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꼰대를 상징적으로 비꼰 ‘라테는 말이야’라는 광고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라테는 말이야’는 기성 세대가 흔히 소시적 얘기하는 ‘나 때는 말이야’를 말함인게죠.
또 지난해 9월에는 꼰대라는 말이 해외에도 알려져 영국 BBC 방송에서 꼰대를 오늘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답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우리 기성세대들이 부끄럽게 알려지게 됨에 무참한 기분도 들고, 불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 움직임 속에 새해를 맞으면서 나름 조심도 하게 되고, 주변 어른들의 말투나 말 내용도 예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도 그렇거니와 직업이나 직종, 가정과 사회 같은 장소 불문하고 많은 어른들이 ‘나 때는 말이야’식으로 과거 얘기를 많이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했습니다.
자기들이 살아온 인생이고, 경험이니 그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자기 변명이 아닐까?’하는 자기 검열도 하게 됩니다.
문득 회사 다닐 때 계열사 동료에게 들었던 생각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당시 동료가 다니던 회사의 대표가 당신 집에 자동차를 장만하는데, 차번호가 뒤 오름차순으로 되어있는 차량 번호를 받아달라고 요청해서 총무 담당자가 그 번호를 받기위해 몇 개월을 구청 등에 쫓아다니며 어렵게 구했다는 얘기였지요. 뒤 오름차순으로 된 차번호가 행운이라는 얘기에 그랬다는 거죠. 그 일을 생각하고 아파트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 중 오름차순 번호, 예를 들어 1234같은 차를 찾아보니 정말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100대중 1대나 2대 정도 확률인 것 같습니다.
이 얘기를 요즘 젊은이들이 들으면 완전 꼰대, 나아가 적폐 수준이라고까지 하지 않을까요?
돌아보면 그런 종류의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목적과 수단이 헷갈리고, 관계를 중시하고, 달성에 방점을 두고, 그것을 성취라 생각하고 말이죠.
일단 나 자신이 ‘라테는 말이야’에서 자유롭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희망도 보입니다.
꼰대와 멘토의 경계선이 있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하고 과거 얘기를 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과거만을 말하면 꼰대가 되는 거고, 미래까지를 말하면 멘토가 된다고 하네요. 또 어른으로서 자기의 과거 얘기를 가지고, 불합리한 지시에 써먹는 순간 꼰대로 전락하니 우선 그것을 피해야하겠지요.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의지를 가지고 탈 꼰대를 위한 몸부림을 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한 조사에 따르면 자식 같은 2030세대의 70프로는 여전히 인생에서 멘토를 필요로 하고 있다합니다.
내가 말하기 전에 ‘그대의 아픔은 무엇인가?’식으로 접근해서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거나, 그게 안 되면 아예 입을 다물고 경청하는 자세로 가면 어떨까요?
듣는데서 진정성이 나오고, 우리는 더 가까워지고, 성장할 수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