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강민성 기자] 은행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 최저 규제수준이 지난해 5% 포인트 상향되면서 은행들이 채권 매입을 대폭 확대했다. 이로 인해 채권 금리 변동성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 대출 재원을 채권 매입에 쏟아부으면서 운용수익도 큰 폭으로 하락하는 2중고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융당국은 2018년까지 은행에 대해 원화커버리지 비율을 95% 이상 유지하도록 했지만 지난해부터는 이보다 5% 포인트 오른 100%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계속 권고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규제에 따라 은행들은 현금화가 빠른 고유동성 자산을 매입하면서 해당 규제 비율을 맞추고 있지만 자금 운용 방식에 있어서 대출보다 유가증권 비중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유동성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시기에 은행들은 예대마진을 통해 수익성을 크게 확보했지만 규제 강화로 인해 대출금으로 운용했던 자금 일부를 채권 매입으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다.

◇ 유동성 확보위해 채권 비중 늘리는 은행권

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하나은행을 제외한 시중은행 모두 2018년 말부터 올해 3분기까지 전체 자금운용에서 유가증권 비중이 늘어나고 대출금 비중이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 출처=각 은행 분기보고서

특히 신한은행의 경우 2018년 말 낮아진 유동성커버리지 비율(LCR)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채권 매입을 늘리면서 유가증권 비중이 16.41%까지 높아졌다. 유동성커버리지비율은 은행이 외화 유출 등 스트레스 상황을 한달동안 겪는다는 가정하에 계산한 순현금유출 대비 고유동성 자산의 비율을 말한다. 고유동성 자산은 신용등급이 우량한 채권일수록 인정률이 높다.

신한은행은 9개월간(1~3분기) 유가증권 규모가 15%이상 증가해 잔액이 5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신한은행의 원화 유가증권 평균 잔액은 53조7943억원으로 지난해 말 46조5071억원 대비 15.7% 증가했다. 전체 자금운용 비중으로 볼 때 유가증권 비중이 2018년 말 15.47% 수준에서 지난해 3분기에 16.41%로 0.94%포인트 늘었다. 4대 시중은행 중 유가증권 비중이 가장 크게 증가했다. 신한은행은 이 기간 동안 미국 채권을 중심으로 매입을 크게 늘렸다.

2018년 말까지 신한은행은 채권(매도가능금융자산 분류)을 31조4345억원 보유했는데, 2019년 3분기 37조848억원으로 18% 증가했다. 이 시기에 신한은행은 국내채권과 미국 채권을 각각 3조9919억원, 1조1858억원 매입했다. 국내 채권은 2018년 말 대비 13% 늘어나 33조126억원까지 증가했고, 미국 채권은 2배이상 늘어났다. 3분기 매도가능금융자산으로 분류한 미국채권 규모는 1조8327억원에 달한다. 매도가능금융자산은 수익률 변동에 따라 따라 보유 중도에 매입·매각이 가능하기 때문에 단기보유금융자산 다음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기에 가장 유리한 자산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신흥국 채권보다 미국 채권을 중심으로 매입을 확대했다.

신한은행은 2018년말 99.23%였던 유동성커버리지비율을 지난해 3분기 103.41%까지 끌어올렸다.

지난해 국민·우리·하나은행도 채권 매입을 통해 유동성을 유지해왔다. 올 3분기 기준으로 볼 때 국민은행의 원화커버리지비율이 102.35%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중이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은 연말부터 올 초까지 채권 매입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 자금운용 ‘유가증권 비중 상승’…채권 매입을 통한 부작용 우려

지난해 3분기까지 4대 시중은행의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 평균은 103.99% 수준이다. 은행들이 올해 예상보다 순현금유출액이 늘어날 경우 채권 잔액 비중이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4대 시중은행은 2018년까지 채권을 포함한 유가증권 비중이 평균 13.74%를 유지했지만 지난해 3분기에는 14.46%까지 비중이 확대됐다. 반면 대출 비중은 2018년 67.81%에서 지난해 3분기 67.28%로 하락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로 운용된 자금 중 일부가 채권 매입으로 이동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는 유동성확보 차원에서 채권 매입을 늘린 결과”라고 덧붙였다.

은행들이 높아진 당국 규제로 채권매입을 늘렸지만 낮아진 채권 금리 때문에 자금 운용을 통한 수익률은 더 쪼그라들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로 은행권의 채권 이자율과 대출 이자율을 확인해본 결과 평균 0.95%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해 3분기 채권 매입으로 유가증권 비중이 올랐지만 대출 이자율 평균은 3.32%였고 유가증권 이자율은 2.38%로 차이가 컸다. 하나은행은 대출 금리 평균이 3.41%로 시중은행에서 가장 높았지만 채권 등 유가증권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률은 1.99%로 가장 낮았다.

이에 하나은행은 대출비중을 더 늘리고 유가증권 비중은 축소하면서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저금리로 은행권의 예대마진 금리차가 낮아지고 있는데 유동성 관리를 위해 채권 매입 비중이 늘어나면 자금운용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성은 더욱 위축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