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가 속속 이뤄지거나 혹은 예정된 가운데, 일각에서는 올해부터 시장 주도권을 휘어잡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을 전망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전쟁은 시장의 치킨게임이 아니라, 플랫폼부터 콘텐츠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생태계의 확산이라는 순기능을 작동시킬 수 있다는 점에 무게가 실린다.

넷플릭스 올해 173억달러 투자?
미국 매체인 더 헐리우드 리포터는 17일(현지시간) 시장조사업체 BMO 캐피털의 자료를 인용, 넷플릭스가 올해 173억달러의 투자를 통해 콘텐츠를 수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넷플릭스는 이후로도 매년 투자 규모를 늘려 2028년에는 263억달러를 투자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넷플릭스는 2015년 5억달러, 2017년 89억달러, 2019년 150억달러 등 매년 콘텐츠 투자 비중을 늘려온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올해 173억달러를 콘텐츠에 투자해 시장 주도권 굳히기에 들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1억60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상태에서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정체성을 살리는 한편 공격적인 콘텐츠 생태계 조성에 나서는 셈이다.

넷플릭스가 콘텐츠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나 성장세 자체가 '거침없는 편'은 아니다. 올해 3분기 52억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11% 증가한 수치지만 가입자 증가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677만명을 기록해 예상치인 700만명에 이르지 못했다.그러나 3분기 <기묘한 이야기 시즌 3>가 공개 후 4주 만에 6400만 시청자를 모았으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공개 28일만에 3200만의 시청자를 끌어 모으는 등 콘텐츠 파워는 여전하다는 평가다.

디즈니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디즈니 플러스를 출시한 후 공격적인 외연 확장에 나서고 있다. 출시 하루만에 1000만 가입자를 끌어모으는 한편 콘텐츠 투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DMC미디어는 디즈니가 지난해 미국에서 무려 187억원을 콘텐츠에 투자한 것으로 추정했다. 159억달러의 컴캐스트, 122억달러의 AT&T를 압도하는 액수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독립영화의 배급권한 비용을 두고 입찰 경쟁이 격화된 상황에서 디즈니가 필요이상으로 출혈을 일으켰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콘텐츠를 위해 투자하는 디즈니의 매서운 행보는 상당히 위협적이라는 평가다.

전통의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도 꿈틀거리고 있다. 지난해 아마존이 미국에서만 58억달러를 콘텐츠에 투자한 가운데 상당금액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몫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15억달러가 투자된 것으로 예상되는 TV판 <반지의 제왕> 시리즈다. 최근 인사이더에 따르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가 미국 드라마 사상 최고 투자액이 들어간 <반지의 제왕>을 품었으며, 드라마는 5개의 시즌으로 시청자들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판타지 블록버스터의 흥행수표인 <반지의 제왕>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생태계로 편입되면서, 글로벌 OTT 콘텐츠 시장의 격전도 격렬해지는 분위기다.

이 외에도 애플과 HBO의 AT&T, 컴캐스트도 콘텐츠 영역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분위기다.

▲ 2001년 반지의 제왕 포스터. 출처=갈무리

스트리밍 시장 재편..."확장될 것"
올해 글로벌 OTT들의 콘텐츠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 비중이 약 10% 선인 상황에서 양질의 기타 콘텐츠 수급을 늘리는 것에도 집중할 전망이다. 특히 로컬 콘텐츠 사업자와의 스킨십을 통해 특유의 글로벌 파이프 라인 전략을 취할 전망이다. 국내 IPTV 업계 3위인 LG유플러스와 협력하며 효과적인 결제 인프라 확보 및 OTT 시장 안착을 시도한 후, CJ와 만나는 장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넷플릭스는 최근 CJ ENM 및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과 함께 향후 수년 간 콘텐츠 제작 및 글로벌 유통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를 바탕으로 스튜디오 드래곤의 3대 주주가 되며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하고 CJ ENM이 유통권을 보유한 한국 콘텐츠 일부를 전 세계에 선보이는 권리를 보유하게 된다. 2020년부터 3년간에 걸쳐 전 세계 넷플릭스 회원들이 즐길 수 있는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도 제작한다는 방침이다.

넷플릭스는 특유의 로컬 콘텐츠 제작을 바탕으로 소위 ‘글로벌 파이프 라인’ 전략을 힘있게 추진할 전망이다. K 콘텐츠 경쟁력이 두각을 보이는 상황에서 스튜디오 드래곤과 같은 제작사에 막대한 투자를 벌이는 한편 이들에게 ‘글로벌 시장 경험권’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전망이다. 여기에 특유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및 밀도높은 미국 드라마 콘텐츠 제공으로 국내 OTT 시장 전격전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 플러스는 아동용 콘텐츠 비중에 집중하며 특유의 강점을 보여준다는 각오다. 이는 콘텐츠 정체성 강화에는 도움이 되지만 확장성 측면에서는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콘텐츠 투자 비용 자체를 노리며 차근차근 '근육'을 기르면 강력한 외연 확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아마존 특유의 이커머스 플랫폼 전략, 즉 가두리 생태계 전략의 일환으로 활동하며 OTT 판을 흔들려는 시도를 할 전망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OTT들은 각자의 콘텐츠 정체성을 지키며 역시 존재감을 키우는 쪽에 방점이 찍히고 있다.

OTT가 특유의 콘텐츠 속성을 바탕으로 힘을 키우는 상황에서, 전체 시장은 앞으로 '확장일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OTT들의 콘텐츠 속성 및 특징이 워낙 뚜렷하기 때문에 쩐의 전쟁을 바탕으로 몸집을 불릴 경우 전체 시장은 치킨게임이 아니라 '동시에 성장하는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자녀를 위해 디즈니 플러스를 신청하고 미국 드라마를 보려고 넷플릭스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이는 콘텐츠 시장 자체가 VOD에서 스트리밍으로 변하는 격변의 시기를 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 웨이브 출범식. 사진=임형택 기자

우리의 상황은?
글로벌 OTT들이 콘텐츠 수급 전쟁에 나서며 전체 시장의 확장을 꾀하는 상황에서, 국내 OTT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전통의 강자 왓챠가 많은 한국 드라마 및 영화 수급으로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절치부심하는 가운데, 또 하나의 강자인 CJ의 티빙도 본격적인 전투모드에 돌입하고 있다. JTBC와 협력해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을 세웠으며, 최근에는 웨이브에 JTBC 콘텐츠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점도 확인됐다. CJ와 JTBC는 최근 티빙 플랫폼 강화를 위해 세부계약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KT의 시즌도 초반 전장에서 의미있는 전과를 올리고 있다. 통신사 기반 OTT의 강점을 내세워 웨이브의 성공 방정식을 차용하는 한편, 넷플릭스 전략인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도 시동을 걸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SK텔레콤의 SK브로드밴드 옥수수와 지상파 OTT인 푹이 결합되어 탄생한 웨이브는 통신사 프로모션, 나아가 네트워크 슬라이싱과 같은 전략을 유연하게 사용하며 넷플릭스의 아성을 꺾는다는 각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