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이 악랄할수록 히어로가 더욱 빛나는 법이다.

2019년 상반기는 마블 영화를 기다리며 보낸 듯하다. 전년도 ‘어벤저스인피니티 워’를 보고 난 뒤부터 거의 일년을 손꼽아 기다렸던 영화 ‘어벤저스엔드게임,’ 그리고 그 이 전에 ‘캡틴 마블’과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까지. 하지만 히어로 영화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어벤저스인피니티워에서엔드게임에 이르는 2년간의 대장정이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타노스라는 막강한 악당 대장의 등장이었다. 강한 빌런이 등장해서 그와 맞서 싸워나가는 히어로들의 이야기를 한 편에는 담기도 힘들었기에, 두 시간 반짜리 영화와 세 시간짜리 영화 두 편, 무려 다섯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풀어냈다.

악당이 강할수록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지는 법이다. 현실세계에서도 대하는 사건이 끔찍할수록 우리는 그 배경에는 어마어마하게 치밀한 악당의 소행이 도사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엄청난 비극의 이면에는 천재적이면서도 무소불위의 빌런이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 인류사를 통틀어 보면 그럴만한 천재 악당이 없었던 경우가 많다.

현세 인류가 기억하는 가장 엄청난 악마는 히틀러가 아닐까 싶다. 당시 망가져버린 독일이라는 국가와 세계대전의 주범인 그를 엄청난 악마로 숭배하는 무리들까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제대로 살펴 보거나 그를 가까이 한 사람들의 평을 들어본다면, 그는 ‘능력’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한참 있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그는 ‘읽기’를 극도로 싫어했다. 보좌관들이 올린 문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참모들과는 의논이 아니라 그때그때 떠오르는 내용으로 알맹이 없는 연설만 주구장창 늘어놨다.

 

무능한 리더의 눈높이에만 맞추는 똑똑한 참모들

히틀러가 장악한 정부는 늘 엉망진창이었고, 관료들은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어느 한 둘이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가 무슨 일을 맡고 있는 지도 몰랐다고 한다.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히틀러는 한없이 미루기만 했고, 결국 막판에 가서야 자기 느낌대로 처리해 버리곤 했다. 심지어 그의 오랜 친구조차 그를 종잡을 수 없는 인간으로 치부했다. 그러니 히틀러의 부하들은 그의 기분 상태에 따라 그날 그날을 어떻게든 눈에 들기 위해 노력했고, 아니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오후가 되어야 기상하는 나태함과 스스로에 대한 무식 콤플렉스 때문에 놀림감이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언론에서 조금 칭찬하고 부추겨주기만 해도 헤벌레 했다. 독일 지도층으로부터 시종일관 과소평가를 받았고, 그런 개인적인 단점이 무수했지만대중을 사로잡는 데는 재주가 있었던지 아니면 참모들이 그런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렇게 정치선전을 잘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능력 있는 정부가 아니었어도 우리가 기억하는 그런 끔찍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악동으로서의 재능은 유감없이 발휘했다.

무능함과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그런 인간이 그 수많은 엄청난 일들을 혼자 기획하고 지시했을까? 단초는 제공했을 지 몰라도 그 구체적인 실행 방안들은 알아서 기는 참모들의 머리와 손 발에서 자행된 것들이라고 봐야 한다. 눈에 들기 위해 좋아할 만한 것들을 내놓고,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무서운 것은 히틀러라는 리더의 무능과 열등감이 아니라, 거기에 맞추어가는 휘하의 똑똑한 참모들의 조직적 행동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능한 리더의 눈높이에 맞춘 똑똑한 똘마니들이 자행한 합동 깨춤의 향연이었다.

일년 전에 봤을 때도 마음에 콱 박혔던 문구가 일년이 되자 페이스북 알림이 되어 또 나왔다. 허락 받지 않고 그 전문을 인용함에 미리 용서를 구한다. ‘좋은 조직은 일하는 사람과 정치하는 사람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과 과거를 답습하는 사람도 구별해 낸다. 조직에 보탬이 되려는 사람과 스스로에게 보탬이 되려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과 자신에게 유불리를 따지는 사람도 결국에는 판별한다. 그래서 결국 조직의 결론은 공정함이라는 단순한 이치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을 설계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운명은 그렇게 갈리는 것이다. 이런 단순한 이치가 바로 어쩌면 수없이 오랜 그리고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의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

몇 번 이직해본 직장생활의 결론을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거기서 거기’ 였다.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 없어지면 어느새 그보다 훨씬 더 한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뭔가 열심히 하려는 사람보다는 남이 열심히 해 놓은 것을 난도질하는 사람이 승승장구 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당연한 것도 어느 순간 상황 논리에 막혀서 한 치도 나아갈 수 없는 벽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스스로가 빛을 발하도록 노력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생채기 내고 밟아서 빛나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조금 더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일이 대부분의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무능하고 열등감에 휩싸였던 히틀러에게 인정 받는 길은 자신의 명석하고 우수함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히틀러가 안심할 수 있도록 똘마니가 되는 길 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직에 보탬 보다 스스로에게 보탬 되고자 하는 자

누구는 똥 칠갑을 해놓고도 칭찬 받으며뒷구멍으로 빠져나가지만, 또 다른 누구는 어렵사리 분칠을 하고도 제대로 된 관심 한번 받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들었던 얘기가 생각난다. “산에서 똥을 좀 주워서 주변을 잘 꾸며봐!”라는 지시를 받는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당연히 정신 나간 소리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똥 덩어리를 주워서 부대를 꾸민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술 자리 농담으로 전해서 들었던 적도 있었고, 유명 일간지에 만화를 통해서도 소개가 됐던 적이 있다.

때는 평균 기온이 10도 밑으로 한참 내려가 있던 한겨울이었고 장소는 전방부대였다. 부대장이 지나가는 말로 부대 환경미화를 운운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인사계가 병사들을 산으로 내몰았다. 당장 화단이며 부대 주위에 꾸밀만한 돌을 캐와서 주변을 가꾸라는 것이었다. 땅이 온통 꽁꽁 얼어서 삽이나 곡괭이가 들어가지도 않는 데 어디 가서 돌 덩이들을 캐온다는 말인가?

입이 댓 발이나 나온 병사들은 그래도 시키는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이 산 저 산을 헤매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마침 어느 골짜기에 가보니 색깔도 알록달록하고 괜찮아 보이는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적당한 크기들을 모으고 담아서 진땀을 흘리며 부대로 실어 날랐고, 화단이며 부대 주위를 꾸몄다. 고생한 병사들보다 그렇게 설레발을 친 인사계가 칭찬을 독차지 했다. 부대장이며 모두가 흐뭇해 하며 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자 이윽고 영하에서 오를 줄을 모르던 기온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날이 풀리자 어느 순간부터 부대는 온통 똥 내음의 악취로 그득했다.

건물 바깥으로 나온 장병들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겨울 내내 부대 미관을 보기 좋게 꾸미고 있었던 돌들이 녹아 내리면서 악취를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돌 덩어리인줄로만 알고 주워온 것들은 인근의 다른 부대 변소에서 나온 똥이었다. 건물 외부에 있었던 변소 똥이 얼어서 탑처럼 쌓이자 병사들이 그 똥탑을 깨트려서 산골짜기에 버렸는데,얼어서 돌처럼 단단해져 있었기에 마침 돌을 구하러 간 병사들이 되가져온 것이었다. 영하의 기온이 지속되는 혹한의 시절에는 괜찮았지만, 봄이 오면서 날이 풀리자 얼어있던 똥 덩어리들이 녹으면서 악취를 풍겨낸 것이었다. 똥 칠갑의 뒷감당은 오롯이 한 겨울에 고생했던 병사들의 몫이었다.

소통의 가장 큰 적은 불통이 아니다. 소통하고 있다는 착각이다. 그리고 리더가 범하는 가장 큰 실수 중의 하나가 이런 똘마니가 보고하는 것이 소통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보통 이런 똘마니의 보고에는 옳고 그름이나 조직의 발전보다도 자신의 이로움이 많이 관여된 경우가 많다.그리고 리더로부터의 이쁨을 받기 위해 최소한의 시스템 같은 것들도 무시한다. 아니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똘마니들이 설치는 조직은 히틀러 당시의 체제와 같이, 공정도 체계도 없는 경우에 더욱 두드러져 나타난다. 필요할 때마다 뭔가 긴요해 보이는 것들을 속속들이 물어오는 똘마니를 자신의 오른팔이나 왼팔이라고 생각하는 리더가 있다면, 조직을 그렇게 망가뜨린 책임 소재는 리더에게 있다. 눈에 보이는 사사로운 것들은 아깝다고 여기면서, 가장 소중한 인적자원이 상처받고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리더도 많다. 극성을 부려봐야 사무실에서 아낄 수 있는 것은 (물론 이런 것도 아껴야 함이 당연하다) 무조건 아끼라고 성화이면서, 정작 이들 사람들이 의기투합하여 더 큰 기여를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까지는 미처 깨닫지 못하는 리더가 많다.

비즈니스는 어쩌다 한 번 이기고 마는 경쟁이 아니라, ‘이기고 또 이겨야’ 하는 전쟁이다. 세치 혓바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철저한 실행의 반복만이 필요하다. 시장에는 가장 좋은 상품은 없다. 그저 조금 더 나은 상품만이 있을 뿐이며, 더 나았던 상품은 언제든지 뒤쳐지는 세상이 됐다. 이렇게 이기고 또 이겨야 하는 전쟁과도 같은 비즈니스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그래야지만 성과를 공유할 수가 있는 것이고, 조직적 발전을 도모해 나갈 수가 있다.

실제로 어떤 일을 해봤고,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아는 사람은 별 생각 없이 부하직원, 친구 혹은 가족에게 부탁이나 지시의 말을 함부로 툭툭 던지지 않는다. 때문에 레이달리오는‘Principles(원칙)’에서 ‘의사결정 능력이라는 것은 현실과 부딪히면서 배우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제대로 된 현실 경험도 없고,문제를 공개적으로 해결하지도 못하는 ‘똘마니 의존형’ 관리자나 리더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