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경제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미중 무역전쟁이 휴전에 접어들 전망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31일 중국 무역협상 대표단을 이끄는 류허 부총리가 내년 1월 초 무역합의 서명을 위해 미국으로 향할 것이며, 미국이 먼저 류 부총리의 방미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미국도 긍정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4일 미중 무역전쟁 합의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도 이를 인정하는 발언을 한 상태다. 심지어 대중 강경파로 분류되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ㆍ제조업 정책국장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합의는 이뤄졌고 가방에 집어넣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1단계 합의를 위한 모든 정지작업이 끝났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직접 만나 서명식을 갖는 '이벤트'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최소한 두 나라가 전쟁을 멈추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평가다.

잔불은 여전하다. 특히 미국이 중국 화웨이에 대한 제재 방침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의 자국 정부에 대한 보조금 이슈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내부 지적이 나오는 것은 리스크로 꼽힌다. 또 중국 정부가 내년 미 대선 추이를 보며 언제든 판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1차 합의는 초읽기에 들어갔으나, 2차 협상 과정에서 양측이 다양한 카드를 쥐고 새로운 전쟁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긴장 국면 완화
미중 무역전쟁은 단순하게 무역의 차원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향한 관세폭탄을 던지며 시작됐으나 이후로는 첨단기술 견제, 화폐 패러다임, 심지어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외교적 분쟁까지 불똥이 튀었다.

미국이 중국의 기술굴기를 견제하는 한편 화웨이에 압박을 가하고 홍콩 및 신장 위구르 문제에 목소리를 낸 장면과 중국이 이에 반발하며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 단적인 사례다.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바 있으며 중국 내부에서는 미국 국채를 사들이거나 희토류를 전략 물자화하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강대강 대치로 이어지던 미중 무역전쟁, 아니 경제외교패권 전쟁은 최근 두 나라가 1차 합의안에 도달하며 휴전 모드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내년 1월 첫 주에 무역합의 서명식이 열릴 것으로 관측하고 있으며, 시장은 오랜만에 불어오는 훈풍에 안도하고 있다.

안심하기는 이르다?
미중 무역전쟁이 숨 고르기에 들어갔으나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두 나라가 2단계 협상을 준비하는 가운데 원만한 합의를 위한 길 곳곳에 암초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1단계 협상에서 큰 실수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무역협정을 두고 "미국이 중국 정부와 기업간 밀월 관계에 손을 대지 못했다"면서 중국 정부와 기업의 유착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1단계 합의에 포함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미국이 지난 6월 중국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담긴 안을 보냈으나 중국이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1단계 합의가 이뤄진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WSJ은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막대한 지원을 단행하고, 이를 통해 중국 기업들이 미국 기업의 존재감을 지워가는 장면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낮은 금리로 기업에 금융혜택을 주거나 헐값으로 부지를 임대해주고 역시 비현실적인 낮은 전기료를 제공하는 것은, 결국 미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최근 WSJ의 보도에도 잘 드러난다.

WSJ은 지난 25일 화웨이가 중국 정부로부터 최소 750억달러 상당의 지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화웨이가 1988년부터 최근까지 최소 560억달러의 금융 지원을 받았으며 여기에는 중국개발은행(CDB)과 중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300억달러의 신용한도 제공, 수출 및 금융 대출로 받은 160억달러가 포함됐다는 설명이다. 중국 정부의 기술부문 인센티브로는 2008년부터 최근까지 약 250억달러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를 모두 더하면 750억달러가 된다는 주장이다. 결국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무차별 지원을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중국 기업이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흔들기 때문에 1차 합의에 이러한 내용이 빠진 것은 미국의 실수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화웨이는 27일 입장문을 통해 WSJ의 기사는 허위 정보와 잘못된 추론에 기반하고 있다며 "터무니없는 추측성 보도"라고 일축했으나, 당분간 이러한 지적이 이어지는 한 미중 2단계 합의는 '어려운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2단계 협상 자체가 원만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의 포린폴리시(FP)는 최근 보도를 통해 미중 두 나라가 2단계 협의에서 1차전처럼 관세를 무기로 휘두를 가능성은 낮지만, 서로에 대한 수출입 통제 등 다각적인 방식으로 제재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기술의 중국 수출 금지다.

미국은 현재 1단계 합의를 끌어내면서도 중국의 기술굴기 선봉장인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로이터 등 외신은 18일 미국 정부가 중국을 겨냥한 자국의 첨단기술 수출 금지 목록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해 눈길을 끈다. 로이터는 통제 목록에 이름이 올라간 미국 기술이 다른 국가로 수출될 경우 반드시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미국 외 지역에도 적용되며 국제기구와의 공조도 있을 전망이다. 사실상 중국으로 자국의 기술이 흘러가는 것을 막고, 그 범위도 미국 외 국가로 확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조치에는 장단이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1단계 합의를 끌어내면서도 중국의 기술굴기를 압박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문제는 약효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당장 미국의 제재에 유럽 등 동맹국들의 반응이 미지근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노르웨이 최대 통신사 텔레노어는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 5G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협력업체로서 화웨이와의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포르투갈 외무장관은 지난 5일 자국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포르투갈은 5G 네트워크에 중국 기업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지난 11일에는 독일 업계 2위 이동통신사인 텔레포니카 도이치란트(Telefonica Deutschland)가 자국 5G 네트워크 망 구축을 위해 화웨이와 노키아를 장비 공급업체로 선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미국 기업들도 우려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소식통을 인용해 미 국무부가 지난 몇 달간 AT&T와 버라이즌 등 13개 미 이통사 및 반도체 제조사에 화웨이 제재 동참에 참여를 촉구했다고 보도했으나 정작 미국 IT업계는 미 정부의 조치에 따를 경우 향후 '반독점법 소송'이라는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는 대외적인 우려며, 그 이면에는 기술력이 뛰어난 화웨이와 협력하지 못한다면 미래 비전을 창출할 수 없다는 조급함이 깔려있다. 지금도 구글 등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와의 거래가 필요하다며 미국 정부에 끊임없이 로비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1단계 합의가 끝나고 2단계 협의가 시작되면, 미국은 화웨이에 대한 제재 및 수출입 통제를 새로운 카드로 사용하며 중국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1단계에서 미처 풀어내지 않은 현안을 2차 협상카드로 활용해 새로운 전선을 만든다는 뜻이다.

만약 미국이 2단계 협상에서 중국에 대한 기술압박, 나아가 중국 정부의 자국 기업 보조금 문제를 화두로 끌어올릴 경우 중국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발표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결국 1단계 합의는 마무리되고 있으나 미처 1단계에서 논의되지 못한 현안들이 많은 상태에서 2단계 협상 또한 어려워질 수 있으며, 이 단계에서 두 나라가 관세 외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향한 '2차전'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