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여기, 한국의 맥주를 좋아하는 세계적인 셰프 고든 램지가 있다. 그는 어느날 자기가 출연하는 유명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HELL’S KITCHEN을 녹화한 후 불현 듯 프로그램 이름과 동일한 레스토랑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독설가로 유명한 그가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 “진짜 요리가 무엇인지 보여주겠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가 자신만만하게 문을 연 HELL’S KITCHEN은 어떤 요리를 보여줄까? 불세출의 명작 <요리왕 비룡>처럼 한 번 음식을 맛보면 신선들이 내려와 윈드밀을 하고 파도가 몰아치며 천국...아니, 지옥의 맛을 풍족스럽게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에이 그래도 설마 음식인데 뭐 크게 다르겠어라는 마음을 품고 글로벌 모빌리티 플랫폼 우버의 힘을 빌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문을 연 고든 램지의 HELL’S KITCHEN을 찾아가 봤다.

손님이 몰리면 예약이 한 달은 밀린다고 하는데 운 좋게도 한 번에 예약이 됐다. 그렇게 지옥의 주방으로 가보자.

▲ 헬스키친이 보인다. 사진=최진홍 기자
▲ 헬스키친이 보인다. 사진=최진홍 기자

심상치않다

고든 램지가 운영하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HELL’S KITCHEN은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 있는 시저스 팰리스 호텔의 로만 플라자 앞에 위치해 있다. 입구부터 심상치않다. 시저스 팰리스 호텔의 디자인 컨셉인 고대 그리스의 아름다운 신의 현상이 갑자기 끝나고 뭔가 독설 잘 할 것 같은 건물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짙은 원목으로 디자인된 별도의 공간이 나오며, 디스플레이에 고든 램지가 등장해 환영의 인사를 전하지만 왠지 독설하는 것 같아 빠르게 지나치자. 안쪽에는 고든 램지의 레스토랑에 방문한 기념으로 구매할 수 있는 ‘굿즈’ 상품들이 비치되어 있는데 왠지 이 모자와 티셔츠를 사면 독설 잘 할 것 같아 역시 빠르게 지나쳐 본다.

▲ 디스플레이의 고든 램지가 손님을 반기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 역대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셰프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홀은 약 300여명의 손님을 수용할 정도로 넓다. 전반적인 톤다운 디자인과 컬러에, 천장에는 불경스럽게도 십자가와 삼지창 형태로 천국과 지옥을 재미있게 표현했으니 완전 내 스타일이다. 홀을 후려치는 음악소리가 제법 크지만 크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입구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간단하게 술을 한 잔 할 수 있는 미니바가 보이고, 사선으로 걸어가면 바로 홀이 나온다.

▲ 천장의 장식. 사진=최진홍 기자

점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으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주방이다. 흥미롭게도, 주방은 손님들이 내부를 훤히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조리 과정을 손님들에게 투명하게 보여줘 음식에 대한 신뢰를 쌓는 방식이다. 최근 식당 근처에서 주방장 옷을 입고 끽연을 즐기다 기자에게 발각된 후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가 된 우리집 근처 단골 수타짜장면 사장님도 최근 야심차게 시도하는 전략이며, 요식업계의 중요한 트렌드 중 하나로 여겨진다.

재미있는 점은 오픈주방에서 일하는 셰프들이다. 평소 독설에 주눅이 들었을 것 같지만 의외로 밝고 힘차게 요리를 조리하고 있어 흥미롭다. 특히 셰프들의 숫자는 평균 10명인데, 모두들 두건을 착용하고 있다. 붉은색 두건을 착용한 셰프는 에피타이저 등을 전문적으로 조리하는 셰프고 푸른색 두건을 착용한 셰프는 메인요리를 조리하는 셰프라는 설명이다. 셰프들을 빨간팀과 파랑팀으로 나눠 요리경연을 시키던 리얼리티 프로그램 HELL’S KITCHEN의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 주방이 오픈되어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음식...음식을 보자

HELL’S KITCHEN의 메뉴는 다양한 편이다. 다만 기자는 중요한 행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도중 급하게 들렀고, 점심시간 외에는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기에 가장 무난한 시그니처 메뉴를 골랐다. 비프 웰링턴이 메인인 세트 메뉴며,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한다.

▲ 메뉴판. 사진=최진홍 기자

에피타이저는 시저 샐러드와 호박수프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시저 샐러드는 의외로 많은 양에 놀라고, 채소와 고기를 함께 씹었을 때 느껴지는 풍부한 감칠맛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향은 강하지 않으면서 우물거릴 때 이상하게 바삭거린다. 끝 맛은 소위 ‘불에 그을린 맛’이다. 무엇보다 부드럽다.

▲ 시저 샐러드의 맛과 양 모두 충분하다. 사진=최진홍 기자

호박수프는 새싹을 먼저 내온 후 수프를 그 자리에서 바로 부어주는 방식이다. 쌉싸름하며 역시 감칠맛이 난다. 일반적인 호박수프 냄새가 거의 나지 않으며 천천히 먹으면 배속이 든든하게 채워지는 느낌이 난다. 저 멀리 신선들이 윈드밀을 추려고 리듬을 타고 있다.

▲ 호박수프가 보인다. 담백하다. 사진=최진홍 기자

메인요리는 비프 웰링턴이다. 소고기의 안심이나 등심을 페이스트리 반죽에 입혀 오븐에 구워내는 영국식 요리다. 미국 라스베이거스까지 와서 굳이 대서양 건너 영국식 요리를 즐기는 기묘한 상황을 즐기며 천천히 음미해 보자.

페이스트리 반죽은 약간 차가우면서도 바삭한 느낌을 준다. 다만 여기에 소고기의 부드러운 ‘씹는 맛’이 더해지자 희한하게 균형이 맞는다. 소고기는 미디엄 수준으로 익혔기 때문이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입안에 침이 고이는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냥 맛있다. 소스의 진한 맛도 일품이다.

▲ 비프 웰링턴. 사진=최진홍 기자
▲ 비프 웰링턴. 사진=최진홍 기자

페이스트리 반죽을 한 소고기, 아니 스테이크를 음미하면서 바닥에 깔린 으깬감자를 나이프로 발라 먹는 재미도 있다. 으깬감자의 은은한 색이 음식의 풍미를 더하면서도, 으깬감자 특유의 다소 텁텁한 맛이 느끼할 수 있는 페이스트리의 옷을 입은 스테이크의 단점을 보완해준다. 중간 즈음 식사를 했다면 구은 과일과 마늘을 먹으며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약점도 있다. 주관적일 수 있지만 식사를 하다보면 페이스트리 반죽과 스테이크가 분리되는 현상을 겪을 수 있다. 물론 각각 떼어내 함께 먹으면 그만이지만 다소 번거럽다는 것이 문제다. 또 으깬감자의 양이 적기 때문에 스테이크와 함께 즐기기에는 ‘속도’가 제대로 맞지 않을 수 있다.

▲ 비프 웰링턴을 먹을 때 자주 반죽이 이탈한다. 사진=최진홍 기자

이렇게 메인식사를 마치면 다음은 에피타이저 시간이다. 브라우니 스타일의 달콤한 푸딩을 닮은 그 무언가 위에 카라멜 아이스크림이 얹혀진 요상한 에피타이저가 모습을 드러낸다. 에피타이저로 보기에는 상당히 크고 육중한 그릇(사실 모든 음식의 그릇이 마찬가지다)에 담겨 절로 위엄이 느껴진다.

한 입 베어물자 달콤한 맛이 온 몸을 쩌릿거리게 한다. 너무 격한 묘사가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진실이다. 정말 엄청나게 달기 때문이다. 왠지 먹으면 먹을수록 저 멀리 당뇨의 요정이 나에게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것 같다.

▲ 에피타이저로 등장한 '당뇨의 요정 소환기'. 사진=최진홍 기자
▲ 에피타이저로 등장한 '당뇨의 요정 소환기'. 사진=최진홍 기자
▲ 에피타이저로 등장한 '당뇨의 요정 소환기'. 사진=최진홍 기자
▲ 에피타이저로 등장한 '당뇨의 요정 소환기'. 사진=최진홍 기자

방법은 있다.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으면 단맛이 다소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또 취향에 따라 커피를 추가로 주문해 먹으면 역시 공포스러운 단 맛에서 탈출할 수 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고든램지 햄버거도 맛있다고 한다.

▲ 에스프레소와 에피타이저를 함께 먹으면 지나친 단 맛을 잡을 수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