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올해 첫 사내행보는 ‘파운드리 미세공정 현장’으로 2일 확인됐다. 이 부회장은 현장에서 “과거의 실적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서 “역사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잘못된 관행과 사고는 과감히 폐기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다양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현재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으나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에서는 대만 TSMC의 높은 벽에 막혀 이렇다 할 반등 포인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이 부회장은 ‘군림의 현장’이 아닌, ‘도전의 현장’을 찾아 “역사는 기다리는 것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설파한 셈이다.

지난해는 5G...성과 나왔다

이재용 부회장의 신년 행보를 보면 삼성전자의 도전 상대를 파악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신년 첫 행보로 항상 ‘삼성전자가 잘하는 것’이 아닌, ‘삼성전자가 도전해야 하는 것’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지난해 5G 현장을 찾을 장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지난해 1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신년회에 참석한 후 3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찾아 5G 네트워크 통신 장비 생산라인 가동식에 참석했다. 이 부회장이 찾은 5G 네트워크 장비 공장은 업계 최초로 스마트팩토리 방식이 적용됐으며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생산성을 높여 제조역량을 높일 수 있다. 

이 부회장은 당시 가동식 현장에서 고동진 IM부문 대표이사 사장, 노희찬 경영지원실장 사장, 전경훈 네트워크사업부장 부사장 등 경영진과 네트워크사업부 임직원들에게 “새롭게 열리는 5G 시장에서 도전자의 자세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전자업계의 간판스타’로 활동하고 있으나 통신장비 시장에서는 철저한 후발주자다. 특히 중국의 화웨이는 글로벌 통신 네트워크 시장의 강자로 활동하며 사실상 1위 자리를 굳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부회장은 5G 원년인 2019년을 맞아 자사의 5G 통신 네트워크 현장을 방문해 새로운 도전의식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4G 통신 네트워크 시장은 화웨이가 장악하고 있으나 5G 통신 네트워크 시장은 아직 무주공산인 상태에서, 삼성전자가 빠르게 시장을 장악해야 한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성과는 이미 나왔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5G 통신 네트워크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화웨이를 바짝 추격하며 2위 자리를 꿰차고 있다. 2020년 점유율 20%가 목표다.

▲ 삼성전자 화성 사업장이 보인다. 출처=삼성전자

올해는 ‘파운드리’

이 부회장이 지난해 신년 행보를 통해 5G 네트워크 시장 장악 의지를 강조했고, 이는 일정정도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연스럽게 업계에서는 올해 신년 행보가 주는 메시지에 주목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2일 찾은 반도체연구소는 파운드리 미세공정의 최전선이다. 역시 ‘도전의 현장’이며, 상대는 TSMC다. 지난해 행보를 통해 5G 통신 네트워크 시장의 넘어야 할 벽이 화웨이였다면, 올해는 파운드리의 TSMC를 넘어 ‘역사를 만들자’는 메시지를 내놨다.

상황은 복잡하다.

삼성전자는 2005년부터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한 상태며 2010년 모바일 AP 엑시노스(Exynos 3) 양산을 통해 그 실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또 2013년에는 800만화소 아이소셀 모바일 CIS를 양산했고, 2015년에 업계 최초로 14나노 핀펫 공정을 적용한 엑시노스7 옥타 양산을 통해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 올린 경험이 있다. 파운드리 로드맵이 탄력을 받으며 단숨에 글로벌 시장 2위를 꿰찼으며, 7나노 공정을 기점으로는 사실상 TSMC와의 양강대결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에도 성공했다.

그 중심에는 반도체 비전 2030 로드맵이 있다. 2030년까지 133조원의 투자를 단행해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최강자를 노리는 것이 핵심이며 연구개발에 73조원, 생산 인프라에 60조원을 투입하는 로드맵도 나왔다.

그러나 TSMC의 벽은 높았다. 업계 및 시장조사업체 트렌스포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TSMC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2.7%를 기록해 3분기 50.5%에서 2.2%P 상승할 것으로 보이는 반면, 삼성전자는 17.8%로 3분기 18.5%보다 0.7%P 줄어들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으나 TSMC와의 격차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으나, 삼성전자의 무기는 역시 초기술 격차다. 지난해 4월 EUV 5나노 공정 개발에 성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2021년 3나노 공정까지 노리고 있다.

특히 7나노에 이어 3나노에서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공정을 도입하는 장면이 중요하다. 반도체 미세화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인 GAA를 적용한 3나노 반도체는 최근 공정 개발을 완료한 5나노 제품에 비해 칩 면적을 약 35% 이상 줄일 수 있으며, 소비전력을 50% 감소시키면서 성능(처리속도)은 약 30% 향상시킬 수 있다. 그 현장을 이 부회장이 찾아 ‘도전’을 선언했으며, 업계에서는 그 성과에 벌써부터 기대감을 키우는 중이다. 당장 시스템 반도체 2030 로드맵이 탄력을 받으며 다양한 존재감을 보여줄 전망이다.

한편 이 부회장이 파운드리 현장을 찾아 새로운 도전을 타진한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파운드리 사업부 분사 가능성도 새삼 고개를 들고 있다. 글로벌 파트너들이 삼성전자에 많은 파운드리 물량을 제공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조직 내부에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이와 관련해 전혀 논의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마지막으로 이 부회장은 “우리 이웃, 우리 사회와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100년 기업에 이르는 길임을 명심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기업의 공적인 가치를 극대화시키며 상생을 위한 로드맵을 구축하자는 뜻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