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이마트 CJ 등 인사 조직 대규모 구조조정 찬바람
실적 부진 부담감 반영...인력감축과 전환배치 이어져 
자연스러운 효율성 추구 vs 사업 방향 대전환이 먼저 

▲ 출처= 롯데쇼핑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소비 위축 등 대내외 악재로 국내 유통·소비재 기업들은 지난해 말 인사를 통해 성과를 내지 못한 고연봉 임원과 조직의 수를 줄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20년이 되자 주요 기업들은 대리~과장급 인력들의 전환배치로 철저한 인력운영의 효율화를 실행에 옮겼다. 여기에 대해 업계에서는 운영 효율성 추구는 필수불가결하다는 의견과 문책성이 짙은 인사변동은 각 구성원의 근무 의지를 저하시킨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이라는 의견 등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혼돈 

조직개편으로 인한 변화가 가장 확실하게 드러난 기업은 롯데였다. 지난해 롯데는 총 22개 계열사 대표이사들을 모두 교체하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러한 ‘칼바람’의 가장 큰 이유는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이었다. 지난 15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2020 상반기 LOTTE VCM(구 사장단 회의)’에서 신동빈 회장은 “오늘은 듣기 좋은 이야기를 드리지는 못할 것 같다”라면서 지난해의 부진한 실적을 질책했다. 

특히 지난해 3분기 직전연도 같은 기간 대비 영업이익이 56% 감소하는 충격적 실적을 기록한 롯데의 유통사업부문 롯데쇼핑에게는 뼈아픈 지적이었다. 이에, 롯데쇼핑은 본사에 상주하는 인력들의 유통업 현장직 전환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롯데쇼핑은 해당 내용이 포함된 조직 개편안을 공표했고 다수의 인력들을 전국 롯데백화점 운영지원으로 전환 배치했다. 여기에는 현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강희태 대표이사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 이마트 전체의 실적 부진 부담감을 이키지 못하고 폐점하는 이마트의 잡화점 삐에료쑈핑. 출처= 이마트

지난해 이마트는 통상의 임원인사보다 약 2개월 빠른 지난 10월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이마트 역사상 최초로 내부 인력이 아닌 강희석 신임 대표이사에게 이마트의 경영을 맡김으로 “이전과 달라지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는 신세계그룹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해온 이마트가 지난해 2분기 사상 최초로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아울러 이마트는 정용진 부회장의 주도로 시작한 잡화점(삐에로쑈핑)의 철수, 실적이 부진한 가전양품점(일렉트로마트) 일부 점포의 정리 등으로 사업 자체를 축소하는 등 초강수를 뒀다.   
 
급진적 조직개편은 유통기업들에게서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었다. 소비재 기업 CJ도 올해 롯데나 이마트 못지않은 혼돈의 인사가 있었다. 2018년만 해도 CJ는 제일제당·대한통운·ENM 등 주요 계열사들이 올린 성과들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지난해는 대형 M&A에 따른 재무부담 가중, 원재료 가격 상승 등 대외 악재, 아프리카 돼지열병 창궐로 인한 사료 수요 감소 등으로 그룹의 중심인 CJ제일제당의 실적이 부진하자 그룹 전반의 상황도 악화됐다. 여기에 예능 프로그램 국민투표 조작 문제가 불거진 CJ ENM이 논란에 휩싸이면서 CJ에게 2019년은 최악의 한 해가 됐다. 이에 따라 CJ는 지주사의 조직구조를 간소화하면서 롯데와 마찬가지로 지주사의 고연봉 임원들과 더불어 대리~과장급 인력들을 계열사로 전환 배치했다. 

그 외 내수 소비와 직접 맞닿아 있는 수많은 국내 유통·제조업체들도 인력 감축과 조직운영 효율화를 실행에 옮기면서 업계에는 찬바람이 불었다.

약인가, 독인가

경영 효율성 측면에서 위기를 마주한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대응은 인력 감축을 통한 비용 절감이다. 이 방법은 당장의 고정비용이 줄어드는 것과 동시에 기존 인력들에게 일종의 경각심을 일깨움으로 근무에 대한 열의를 다잡고 분위기를 쇄신하는 순기능이 있다. 직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하게 성과만을 평가하는 현대의 기업들과 조직이 강조하는 ‘책임 경영’의 일환이다. 

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글로벌 기업들도 종종 적용하는 방법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세운 기업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전자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의 CEO(1981년~2001년 재임) 잭 웰치(John Frances Welch Jr.)다. 그는 자사의 사업들 중 전 세계에서 1위 혹은 2위에 올라있는 것이 아니면 과감하게 정리하고 매번 인사에서 실적 하위 10% 직원들은 즉시 해고하는 효율성 경영의 끝을 보여줬다. 이에 미국에서는 그를 일컬어 ‘중성자탄(Neutron·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인명만 살상하는 폭탄) 잭’이라고 부른다. 그런가하면, 자사 제품의 제원을 암기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임원을 즉시 해고해버린 애플의 前 CEO 故 스티브 잡스의 일화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련의 조치들은 부정적인 면도 크다. 문책성이 강한 구조조정 인사는 구성원들의 근무 안전성을 위협해 각자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아울러 기업의 실적이라는 것은 최고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 혹은 외부적 불가항력 요인에 따라 매년 달라질 수 있는 것인데 총수를 제외한 모든 구성원이 실적 부진의 책임을 감당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이는 장기 관점으로 도리어 기업의 성장에 악영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번 인사로 그룹사에서 계열사로 전환 배치된 국내 한 기업 관계자는 “겉으로는 효율적 경영, 조직개편 등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론은 실적 부진에 따른 인력 감축과 임금비용 절감”이라면서 “이는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임직원들도 거기에서 벗어난 임직원들에게도 엄청난 압박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유통업과 소비재 제조업의 부진은 경영의 문제라기보다는 업황 등 외부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렇기에 지난해 말과 올해 초까지 이어진 기업들의 구조조정은 납득이 되면서도 다른 면으로는 ‘고용 불안의 공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