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CEO와 트럼프 대통령의 밀월 깨지나
아이폰 잠금해제 논란, 애플 "프라이버시 무조건 지킨다"
애플 기존 입장 고수할 듯...트럼프 돌아설까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브로맨스'를 자랑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팀 쿡 애플 CEO의 밀월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총격사건의 용의자가 사용하던 아이폰의 잠금해제를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도 팀 쿡의 애플이 이에 필요한 백도어를 제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2월 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에서 훈련을 받던 무함메드 알샴라니 사우디아라비아 공군 소위가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켜 3명이 사망했고 그가 현장에서 사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미 연방수사국(FBI)은 총기난사 사건의 공범 여부 및 배후를 밝히기 위해 애플에게 무함메드가 사용하던 아이폰의 잠금해제를 요구했으나, 애플은 이를 거절했다. 총격범의 계정과 아이클라우드 백업 등 핵심자료를 이미 수사 당국에 전달했으며, 잠금해제 요구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에 해당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애플의 완고함에 미 행정부가 들썩였다. 당장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총격범이 사망하기 직전 누구와 소통했는지 알아야 한다"며 애플을 압박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14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애플은 살인자·마약거래상 그리고 다른 폭력범죄자들이 사용하는 휴대폰의 잠금해제를 거부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무역 및 많은 문제에서 애플을 돕고 있다"는 말로 압박의 수위를 올렸다.

물론 미 수사당국의 기술력으로 아이폰 잠금해제에 나서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제조사인 애플의 협조가 있어야 미 수사당국도 최소한의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신경전은 앞으로 계속될 조짐이다. 심지어 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 압박전술을 펼쳤으나 애플이 잠금해제에 나설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본다.

"당신들은 데이터산업복합체야!"
총격범의 아이폰 잠금해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을 이해하려면, 애플이 지금까지 어떤 프라이버시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2018년 하반기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당시 유럽은 미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전투에 한창이었다. 유럽연합은 2018년 7월 구글을 대상으로 시장 독과점 혐의로 43억4000만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했으며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유럽연합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성명을 통해 “구글은 그동안 안드로이드를 검색 엔진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왔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유럽의회는 저작권 지침을 통과시키며 유튜브에 소위 링크세와 업로드 필터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대서양을 중심에 두고 유럽과 미 실리콘밸리 기업의 대립이 불꽃을 튀기고 있었으나, 애플만은 예외였다. 당장 미 실리콘밸리 기업과는 격전을 벌이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애플의 샤잠 인수를 승인했다. 또 비슷한 시기 고질적인 세금 문제도 해결됐다. 유럽위원회가 2016년 8월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애플이 유럽에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고 판결하며 추징금 134억유로를 부과한 가운데, 애플이 이를 완납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팀 쿡 애플 CEO는 2018년 10월 24일 브뤼셀에서 열린 데이터 보호 프라이버시 커미셔너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해 폭탄발언을 했다. 그는 명칭을 특정하지 않았으나 몇몇 테크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상업적 무기로 남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팀 쿡 CEO는 "매일 고객이 클릭하는 선호도와 관련된 데이터가 수십억 달러에 거래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개인정보를 이용해 광고를 파는 사업은 '데이터 산업 콤플렉스'로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팀 쿡 CEO는 테크 기업들을 '데이터산업복합체(Data-Industrial Complex)'로 부르며 거대 군산복합체에 비유하기도 했다. 유럽연합이 미 실리콘밸리 기업들에게 제기하던 비판과 동일하다.

심지어 유럽연합의 일반정보보호규정(GDPR)을 극찬하기도 했다. GDPR의 등장으로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유럽 현지 사업이 일부 제동이 걸리는 가운데, 팀 쿡 CEO만 이를 긍정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팀 쿡 CEO의 이러한 발언은 애플 특유의 정체성에서 기인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고객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져야 하며, 이를 절대 어길 수 없다는 특유의 경영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영 철학은 종종 수사당국과의 충돌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 총기난사 사건 당시 벌어진 아이폰 잠금해제 논란이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고, 용의자 리즈완 파루크가 체포됐다. 수사에 착수한 FBI는 혐의를 입증하려고 리즈완 파루크가 보유한 아이폰의 잠금장치를 열어 데이터를 확인하려고 했으나, 애플은 협조를 거부했다. 테러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정보는 보호받아야 하며 그것이 애플의 정신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했다. 전문가를 파견해 수사를 돕기는 하겠지만 그 이상의 행동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소위 백도어를 열어둘 수 없다는 주장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애플을 지지했다. 구글의 선다 피차이 CEO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애플의 결정에 지지를 보내며 “적법한 법적 명령에 의거해 사법기관이 정보에 접근할 여지는 있다”고 전제하는 선에서 “고객의 기기와 정보를 해킹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부가 요청하는 것은 곤란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의 유명인사이자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진이었던 스티븐 시노프스키도 거들었다. 그는 "기술 업계 전체가 애플을 지지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야후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의 다른 기업도 입장은 동일했다. 이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정부감시개혁(RGS)은 성명을 내고 “범죄와 테러에 대한 억제는 매우 중요하지만, 어떤 업체도 자사 기술의 백도어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여세를 몰아 애플은 자사 개인정보 보호 카테고리를 통해 “국가 안보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며 “정보 제공 요청을 받으면 먼저 소환장 또는 영장 등 적법한 법률 문서가 함께 제공되었는지 확인한다”고 밝혔다. 당시 삼성전자는 중립을 표방해 눈길을 끌었다.

법원도 애플의 손을 들어줬다. 뉴욕 브루클린 연방지방법원은 애플이 마약 용의자들이 소지하고 있던 아이폰의 잠금장치를 해제 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이는 FBI 논란에도 적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당시 반향은 상당했다.

결론적으로 당시 논란의 중심이던 범인의 아이폰은 잠금해제가 풀렸다. 열쇠를 쥔 사람과 열쇠를 얻어 문을 열고자 하는 사람이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였으나 최후의 승자는 열쇠 수리공이었다. FBI는 제3자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했다고 밝혔으며, 훗날 이스라엘 디지털 보안회사 셀레브라이트(Cellebrite)가 FBI에 도움을 준 백기사로 확인됐다.

2016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이탈리아 건축가인 레오나르도 파브레티(Leonardo Fabbretti)가 사망한 아들 故다마(Dama)군과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애플측에 아들 아이폰의 잠금해제를 요청했으나, 이를 거절당했던 사례다.

▲ 애플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출처=갈무리

프라이버시에 대한 집착
애플은 최근 폐막한 세계 최대 가전제품 전시회인 CES 2020에 무려 28년만에 참석해 프라이버시 강화 정책을 강조했다. 애플의 제인 호바스 애플 글로벌 개인정보보호 담당 수석 이사가 토론자로 나서 자사의 프라이버시 정책을 상세하게 공유한 바 있다. 당시는 스마트폰 시장 최대 경쟁자인 삼성전자가 소위 연예인 주진모 사태로 해킹 논란에 휘말리던 미묘한 시기였다. 또 데이터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던 시기라 특히 주목을 받았다.

애플은 왜 개인정보보호, 즉 프라이버시 보호에 집착을 보이고 있을까? 앞서 설명한 것처럼 프라이버시 보호는 곧 애플의 정체성이라는 경영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영철학을 지키기 위해 2015년과 2016년 FBI와 충돌했고, 올해 트럼프 대통령과도 충돌하는 셈이다.

다만 모든 충돌을 감안하더라도 애플이 프라이버시 보호를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iOS 생태계의 특성이다.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하는 구글 안드로이드와 달리 iOS는 폐쇄형 생태계를 지향한다. 모든 것은 애플을 중심으로 플랫폼이 구축되며 이 과정에서 애플은 막대한 수익을 얻는다. 그리고 폐쇄형 생태계를 유지하려면 철저한 보안이 필수다. 애플이 프라이버시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초연결 사회가 시작되며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는 점도 중요하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연결되는 시대를 맞아 '내 개인정보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는 중요한 화두로 부상했다. 예전에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요 근래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애플의 프라이버시 강화 정책이 최근 마케팅 전략적 차원에서 논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 연장선에서, 애플이 하드웨어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소프트웨어를 브랜딩해 매력적인 하드웨어에 탑재하는 애플 특유의 아이폰 판매 전략은 개인정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온라인 기반 테크 기업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애플이 프라이버시 강화에 자신감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며, 결국 '큰 리스크'가 없다는 뜻이다. 애플이 최근 콘텐츠 사업에 집중하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독 비즈니스까지 전개하며 다양한 콘텐츠 전략을 펼치는 가운데, 고객의 프라이버시 보호에 적극 나선다는 점은 역시 강력한 마케팅 포인트다.

트럼프 시대...'아슬아슬 줄 탔는데'
애플이 당분간 충돌을 불사하며 프라이버시 강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심해지는 지점에 시선이 집중된다. 애플이 프라이버시 보호를 강조하며 아이폰 잠금해제에 협력할 가능성이 낮은 상태에서, 충돌의 끝에 파국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애플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가 밀월에 가까울 정도로 친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태는 더욱 심상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6년, 난데없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구매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당시 FBI의 협조요구에 응하지 않던 애플을 겨냥해 "애플이 (테러범 휴대전화의) 잠금장치 정보를 제공할 때까지 애플 제품을 거부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는 이어 "나는 애플 아이폰과 삼성 휴대전화를 모두 쓰지만 애플이 테러범 정보를 당국에 넘기지 않는다면 정보를 넘길 때까지 삼성 제품만 쓰겠다"고 강조했다.

▲ 대선 후보 당시 트럼프 대통령 트윗. 출처=갈무리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후 실리콘밸리 기업과는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도, 유독 애플과는 친밀했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을 거치며 애플이 어려움을 겪자 적극적인 측면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0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애플 조립공장을 방문해 팀 쿡 CEO를 만나 애플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애플에 대한 특별대우를 언급했다. 바로 관세면제다.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며 중국산 제품을 수입해야 하는 애플의 관세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이를 '특별관리' 해야 한다는 논리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8월 두 차례나 팀 쿡 CEO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고율관세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두고 유연하게 판단하겠다는 뜻을 밝힌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연장선에서 애플은 오스틴의 자사 조립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반면 또 다른 실리콘밸리 기업, 제프 베조스의 아마존은 트럼프 행정부와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고 있었다. 미 국방부의 제다이(JEDI, Joint Enterprise Defense Infrastructure) 국방부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에 마이크로소프트(MS)가 선정된 상태에서 아마존이 AWS가 수주에 떨어진 것은 부당하며 소송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와의 협력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계획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막후 공격으로 제다이 프로젝트에서 떨어졌음을 성토하는 AWS 내부 문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왔다. 그런데 애플만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한한 사랑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아이폰 잠금해제를 요구하며, 지금까지 애플에 제공한 혜택을 중단할 수 있다는 '신호'까지 줬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장 대선 후보 당시의 삼성전자 스마트폰 구매 캠페인을 벌일 가능성은 낮지만, 당분간 둘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맴돌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편 업계에서는 아이폰 잠금해제 논란이 백도어 이슈로 점화될 경우, 중국 화웨이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미국은 화웨이가 중국 당국의 백도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중이며, 최근 화웨이 기술이 들어간 모든 기술을 미국 기업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애플에 백도어를 주문하는 장면은, 이후 벌어질 화웨이 논쟁에 있어 다양한 시사점을 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