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기 랩퍼 '염따'의 노래 '돈 Call Me' 뮤직비디오. 출처= 유튜브 채널 'dingo freestyle'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Flex, 난 슈퍼 Flex, 알잖아 내 Class, 돈 없으면 전화 하지 마” “Flex, 해버렸지 뭐야”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랩퍼 ‘염따’의 노래 <돈 Call Me>의 한소절과 그의 유행어다. 여기서 플렉스(Flex)는 ‘한꺼번에 많은 돈을 쓰거나 비싼 물건을 사는 것으로 자신들의 부를 과시한다’는 의미의 은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지고 랩퍼들이 이 말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현재 플렉스는 젊은이들에게 재밌는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재밌게도 이 플렉스는 최근의 소비 트렌드에 반영되면서 유통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비 위축 국면의 ‘기현상’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는 대내외적 악재들로 인해 침체돼있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민간의 소비 위축으로 이어졌다. 지난 12월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2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15년 장기평균치(2003년~2018년)를 기준값 100으로 정하고 그 수치가 100보다 작을 때 비관적인 소비심리로 간주하는 소비자심리지수는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연속으로 100을 밑돌았다. 11월에 이르러서야 100선을 회복(100.9) 했으나 12월에는 소폭 하락하면서 100.4를 기록했다. 연말연시 특수를 기대할 수 있는 시기를 제외하면 지난해의 대부분은 소비가 위축된 상태가 유지된 것이다. 

▲ 출처= 한국은행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 고가 명품의 소비는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한동안 대세 소비 트렌드였던 전형적인 불황기 소비 ‘가성비(가격 대비 만족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트렌드가 소비자 개인의 만족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심비(’나‘의 마음이 느끼는 만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트렌드로 전환된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현상이다. 재미있는 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구매력이 있는 30대 이상의 세대가 아닌 20대 소비자들의 명품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약 3500만 회원을 보유한 롯데 엘포인트의 빅데이터 센터 ‘롯데멤버스’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트렌드Y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명품시장의 규모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2년 동안 약 3.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20대 소비자들의 명품소비 구매 건수는 약 7.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출처= 롯데멤버스

‘플렉스’가 살린 백화점? 

이러한 플렉스 트렌드는 소비 위축으로 지난해 많은 어려움을 겪은 유통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와 산업통상자원부가 함께 분석한 국내 백화점 품목별 판매 성장률 자료에 따르면 고가의 명품은 2016년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냈고 지난해에는 백화점의 6대 품목(잡화, 여성캐주얼, 명품, 가정용품(가전), 아동스포츠, 남성의류)들 중 가장 높은 판매 성장률을 기록했다. 다른 품목들의 판매 성장률이 소비 침체로 정체돼있거나 더딘 성장으로 백화점의 매출이 부진한 가운데서 고가 명품 소비 증가가 증가하면서 백화점의 실적은 ‘최악’의 상황을 면했다. 이는 국내 주요 백화점들의 실적과 매출 비중으로도 나타난다.

대내외의 악재로 지난해 3분기 전년대비 영업이익 56% 감소라는 충격적인 실적을 기록한 롯데쇼핑의 유통채널들 중에서 롯데백화점의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890억원에서 1040억원으로 늘어나 16.5%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돋보였다. 그런가하면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3분기까지를 기준으로 연간 소비 2000만원 이상 상위 2% 고객이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했다. 이에  주요 백화점들 중 매출에서 명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30%로 가장 높은 신세계백화점은 대구점에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Hermès)’를 입점시킴으로 명품 브랜드 제품군을 강화하기도 했다. 

▲ 출처= 하나금융투자

이에 대해 하나금융투자 박종대 연구원은 “플렉스(Flex) 소비 트랜드로 2011년 이후 급감했던 20대에서 30대 소비자들의 명품 소비가 늘었고 이들은 백화점 매출의 중요한 고객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소비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SNS를 통해 자신의 만족을 드러내고, 많은 이들에게 공감받길 원하는 젊은 세대의 행동 유형들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련의 ‘플렉스’ 소비 트렌드는 한동안 지속돼 더 많은 소비 영역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롯데멤버스 황윤희 빅데이터 부문장은 “소득 불균형 심화로 인해 초저가 상품이나  프리미엄급 고가 상품만이 잘 팔리는 양극화된 소비 현상이 점점 더 뚜렷해지면서 최저가 쇼핑과 명품 쇼핑이 동시에 급성장하고 있다”라면서 “명품 대중화와 이용 연령대 확대에 따라 국내에서 명품들을 유통하는 채널들은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