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명화된 도산 안창호 초상, 2001, 한지에 수묵채색, 226x175cm/Portrait of Anonymized the Dosan Ahn, Chang Ho, 2001, ink and pigment on hanji, 226×175cm

허진의 회화는 현실의 해체적 재구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재현에 더 가깝다. 이해를 위해 우선 우리의 근,현대사에서는 애시당초 해체가 출범이자 유일한 현실이어 왔다는 점이 환기되어야 한다. 보라.

왕조의 몰락으로부터 제국식민 시대를 거쳐 신탁 통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동란으로부터 IMF에 이르기까지 정체감의 부재와 파편화된 역사의식, 맥락 부재의 사건들과 글로벌리즘 등, 이른바 해체의 각종 증후들은 이미 우리에게 담론이 아니라 현실이었고, 실존의 조건이었다.

아픔의 공감이자 고발이었다. 그러나, 허진의 이미지들은 아픔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수려하고, 고발자의 비장한 언어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수사적이다. 아픔이되 화려한 아픔이고, 고발하는 동안에도 눈은 즐거워야 한다는 식의 고발이랄까.

이를테면, 허진의 아픔은 수려한 아픔이고 눈물없는 아픔이었고, 고발이더라도 가장 부조리한 고발이자 송사없는 고발이었다. 그렇다면, 이 모두는 의미와 무관한 통사론의 남발에 불과한가? 구문론의 부적절한 구사며,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사이의 미숙한 표류라는 말인가?

당시, 작가는 또 분노니 갈증이니 하는 단어들을 화제로 삼곤 했는데, 격앙과 분노를 표방하기에는 화면의 전후좌우가 너무 정연하고, 과도한 이미지들은 갈증으로 인도하기보다는 오히려 과식의 거북스러운 느낌에 더 가까웠다.

그러므로, 허진(ARTIST HUR JIN,許塡,허진 작가,한국화가 허진,HUR JIN,허진 교수,허진 화백,A Painter HUR JIN)의 회화는 현실에 대한 조형적 조작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해체인 현실의 충실한 독해자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심상용(미술사학 박사, 동덕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