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학동+천년학의 추억, 2008, 45×53cm×3개, 캔버스에 아크릴/Memories of Seonhak-dong+Cheonyeonghak, 2008, acrylic on canvas, 45×53cm×3pieces

허진의 근작인 <유목동물+인간> 시리즈는 그의 독특한 예술가적 기질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그다지 흥미를 못 느끼는 문외한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즐거운 스토리를 연상시킨다. 그림을 바라보면 강렬한 색을 바탕으로 한 동물들과 시커먼 인간들의 모습이다.

더구나 등장하는 대상들은 위치와 방향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좌우 구분 없이 황당하게 전개되는 형국들이다. 또한 관람자들은 익명의 인간들이나 무미건조한 느낌의 인간의 모습과 꽃 그리고 뒤죽박죽이 된 다양한 동물의 모습 등에서 야릇함과 궁금증을 갖게 된다. ‘왜 작가는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하는 궁금증과 함께 정확하게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벽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기에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는 미적인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예측하지 못 했던 것과 상상력으로 인한 강력하면서도 모호한 그 무엇, 다시 말해 위대한 것, 뜨거운 것, 강력한 것, 정상적으로 생각해 낼 수 없는 어떤 폭발력 등을 맛볼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칸트가 이야기하는 숭고와 같은 색다른 경험인 것이다. 이처럼 허진의 그림은 잡을 수 없이 끝없는 신비로움을 우리의 현실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적 친밀감과 교묘하게 결합시킨 것이다. 또한 새벽닭의 울음처럼 맑고 투명하다.

허진(ARTIST HUR JIN,許塡,허진 작가,한국화가 허진,HUR JIN,허진 교수,허진 화백,A Painter HUR JIN)은 우리의 정서를 지녔으면서도, 독창적인 그림을 집요하게 추구하며 외길을 걷고 있는 외로운 예술가가 아닌가 싶다. 인간의 삶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휴머니즘 예술가인 허진의 앞으로의 여정이 궁금해진다.

△장준석(미술평론가,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