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명인간-신체이야기, 1999, 한지에 수묵 및 아크릴, 295×806cm/Anonymous Human-Talking about Body, 1999, ink and acrylic on hanji, 295×806cm

탈출의 욕망과 신체적 무기력함, 화려한 아픔과 부조리한 고발의 역설이 그렇게 요구했듯이, 지향과 정처 없음의 동시성, 그리고 그 부조리함으로부터의 실소....가장 코믹하게 다루어지는 비극, 혹은 슬프지만 우습게 슬프다는 그 ‘부조리’로부터의 웃음인 실소! 

그래, 허진(ARTIST HUR JIN,許塡,허진 작가,한국화가 허진,HUR JIN,허진 교수,허진 화백,A Painter HUR JIN)의 회화에서도 동기는 출구 없는 절망이었지만, 종국은 (절규요 통곡이 아니라) 실소고 불가피한 자조의 실소인 것이다.

그렇다면, 동기의 훼손인가? 그렇지 않다. 고발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회화의 고발이 특별 검사제의 뒤를 따를 도리는 없으므로. 그것이 회화의 본질이고, 회화적 고발의 본질이며, 일찍이 꾸르베와 도미에로부터 부단히 확인되어 온 회화사의 진실이기도하다.

▲ 익명인간-현대 십장생도(現代十長生圖)2, 1999, 한지에 수묵채색, 244×1265cm/ Anonymous Human-Modernised Sipjjangsaengdo(Painting about 10 Symbol of Longevity)2, 1999, ink and pigment on hanji, 244×1265cm

문제는 그림이 진지하게 사회를 고발하려 든 나머지 어설프게 대법관의 자리를 넘보는 것이며, 정말로 울게 하려다가 삼류 신파로 전락하는 것이겠다. 회화는 진지한 판사로서가 아니라, 가장 부조리한 판사로서만 세상을 송사에 부칠 수 있는 것이며, 종국으로는 그 자체의 부조리를 통해서만 조리를 교훈할 수 있다는 말이다.

회화는 눈물을 흘리게 하는 대신 가장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아픔을 환기시킬 수 있을 뿐이다. 허진의 이미지 세계가 보여주는 수사적 아픔과 고발, 다소 비둔한 몸매와 어설픈 태도들이 실토해내는 탈출과 지향의 역설적인 언설들, 코뿔소와 코끼리로 대변되는 부조리하고 우스꽝스러운 십장생, 장난감 같은 소도구들과 인스턴트 음료캔, 그리고 제 구실을 못하는 이정표에 포위된 정갈한 수묵들로부터 우리가 만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부조리로부터의 실소’에 다름 아니다.

해학의 한 현대적 활용형으로 간주하고 싶어지는 그것은 하나의 진지함이 파손되고, 이를 메꿀 다른 진지함이 출범하지 못한 시대의 불가피한 미학이이기도 하다.

△심상용(미술사학 박사, 동덕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