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ditional Planes B8520, 75x140cm Oriental Ink on Korean Hanji, 1985

최명영의 작품이 균질적인 모노크롬 회화, 그것도 전적으로 흑과 백이라는 무채색 모노크롬 회화(한때 그는 붉은 순색의 모노크롬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근자에 와서는 그것마저 단념하고 있다.)라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왜냐하면 이들 무채색이 또한 그려진 작품에 대한 작가의 「중립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단일 색면은 작가의 「행위성(行爲性)」을 억제하고 나아가서는 그것을 중화하는 롤라작업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 롤라는 다시 화면의 텍스츄어(그 텍스츄어는 이미 채색된 물감의 겹친 층에 따라 미묘한 변화를 일으킨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표면과 동화되는 것이다.

때로 그의 모노크롬 화면에 나타났다가는 사라지는 소단위의 네모꼴이 드러난다. 그 네모꼴들은 그러한 모양으로 화면 위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드러나고」있는 것들이며 바탕에서 스며 나오듯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의도된 것들이며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고루 화면을 덮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네모꼴들은 네모꼴이라는 형태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형태를 이루는 메워졌다가는 다시 벌어지는 「틈」이 문제가 되는 것이며 그 「틈」들이 바로 화면의 구조적 평면화, 즉 바탕과 그것을 뒤덮은 모노크롬 색면과의 동질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처럼 하여 최명영의 회화는 그대로 「평면구조체」가 되며 그 구조체는 가장 원초적인 상태의 회화, 바꾸어 말해서 모든 류의 일루젼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하나의 「장(場, field)」으로서의 회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나는 자주 예술이란 필경 「인간의 정신과 물질과의 만남」이라고 한 쟈트 마리탱의 말을 되뇌 이곤 한다. 최명영의 작품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 말을 이를테면 말레비치 풍으로 「인간의 감성과 물질과의 만남」이라는 뜻으로 옮겨보는 것이다.

그만큼 최명영(한국단색화 최명영,Dansaekhwa-Korean monochrome painter CHOI MYOUNG YOUNG,DANSAEKHWA:South Korea Artist CHOI MYOUNG YOUNG,최명영 화백,최명영 작가,단색화 최명영, 모노크롬회화 최명영,단색화가 최명영,韓国単色画家 崔明永,韓国の単色画家 チェイ·ミョンヨン)의 회화는 그것이 백색 모노크롬의 것이든 흑색 모노크롬의 것이든 섬세한 감성으로 물들어진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투명한 감성」이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 하나하나가 물질 너머의 무한한 공간을 그 속에 담고 있으며 그 공간이 또한 우리의 감각을 뛰어넘어 「존재」가 아닌 「생성」의 은밀한 내재율(內在律)을 크게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성」, 바로 여기에 동양적 사유(思惟)의 근원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일/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