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여전히 프로포폴, 미다졸람 등 수면마취제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적지 않다. 수면마취제를 투여하면 정신이 몽롱해지고 기억이 점차 흐릿해지는 효과로 인해 환각 물질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과거 국내에서 일부 연예인들이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을 상습 투약하다 적발되면서 이 같은 불신을 더욱 키웠다. 기억력 감퇴 등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 같지만 모두 잘못된 상식이다. 물론 약물을 오남용할 경우 중독 등의 부작용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의 관리 감독 아래 안전하게 약물을 투약한다면 문제될 게 전혀 없다.

▲레미마졸람은 프로포폴과 미다졸람 등 기존 수면마취제의 장점을 결합한 제품이다. 출처=하나제약

'프로포폴' 대항마 '레미마졸람'

최근 '프로포폴'의 대항마로 '레미마졸람'이 각광을 받고 있다. 과잉 투여할 경우 호흡 억제나 저혈압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는 프로포폴과 달리 레미마졸람은 장기간 투여에도 약물이 체내에 거의 남지 않아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로포폴은 정맥에 투여하는 수면마취제다. 주로 수면내시경이나 간단한 시술, 성형수술을 진행할 때 쓰인다. 여느 마취제보다 마취유도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고 회복이 빨라 환자와 의사 모두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환각 효과로 착각할 만큼 개운함이 느껴지는데, 자칫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레미마졸람은 프로포폴과 미다졸람 등 기존 수면마취제의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시킨 제품으로 알려졌다. 특히 수면마취제 중독에서 해독제로 사용되는 '플루마제닐'을 함께 투여할 수 있어 약물 관리가 훨씬 용이하다.

관련 업계는 레미마졸람이 기존 수면마취제를 빠르게 대체하며 출시 3~4년 안에 약 4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하나제약을 비롯해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들은 독일 파이온사에서 개발한 레미마졸람의 판권을 사들이며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 나서고 있다. 기존 수면마취제보다 효능이 뛰어난 만큼 시장 선점 효과가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 레미마졸람 관련 국내 및 주요 국가별 일정. 출처=이베스트투자증권

출시 전부터 판권 경쟁 활발

레미마졸람은 한국을 포함해 유럽, 미국, 캐나다, 일본, 중국 등에서 출시를 앞두고 있다. 전 세계 2400명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해 제품의 효능 및 안전성을 검증하고 있다. 이 제품은 현재 ▲전신마취 유도 및 유지 ▲수술 및 진단 시 의식하 진정 ▲인공호흡 중인 중환자의 진정 등에 대한 적응증 획득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개발사 파이온은 유럽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 레미마졸람의 개발권 및 판권을 기술수출하며 글로벌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 먼디파마와 코스모가 각각 일본과 미국 판권을 보유하고 있다. 먼디파마는 지난 2018년 12월, 코스모는 지난해 4월 각 규제 당국에 판매허가를 신청했다. 모두 올해 상반기 중으로 허가 여부가 판가름 날 전망이다.

국내의 경우 마취제 강자인 하나제약이 일찌감치 레미마졸람의 판권을 확보해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이미 이 회사는 지난해 말 레미마졸람의 임상 3상 결과를 바탕으로 신약 허가 신청을 완료했다. 큰 문제 없이 레미마졸람의 시판 허가가 이뤄진다면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하나제약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까지 영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현재 파이온과 레미마졸람의 동남아시아 판권을 놓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 이어 동남아시아 판권까지 확보한다면 마취제 시장에서 하나제약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질 전망이다.

▲ 레미마졸람의 국내 출시 일정. 출처=하나제약

하나제약, 신성장 동력 발굴에 주력 

하나제약은 마취제 및 마약성 진통제 분야에서 과점적 지위를 차지하며 안정적인 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 회사의 지난해 상반기 매출액은 80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53억원, 당기순이익은 138억원을 기록했다. 마취제와 마약성 진통제는 정부의 인허가가 까다로워 신규 업체 진출이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제약은 현재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대규모 시설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내년 12월까지 주사제 신공장 건설과 설비 투자에 585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 회사의 연간 매출액이 1600억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공격적인 투자라고 볼 수 있다.

신공장은 기존 하길공장 내 약 3000평 부지에 들어선다. 신공장의 생산능력(CAPA)은 동결건조 주사제 1200억원, 플라스틱 앰플 주사제 400억원, 일반주사제 400억원 등 약 2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최석원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나제약이 2022년부터 계획대로 하길 주사제 신공장을 가동할 경우 외형과 수익 면에서 한 단계 레벨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신공장에서 주력으로 생산하게 될 제품은 2013년 독일 파이온사와 국내 단독 기술협약을 체결한 '레미마졸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27일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이 항서제약의 정맥주사 마취제 'Ruibeining'의 시판을 승인했다. 출처=하나제약

중국, 성분명 같아도 시판 허가

중국은 한국보다 한발 빠르게 레미마졸람 출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7일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이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된 항서제약의 정맥주사 마취제 'Ruibeining'(성분명 레미마졸람)의 시판을 승인하면서 경쟁에 불을 지폈다. 항서제약은 Ruibeining의 첫 시판 허가로 레미마졸람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됐다.

반면 경쟁사인 이창인복약업유한책임공사는 애가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회사는 2018년 11월 중국 정부에 레미마졸람의 시판 허가를 신청했으나 아직 결과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제품 출시가 늦어질수록 선점 경쟁에서 밀려나 수익 실현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게다가 항서제약과 달리 이창인복약업유한책임공사는 파이온과 정식으로 판권 계약을 맺고 레미마졸람의 출시를 준비 중인 회사다. 판권 계약을 맺지 않은 항서제약보다 저조한 성과를 거둔다면 충분히 억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항서제약의 Ruibeining은 파이온이 개발한 레미마졸람과 다소 차이를 보이는 제품이다. 성분명은 레미마졸람으로 동일하지만 촉매제로 불리는 염이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자칫 특허권 침해 문제로 불거질 수도 있는 사안이다. 약의 효능이나 작용기전을 구분하는 성분명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해외 기업의 특허권 보호에 소홀한 중국이기에 가능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기에 레미마졸람을 성분으로 한 Ruibeining가 시판 허가를 획득할 수 있었다"면서 "레미마졸람은 중국에서도 프로포폴과 미다졸람을 대체해 매출 15~20억 위안의 블록버스터 제품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