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면조건14-7B, 91×73㎝, 2014

최명영 작가가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오랜 습관의 하나는 잠시 짬을 내어 산을 나가는 것이다. 산책은 그가 일상을 즐기고 또한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작가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 주위 또는 한강변을 걷는데 혼자라는 사실, 호젓한 기분, 천천히 걷는 발걸음, 주위의 잔디, 솔솔 부는 강바람 등이 그의 산책에 최적의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느림의 걷기는 세상의 매력 속으로, 무한히 풍부한 자연의 틈새로 이끈다. 걸을 때 우리는 더는 사물의 모습을 그저 스쳐 지나가지 않고 바라보게 되며, 그러면서 사물에 대해 숙고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Christophe Lamoure, Petite Philosophie du Marchur, 고아침 역, 걷기의 철학, 개마고원, 2007>

무엇보다 산책의 장점은 외부 자극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주어진 하루가 새롭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의 산책 시간은 다른 사람과의 교류나 노출로부터 벗어나 내면의 가장 큰 동력과 창의력을 얻어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하다.

사용과 소유의 관계 아래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계속될 그 무언가로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를 초월하는 느낌을 안겨주지 않을까. 산책은 내가 세상 속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바와 조화를 이루며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을 말한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우리가 산책을 통해 “세심한 감성과 사고, 감정과 욕구를 지닌 진정 놀랍고도 신비로운 생각체"임을 깨닫게 해준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이 편하게 다가오는 것은 여유로운 산책에서 얻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이랄까, 청량한 기분을 실어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 정신을 새와 새장에 비유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기억이 머릿속에서 퍼덕이며 날아다니는 새와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새를 붙잡으려면 목적의식이 배제된 차분하고 평온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흐름에서 그의 그림을 생각하면 어떨까? 그 그림은 생산성과 효율성 등 아무런 목적의식도 갖지 않은 채 그림을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작가야말로 시간의 빈 그릇에 존재의 숨결을 담아 넣는다.

최명영(Dansaekhwa-Korean monochrome painter CHOI MYOUNG YOUNG, Dansaekhwa:abstract paintings of Korea Artist CHOI MYOUNG YOUNG,최명영 화백,최명영 작가,단색화 최명영,단색화:한국추상회화 화가 최명영,모노크롬회화 최명영,단색화가 최명영,韓国単色画家 崔明永,韓国の単色画家 チェイ·ミョンヨン)작가는 생의 성찰과 그로 인해 생긴 리듬과 무늬들을 화면에 아로새기고 있는 셈이다.

'생의 리듬과 무늬'를 새기는 데 '추상'이라는 형식보다 더 적합한 수단은 없을 것이다. 걷기가 사유를 용이하게 해주듯이 추상은 마음의 표현을 활발하게 한다. 그의 작품을 잠시 숨을 고르고 살펴보면, '유용함'보다는 '무용함', '소유'보다 '존재', '분주함'보다 '평온함'의 유익이 더 크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는 서서히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 눈길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서성록, 미술평론가/미술평단(한국미술평론가협회), 2019년 가을호(제1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