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격파괴-50%할인할까요?, 1995, 한지에 수묵채색, 300×600cm/Prices Destruction-50% Discount?, 1995, ink and pigment on hanji, 300×600cm

허진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우리시대에 던져진 하나의 물음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성적 합리적 사고, 그를 근거로 한 과학발달과 문명의 진보가 과연 우리의 총체적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고 볼 수 있는가?

합리성과 능률이라는 잣대만으로 이루어지는 우리들의 계산된 삶, 그리고 그것들 속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들이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과연 우리는 이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까? 허진은 그의 작품 속의 이야기들을 통해 이러한 물음들을 같이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모습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우리를 일깨우려 하고 있다. 필자는 허진의 이러한 의도에 주목하고 그의 작품들을 바라본다면, 그것들이 허구가 아닌 현실로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며, 설득력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필자는 허진의 이러한 의도가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이라는 측면도 가짐에 주목하고 싶다. 우리는 감정과 충동에 따른 자연적 삶을 살고자 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그것들을 이성의 합리적 사 고를 통해 억제하려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회문화적 규범이나 체제에 안주하고 싶어 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그러한 삶의 정체 속에 안주하기보다는 변화를 추구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양면적 심성과 태도를 갖고 우리 삶을 이루어 나간다. 우리는 그 어느 한쪽 극단을 향해 치닫고 그것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이러한 상반적 태도들과 심성들이 단순한 대립으로 그치지 않고 조화를 이룸으로써, 지금의 우리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왔다.

필자는 허진의 작품들 속에서 보이는 모순된 삶의 모습이나 그것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욕구들이 이런 맥락으로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그의 작품들 속의 모순이나 갈등 그리고 그것에 대한 불만 등이 보다 발전된 미래를 모색하는 계기들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일례로, 필자는 허진(ARTIST HUR JIN,許塡,허진 작가,한국화가 허진,HUR JIN,허진 교수,허진 화백,A Painter HUR JIN)의 뒤엉켜진 군상작품에서 나타나는 지금의 틀을 깨고 자유롭고 싶어 하는 모습과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모습의 병치가 단순한 허탈감이나 체념이기보다는 보다 나은 미래의 모색을 위한 몸부림인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박일호(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