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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여담] 쏘카 VCNC는 공유경제 기업일까?공유경제가 아닌 이유, 또 온디맨드도 괜찮은 이유

공유경제와 온디맨드의 차이
자본주의 종말의 시대, 공유경제의 재해석
공유경제 기업은 존재할까?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재웅 쏘카 대표와 박경신 고려대학교 교수(오픈넷 이사)가 지난 16일 사단법인 오픈넷이 주최하는 ‘타다 금지법을 금지하라’ 대담회를 열었습니다. 소위 타다 금지법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하자는 취지였고, 예상대로 일반인은 물론 많은 기자들이 모여 현장의 열기는 후끈했습니다.

출장이 겹쳐 미리 사전등록을 하지 못한 관계로 행사 시작전 몰래 들어갔다 걸리는 바람에 발을 구르기는 했으나 다행히 입장을 허락해준 오픈넷 관계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약간 미묘한 대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현장의 분위기
현장에서는 최근 벌어지는 타다 금지법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으나, 대담회의 절반 이상이 공유경제에 대한 정의로 흐를 정도로 다소 큰 그림이 집중하는 분위기가 포착됐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바로 쏘카 VCNC가 '공유경제 기업'인가에 대한 논의입니다.

이재웅 대표는 쏘카 VCNC가 공유경제 기업이라고 확언했습니다. 이 대표는 "자원을 공유하고 생태계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에 쏘카는 물론 VCNC도 공유경제 기업이 맞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질문이 나왔습니다. 이 대표가 VCNC를 공유경제라고 말했는데 '사실 온디맨드 기업이 아닌가'라는 내용입니다. 그러자 대담회 내내 친근하고 편안한 모습을 유지하던 이 대표가 다소 격하게 반응하며 "절대 아니다"고 말하는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박경신 교수는 아예 "공유경제냐, 온디맨드냐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구분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는 의미없는 일"이라며 관련된 논의 자체에 선을 긋기도 했습니다.

다만 박 교수는 "타다의 경우 몸집을 불리면 자동차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며 VCNC가 공유경제가 아닐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는 했으나 이내 "이러한 현상은 타다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문제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타다는 우버처럼 기존 차량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VCNC라는 플랫폼이 차량을 구매해서 공유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며 이 과정에서 공유경제의 특징을 발견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읽히지만, 이는 공유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수익을 쫒아가는 자본주의의 특성이 반영됐을 뿐이라는 설명입니다.

대담회 현장에서 나온 이 대표와 박 교수의 발언을 천천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대표는 VCNC가 공유경제 기업이라고 주장하며 "온디맨드가 아니다"라고 반박했고, 이 과정에서 온디맨드가 마치 '나쁜 것'처럼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박 교수는 "공유경제와 온디맨드의 개념을 두고 구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라며, 사실상 구분하려는 사람들을 두고 '쓸데없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분위기가 연출됐습니다.

현장에서 나온 두 사람의 반응을 종합하면 이런 전제가 완성됩니다.

1. VCNC는 공유경제 기업이다.
2. VCNC를 온디맨드로 부르지 마라, 온디맨드 따위가 아니다.
3. 온디맨드와 공유경제를 나눌 이유가 없다.

과연, 이러한 접근이 옳을까요?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VCNC가 공유경제 기업이냐는 점입니다.

▲ 대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공유경제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틴 와이츠먼 하버드 교수가 1984년 '공유경제'라는 저서를 통해 공유경제에 대한 정의를 내린 적 있습니다. 그는 저서에서 '이미 존재하는 자원을 특정인이 소유하지 않고 공동으로 소비하는 경기 침체 극복 방안'이 공유경제라고 했습니다.

공유경제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틴 와이츠먼 교수가 말한것처럼 공유경제는 존재하는 자원을 특정인이 소유하지 않고 공동으로 소비하는 것이며, 이는 '이미 존재하는 자원을 공동으로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평민과 귀족의 구분이 엄격하던 20세기 전 역사시대의 유럽 중세시대 마을에 있던 공동화로에 힌트가 있습니다.

언제나 풍성한 식단을 마주하던 귀족과 달리 평민들은 억압받았고, 끼니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그런 평민들이 각자의 집 부엌에 개인화로를 만들었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근처 산에서 가져올 수 있는 땔감은 정해져있는데 각자의 식사시간은 달랐으니, 땔깜이라는 자원은 말 그대로 소모적으로 낭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뜩이나 자원이 부족한 가운데 이는 생존의 리스크였습니다.

여기서 누군가 아이디어를 냅니다. 마을에 공동화로를 만들어 정해진 시간에 사용하면 어떨까. 화로에 불을 피우는 시간을 정해두고 마을 사람들이 차례로 빵을 굽는다면 한정된 자원인 땔깜을 더욱 효율적으로 소비할 수 있습니다. 한정된 자원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 공유경제입니다.

다만 마을에서 공동화로를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래도 화로는 쉽게 망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기의 목적, 즉 화로를 사용하기 위한 것에만 몰두할 뿐 공동화로의 벽이 무너지고 틈새가 벌어지는 것에 신경쓰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를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부릅니다.

결론적으로 한정된 자원을 공동으로 소비하는 행태, 즉 공유경제는 '소비'한다는 개념입니다. 평민들은 항상 살림이 쪼달릴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한정된 자원을 얼마나 아끼며 합리적으로 '소비할 수 있느냐'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마을 원로회가 누군가에게 공동화로의 관리를 맡긴다면 나름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공동화로를 운영하며 옆 마을에 이용료를 받고 마을 운영비를 버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공유지의 비극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관리인이 없다는 뜻이며, 본연의 공유경제는 합리적인 소비 방식을 의미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자본주의의 시대가 됐습니다. 이제 귀족과 평민의 구분은 사라지고 모두가 노력하면 귀족, 아니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표면적으로 모두에게 '기회'를 주는 것처럼 보였으나, 오히려 역사시대보다 더 커다란 권력의 편중을 일으킵니다. 이른바 부의 불평등 시대.

평민이었던 사람이 시민이 되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기회의 시대가 왔으나 오히려 사다리를 먼저 올라간 이들은 예전 귀족과 평민 프레임을 공고히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분노합니다. 월가 시위가 벌어지고 버니 샌더스가 미국 대선 정국을 강타합니다.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경제 위기까지 겹치며 시대가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대안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자본주의의 폐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지만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시대, 절대 다수의 99%는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

▲ 월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출처=플리커

2008년 로렌스 레식 교수가 화두를 던집니다. 그는 현대적인 의미의 공유경제를 정의하며 한정된 자원의 효과적인 활용에 집중합니다.

그는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합리적인 소비의 방식인 공유경제를 자본주의 종말의 시대를 맞아 대안으로 내세우자고 강조합니다. 마틴 와이츠먼 교수가 주장한 공유경제 개념의 연장선입니다. 마틴 와이츠먼 교수가 공유경제를 정의하며 말미에 '경기 침체 극복 방안'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로렌스 레식 교수는 부의 불평등이 만연한 자본주의 종말 시대를 맞아 오래된 공유경제의 합리적 소비 방식과, 이를 받아들여 경기 침체를 극복하자는 마틴 와이츠먼 교수의 주장을 확장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로렌스 레식 교수의 현대적인 공유경제 개념에도 거래의 매개가 돈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한정된 자원의 교환을 매개로 하면서도 그 동기는 자기만족이나 이타심을 꼽았습니다. 정리하자면, 2008년 로렌스 레식 교수까지 이어지던 모든 공유경제의 개념은 무언가 경제활동을 통해 누군가 재화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한정된 자원을 공유하며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를 줄이자는 선에 머물렀다는 뜻입니다. 돈을 벌자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자는 점에 방점이 찍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로벌 경제 위기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현존하는 모든 도시 중 가장 부의 불평등 문제가 두 번째로 심각했던 샌프란시스코에서 기묘한 스타트업이 탄생합니다. 바로 우버입니다. 우버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차량을 서로 공유하며 이동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통해 혜성처럼 스타트업 업계를 흔들었습니다.

우버를 공유경제 기업으로 불러야 할까요?

역사시대부터 2008년 로렌스 레식 교수의 선언까지 확인된 공유경제의 개념과 맞지 않습니다. 우버는 우버라는 앱을 플랫폼으로 삼아 수익을 창출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유럽 중세시대 공동화로를 보면 관리인입니다. 수요와 공급을 연결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 수익을 창출하는 순간, 한정된 자원을 합리적으로 소비하기 위한 소비의 방식인 기존 공유경제와는 멀어집니다.

우버의 생태계에는, 당연한 말이지만 공유지의 비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유지의 실수는 몰라도.

정리하자면 공유경제는 소비의 방식이지 재화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 플랫폼(관리인)이 등장하는 순간 기존 공유경제와는 크게 멀어집니다.

공유경제라는 개념 자체는 어려운 부의 불평등 시대를 맞아 특정 커뮤니티가 합리적인 소비로 생존하자는 점에 방점을 찍었지만, 우버와 같은 플랫폼 사업자는 합리적인 소비도 지원하면서 핵심에는 플랫폼 수익을 거두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유지의 비극은 커녕 공유지의 실수를 걷어내려는 질 높은 서비스에 몰두합니다. 이 과정에서 플랫폼 노동자를 양산한다는 점은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물론, 새로운 시장의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에는 이견이 있다는 것을 밝힙니다.)

쏘카 VCNC는 어떨까요? VCNC도 우버처럼 공유경제 기업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플랫폼이 존재하고 공유지의 비극은 없으며, 무엇보다 플랫폼이 재화를 창출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공유경제 기업'이라는 단어 자체가 신기루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생존을 위해 공유지의 비극을 무릅쓰고 합리적인 소비로 생존하자는 커뮤니티의 방식과, 재화를 창출해 연속성을 가지려는 기업이라는 개념이 만나는 것 부터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버와 VCNC는 공유경제 기업이 아니라 자사 비즈니스에 공유경제의 기술적 개념을 일부 도입한 선에 머물렀다는 것이 옳은 분석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우버는 사업 초창기에는 자신들을 공유경제 기업으로 불렀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 타다가 보인다. 출처=뉴시스

온디맨드 기업이 뭐 어때서?
대담회에서 본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는 'VCNC는 온디맨드 기업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이재웅 대표의 반박과 "절대 온디맨드 기업이 아니다"는 강한 부정입니다. 여기에는 VCNC가 반드시 공유경제 기업으로 불려야 하며, 온디맨드 방식을 부정적이거나 진화되지 않은 방식으로 본다는 시각이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후자에 집중하자면, 일견 이해는 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공판을 앞두고 '기존 택시업계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응하기 위해 공유경제의 비전을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여겨지지만, 어감이 아름다운 공유경제라는 단어만큼 온디맨드도 '의외로' 향기로운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온디맨드는 부정적인 의미의 플랫폼 노동자를 양산한다는 뉘앙스가 강하고, 무엇보다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며 막강한 권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내가 온디맨드다"고 말하기에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그러나 O2O 전략을 보면, 온디맨드는 진정한 방식의 O2O를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막강한 기술력과 생태계 창출이 필요한 중요한 영역입니다. 온라인에서 펼쳐지는 IPTV의 VOD 방식과, 오프라인에서 펼쳐지던 심부름의 개념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강력한 플랫폼이 유기적인 생태계 창출에 나서는 것이 바로 온디맨드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온디맨드는 인공지능, 클라우드, 나아가 온라인의 혁신을 오프라인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게 하려면 필수적인 플랫폼 비즈니스입니다. 여기에 VCNC는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막강한 처우개선까지 준비하며 기존 온디맨드의 고약한 습성도 극복하려는, 온디맨드 2.0 플랫폼의 역할까지 욕심내고 있습니다. 온디맨드는 어려운 방식이고, 또 이뤄낸다면 상당한 혁신입니다. VCNC는 온디맨드 기업이며, 온디맨드의 특징인 즉각적이고 편리한 수요와 공급 조절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모빌리티 업계의 진화까지 노려볼 수 있습니다.

▲ 긱 이코노미도 화제다. 출처=갈무리

"무엇하러 분류하나"
합리적 소비의 방식인 공유경제와,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온디맨드를 두고 분리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핵심은 자본주의의 특징이 사업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며, 이는 당연한 현상이라는 박창신 교수의 의견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두 개념을 분리할 필요는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정체성입니다. 아직 플랫폼 노동자, 긱 이코노미에 대한 논의가 여전한 상황에서 공유경제에서는 절대 나타날 수 없는 부작용을 온디맨드 사업자가 공유경제의 틀에서 접근하면 소위 '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두 개념을 명확히 구분해 제3의 가이드 라인을 세워야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다양한 비전입니다. 온디맨드 기업이 O2O의 전략적 방향을 수단으로 삼아 비즈니스에 공유경제 개념을 실었다면, 다음으로는 풍부한 생태계 구축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온디맨드 기업의 특성을 가지고 풍부한 생태계를 창출하려면 명확한 구분이 전제된 후 새로운 결합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서 온디맨드 기업이 어떻게든 공유경제를 무리하게 끌어오니 스텝이 꼬입니다. 두 개념을 분리한 후, 온디맨드+공유경제를 절묘하게 연결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미래를 기대한다"
국내 모빌리티 시장은 택시와 협력하지 않은 ICT 기업에게는 그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ISP와 CP의 분쟁에서 알 수 있듯이, 인터넷이라는 만인의 무료 연결성을 망 사용대가라는 말로 포장해 스스로 장벽을 둘러치는 우리의 씁쓸한 상황과 닮았습니다. ICT와 택시의 결합도 필요하고, ICT만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모빌리티 기회를 스스로 쳐낼 이유가 없습니다. VCNC가 어떻게든 존재해야 하며, 또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시대적 사명입니다. 단순하게 시장의 다양성 측면이라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VCNC의 질주와, 오픈넷의 진지한 문제제기가 국내 플랫폼 비즈니스는 물론 모빌리티 시장 생태계 조성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명확한 정체성과, 어설프게 공유 오피스를 표방하던 위워크가 흔들린 이유 중 하나도, 결국 무리하게 공유라는 개념에 천착해 내실을 다질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진보를 위한 색다른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를 공유경제 2.0으로 부르든 온디맨드 2.0으로 부르든, 혹은 공유온디맨드 경제로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이러한 접근이 이뤄지려면 명확한 개념정리가 필요하고, 불필요한 마케팅은 걷어내야 합니다.

*IT여담은 취재 도중 알게되는 소소한 내용을 편안하게 공유하는 곳입니다. 당장의 기사성보다 주변부, 나름의 의미가 있는 지점에서 독자와 함께 고민합니다.

최진홍 기자  |  rgdsz@econovill.com  |  승인 2020.01.17  13: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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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 #최진홍, #이재웅, #쏘카, #박경신, #타다, #공유경제, #온디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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