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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영論]1975~2015년⑥, 정상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다!
   
▲ 평면조건08-18, 112×162㎝ Acrylic on canvas, 2008

이 3년간의 경험을 거쳐 최명영은 자신의 새로운 [회화]를 컨트롤 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완전히 평평한 화면이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고개를 넘어 산의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고개에서 산의 능선으로 길을 찾았다는 점이다.

예술에 정상은 없다. 하지만 정상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다. 하나의 고개에 이르러 재능과 에너지를 발산하고 거기에서 하산해 버릴 수 있다.

1982년 이후 최명영(Dansaekhwa-Korean monochrome painter CHOI MYOUNG YOUNG, Dansaekhwa:abstract paintings of Korea Artist CHOI MYOUNG YOUNG,최명영 화백,최명영 작가,단색화 최명영,단색화:한국추상회화 화가 최명영,모노크롬회화 최명영,단색화가 최명영,韓国単色画家 崔明永,韓国の単色画家 チェイ·ミョンヨン,Dansaekhwa Artist)의 발걸음은 고개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고개에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순수화, 극한화의 지평을 계속 지속시켜가며 그 길을 걸었다. 1982년 이후의 이 발걸음을 (여기에서도 먼저 화면의 표면적으로 보여 지는 부분을 거슬러 보자면) 1982년에서는 화면이 정방형의 사각으로 분할 되여 나타나고 계속해서 1983년에는 이전의 [등가성]연작에서 보여지는 수평의 분할이 그 이후에 단장을 새롭게 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19 97년 이후 화면이 그 양자를 총합시킨 시도로 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예를 들어 1983년 수평의 분할 작품. 이것은 먹물로 전면을 검게 한 한지 (한지를 먹물에 담갔다)의 위에 흰색 한지를 좁고 가늘게 띠 모양으로 잘라서 횡으로 길게 붙여갔다. (덧붙여 말하자면 그의 경우, 변화 혹은 전환 의 시기에는 화포가 아니라 한지와 작품의 시도였다)

그것의 제작방식에는 화포의 경우 물감의 면이 닿는 곳이 먹 하나의 색 위에 흰색 한지의 면이 올려 져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점이 먹 의 검정 면과 한지의 흰색 면이 동격이고 이 두 가지가 한 면이 되어 [회화 공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한지의 흰색 면이 단순히 위에 있다는 이유보다 더 중요한 점이 직전의 [3년간]의 흰색 면의 연장이었다라는 데에 있다. 흰색물감 대신해서 흰색 한지를 사용한 것이다. 띠 모양 으 로 잘라 붙이는 것은 정방형 분할의 변형이다. 물감 대신해 한지를 사용하는 것으로 먹에 의한 검정 면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것과 동시에 원래대로 라면 [이미지]와 [바탕]에 사용할 만한 것을 역전해서 사용한 의도도 있지 않았는가라고 여겨진다. [바탕]과[이미지]의 관계를 없애버림, 그것을 하나로 함, 그 시도가 지속되는 것이다. 그것을 종이에 의한 습작처럼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의연하고 어디까지나 회화의 시도이기 때문이다.

△치바 시게오(千葉成夫), 미술평론가

권동철 미술칼럼니스트  |  kdc@econovill.com  |  승인 2020.01.13  1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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