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전(流轉)3, 1991, 여러 종이에 수묵채색, 130x160cm/Constant Transition3, 1991, ink and pigment on several kinds of paper, 130x160cm

허진은 화선지를 구겼다가 펼친다던가, 장지를 바닥에 놓고 물을 부어 그 위에 물감이나 먹을 뿌리고 흡수성이 강한 종이를 구겨서 덮는 방법을 주로 써왔다.

이때 도상은 해체된 형태로 나타난다. 또 그는 수묵채색으로 그린 여러 화면들을 조립하여 하나의 화면을 구사하기를 좋아한다. 말하자면 그는 상반되고 이질적인 여러 요소들을 하나의 조형적 언술로 구축하는 힘이 뛰어나다.

그런가 하면, 얽히고설켜 떼어낼래야 떼어낼 수 없는 인간과 역사의 여러 움직임들과 그 의미들을 각각의 화면의 표층으로 떼어내서 해체 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그의 이러한 구축과 해체 사이를 오가는 조형언어는 독특한 관점을 갖고 있다.

▲ 유전(流轉)2, 1991, 여러 종이에 수묵채색, 130x160cm/Constant Transition2, 1991, ink and pigment on several kinds of paper, 130x160cm

말하자면, 어떤 역사적 정황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그는 그 정황을 다른 역사적 범주들로부터 분리시켜 보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의 대조적 변수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형태 속에 조립되고 구축되어 있는 화면들을 통해 그는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 미래와 과거사이의 순환 체계 속에 들어있는 인물군상들을 동시적 시점에서 조망하고자 한다.

그가 동시적 시점에서 역사적 정황들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의 끊임없는 움직임이 드러내는 방대한 에너지의 생성과 비종결성에 끈끈한 탐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작가의 표현대로 ‘형상의 서술성’이 묵시적으로 던지는 메시지의 울림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역사에 대한 그의(ARTIST HUR JIN,許塡,허진 작가,한국화가 허진,HUR JIN,허진 교수,허진 화백,A Painter HUR JIN) 탐구심은, 모든 것을 분리하고 서로 떨어져 있게 하여 다르게 하려는 힘인 원심력과, 모든 것들을 결합하여 같은 범주 속에 일치시키려는 힘인 구심력 사이의 기묘한 길항관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종승/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