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회 개인전 2009 갤러리 스페이스 이노 전시전경/Full Scene of 16th Solo Exhibition-2009 Gallery Space Inno, Seoul

허진이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자신만의 표현과 이야기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기에 허진의 그림에는 고대의 예술 정신과 전통적인 숨결뿐만 아니라 서양의 해체주의적 관점과 노마니즘적 시각, 후기모더니즘적인 사고 등 여러 시각과 관점과 방향이 존재한다.

그 때문인지 그의 그림에 대한 이론가들의 견해는 다양하다. 미술평론가 김복영은 허진의 예술을 ‘문자 그대로의 해체주의적 방식’이라고 표현했으며, 이종숭은 ‘인간과 역사의 운동을 화면의 표층으로 떼어내서 해체하는 것’으로 이해했고, 미술사가 심상용은 ‘현실의 해체적 재구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재현에 더 가깝다’는 조금 다른 관점을 드러냈으며, 서정걸은 허진의 그림에 ‘환경 문제가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허진의 그림은 다양한 이야기꺼리와 소재 및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이미지는 고대의 예술가들이 추구했던 것처럼 사실주의의 한 정점을 지탱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디오니스적인 사유가 저변에 흐르기도 하고, 고대를 사랑했던 프로이트처럼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무의식과 본능적인 향수, 심층 심리 등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희망사항도 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의 향수가 물질문명의 산물과 더불어 융화되는 모습으로 드러나는가 하면, 예술과 사회가 교류되는 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또한 고대에 관심이 많았던 아서 단토가 희망하는 것처럼 이론적인 것에 바탕을 둔 해석학적인 성향도 드러난다. 이것이 아마도 허진(ARTIST HUR JIN,許塡,허진 작가,한국화가 허진,HUR JIN,허진 교수,허진 화백,A Painter HUR JIN) 예술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다양한 의미와 이미지를 담고 있는 허진의 그림은 그만큼 많은 용량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물과 익명의 인간이 뒤섞이는가 하면, 수묵의 텁텁함이 듬성듬성 던져진 채색과 조화를 이루어 강렬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전통적인 수묵 산수화의 느낌을 전제로 자신만의 시각으로 변형된 독특한 허진의 산수가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기에 다양한 제재와 이야기꺼리를 거침없이 펼쳐 보이는 그의 그림은 현실의 단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대 같은 것이자 상징적인 것이라고도 하겠다. 정처를 알 수 없는 무대 위의 공연을 보는 듯한 그의 그림은 익명의 인간과 동물 그리고 산수라는, 어찌 보면 지극히 고전적인 주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도 흥미롭다.

고발자로서의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하면서도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리만큼 순수한 형태감과 자율성마저 지녔으므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게 그의 그림의 매력인 것이다. 요소마다 스며있는 촉촉한 색감은 우리의 오감을 자극시킬 만큼 예민하며, 다양한 모습의 익명의 인간들과 동물들의 표정 및 특징을 잘 포착한 형태는 예술철학적인 측면을 논하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아름다움과 순수성을 담고 있다.

△장준석(미술평론가,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