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14-61, 2014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는 현대사회를 '달리는 정지 상태'란 말로 재치 있게 표현한 적이 있다. 겉으로는 빨리 속도를 내어 달리는 것 같은데 실은 정체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통찰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평온함의 부족으로 우리 문명은 새로운 야만의 상태에 빠질 것이다. 일에 바쁜 사람들, 곧 평안을 모르는 사람들은 갈수록 시간부족에 허덕이리라."<올리히 슈나벨, 휴식, 걷는나무, 2010>

폴 비릴리오와 니체의 주장처럼, 현대인들은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허덕이고 지치며, 정신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문제는 속도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더 빨리 뛰어야만하고 잠시라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가속화'가 불문율처럼 준수되는 사회에 사는 사람은 자진해서 완만한 속도를 택할 수 없다. 개인은 늘 자신의 가치와 실력을 입증해야하는 중압감에 시달린다. 속도에 뒤진다는 것은 곧 사회에서 낙오된다는 뜻이 된다.

이 즈음이면 왜 속도를 늦추고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것이 중요한지 알 것이다. 그의 그림에서는 '경쟁'이나 '효율성', '속도'와 같은 것들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오히려 시간을 앞질러갈 생각에 집착하기보다는 삶을 그 자체로 중히 여기고 삶의 물결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그 속에서 무슨 노래가 흘러나오는지 주목한다.

▲ 평면조건, G14-62, 2014

작가는 작은 소리로 대화할 수 있는 고요한 장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의 작품은 "빨리, 더 빨리"라는 말보다는 "천천히, 더 천천히"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어떤 의미에서는 거창하고 대단해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속박의 한 형태일 수 있다.

우리는 좀처럼 내적 안정성을 취하지 못한 채 잠자리를 뒤척인다. 이에 대해 알셀름 그린(Anselm Grün)은 고적한 곳을 찾아 마음속에 흐르는 '고요의 멜로디'를 들을 것을 제안한다.

"우리의 영혼 안에 일반적으로 들을 수 없는 우주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어떤 세계의 신적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요는 귀를 열어 우리 영혼의 멋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문이다. "<알셀름 그린, 내면의 멜로디, 성바오로>

그의 회화가 '고요한 멜로디의 근원'에 잇대어져 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런 작용을 하고 있는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잔잔한 붓 자국과 무심한 바탕색, 그리고 가로 세로로 구획된 선들은 그 어떤 것도 형용하지 않으며 표상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삶과 삶의 인식 문제를 떠난 예술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큼 미술은 삶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그(Dansaekhwa-Korean monochrome painter CHOI MYOUNG YOUNG, Dansaekhwa:abstract paintings of Korea Artist CHOI MYOUNG YOUNG,최명영 화백,최명영 작가,단색화 최명영,단색화:한국추상회화 화가 최명영,모노크롬회화 최명영,단색화가 최명영,韓国単色画家 崔明永,韓国の単色画家 チェイ·ミョンヨン)의 작품을 접할 때 느끼는 감정은 마치 먼 곳을 여행하였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의 안도감이랄까, 친근하고 익숙한 것과의 만남에서 오는 편안함이다.

△서성록, 미술평론가/미술평단(한국미술평론가협회), 2019년 가을호(제1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