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명인간-보이지 않는 눈1, 2000, 필름, 한지에 수묵, 아크릴, 락카, 73×61cm/ Anonymous Human-Unseeing Eyes1, 2000, ink, acrylic and lacquer painting spray on film and hanji, 73×61cm

모더니즘에서 중요한 것은 의미가 아닌-가장 중요시해야 할지도 모르는 또 모든 예술양식의 모태가 되는 의미-양식적 특성이고, 개인적인 기법이고, 특별한 형태나 색채이며, 이들의 독자적인 발전이다. 많은 담론들이 모더니즘 작품들 주변에서 형성되었으나 그것들은 구조주의, 기호학, 여성주의 등등으로 그 스스로를 위한 것일 뿐 작품 하나하나에 깊게 들어가지 못한다.

이들은 작품의 피상적인 관찰 묘사에 그칠 뿐이다. 혹은 밑도 끝도 없이 노장사상을 끌어내거나, 문인화라 서둘러 정의 내려 버리게 하는 부유하는 뿌리 없음이 사실이 모더니즘 미술양식의 원초적인 한계인 것이다. 허진을 모더니스트라 할 수는 없다.

▲ 익명인간+동물 2001-2~7, 2001, 한지에 수묵채색, 162×130cm/Anonymous Human+Animal 2001-2~7, 2001, ink and pigment on hanji,162×130cm

그는 자신과 주변과 사회를 이야기하고 싶어 해 왔고, 실제로 잘 해오고 있다. 그러나 그의 소신은 모더니즘 양식들의 규칙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의 외침은 조형들의 절제에 의해서 무음으로 들리며, 그의 끓는 필치도 조형의 형식성 때문에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다.

소외되어 수동적이고 비개성적이고 피압박적인 현대인들이 이루고 있는 사회의 구조를 그의 그림이 닮았다 해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또 그 체계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그 무심하고 세련된 재현이 정당하다고 해도, 그것을 극복하고 그가 신념을 갖고 있는 방향으로 과감하게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은 여전히 작가의 몫으로 남아있다.

허진(ARTIST HUR JIN,許塡,허진 작가,한국화가 허진,HUR JIN,허진 교수,허진 화백,A Painter HUR JIN)은 모더니즘으로부터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필자에게 양자의 차이는 없다) 벗어나서, 그가 추구해 왔던 주제를 더 날카롭게 갈고 닦아야 할 기점에 서있다.

△오병욱(동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