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면조건05-10, 130×162㎝, 2005

「평면조건 80-20」은 최명영 작품세계의 이해를 위해 언급했던 ‘질료성 탐구’와 평면화의 최소단위들' 이외에 작가의 정신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또 다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시간의 간극을 두고 바라볼수록 무형의 이미지에서 오는 무한한 공간감과 질료에서 느껴지는 물성이 직관적으로 감지된다.

동시에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흡수하듯 화면을 덮고 있는 검은 공간들은 비어있는 듯 꽉 차있고, 꽉 찬 듯 비어있다. 이러한 인상은 최명영 작품세계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그가 펼쳐온 오브제의 도입이다.

‘평면조건’시리즈에서 반복적으로 추구한 물질의 이중성과 상통한다. 마치, 백색 면들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흑색 바탕 선이 전체적으로 차지하는 백색 바탕 속으로 흡수될 듯 말듯하다, 오히려 백색 면들 사이에서 서서히 본질을 드러내듯 한다.

이러한 표현은 물질과 물질, 예컨대 한지와 먹이 근본적으로 섞임으로써 나타나는 이중적 화합이다. 이때, 한지의 선택은 단순히 화면 바탕으로서 의미를 넘어 한지가 지닌 고유한 속성에 밀착한 정신적 발현이기도 하다.

한지가 우리의 정신과 전통을 잇고, 한국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물질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동시대 작가는 물론 많은 작품에 활용되었던 만큼 그 사용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먹의 사용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최명영 작품에 사용된 한지와 먹은 무엇보다 두 재료가 갖는 물질적 속성의 조화로운 만남에 있다. 한지에 스며드는 무한한 깊이감은 먹이 지닌 담묵의 세계이며, 먹의 깊은 맛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한지만의 속성이다. 두 물질은 물질이 스며들고, 흡수되는 만남에서 서로의 존재성을 확인한다. 여기에는 두 재료의 물질적 만남을 정신화하려는 작가행위도 포함되어있다.

한편, ‘평면조건’시리즈를 통한 물질과 비물질에 대한 작가적 경계선은 물질적 탐구과정에서 또 다른 공간적 연속성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롤러로 화면 가득 쌓인 물감을 천천히 균일하게 캔버스 밖으로 밀어낼 때 캔버스가 끝나는 경계마다 그대로 남겨진 불규칙한 물감 덩어리들은 캔버스가 끝이 아닌 또 다른 공간으로 이어진 시작점임을 암시한다.

이는 미완의 세계에 있는 광대한 공간일부를 그대로 떼어낸 자국처럼 남겨진 물질적 흔적에서느껴지는 공간감이다. 이 표현들은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생명체의 근원이며, 동시에 또 다른 공간속 평면을 사방으로 연결하는 시작점이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할 때 최명영은 어떠한 내러티브도 배제한 채 평면을 하나의 공간에 배치하여, 궁극적으로 공간과 합일되는 평면으로서 그 존재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현실화한 작가였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토록 오랜 시간 그를 회화의 평면성에 몰입하게 한 실질적 힘은 물성의 체득과정에서 경험한 물질의 정신적 환원이었고, 그 정신적 환원은 평면조건들의 상호 조화와 절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최명영(Dansaekhwa-Korean monochrome painter CHOI MYOUNG YOUNG, Dansaekhwa:abstract paintings of Korea Artist CHOI MYOUNG YOUNG,최명영 화백,최명영 작가,단색화 최명영,단색화:한국추상회화 화가 최명영,모노크롬회화 최명영,단색화가 최명영,韓国単色画家 崔明永,韓国の単色画家 チェイ·ミョンヨン)작품세계에 담긴 물질간의 적절한 관계는 우리의 지성과 작가의 지성이 상호 이해할 수 있는 물질의 근원적 형질에 다가선 작품의 진정성에 있을 것이다.

“예술가는 탐험가와 같은 존재다. 실재로 소우주를 탐험하는 탐험가이고자 한다.”던 최명영의 고백처럼, 그의 탐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변종필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