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전략의 핵심, 파운드리 사업에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파운드리에 집중하며 단숨에 글로벌 시장 점유율 2위로 올라섰으나 ‘거대한 산’인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 사례처럼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해 고객사 확보에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 삼성전자 클린룸이 보인다. 출처=삼성

삼성의 승부수, 그리고 난타전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주력은 메모리에 있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종료된 후 플랜B가 필요하다는 우려가 나왔고, 삼성전자는 이에 화답하듯 4월 반도체 비전 2030을 전격 발표했다. 2030년까지 133조원의 투자를 단행해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최강자를 노리는 것이 핵심이며 연구개발에 73조원, 생산 인프라에 60조원을 투입하는 로드맵도 나왔다.

핵심은 파운드리다. 삼성전자는 2005년부터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한 상태며 2010년 모바일 AP 엑시노스(Exynos 3) 양산을 통해 그 실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또 2013년에는 800만화소 아이소셀 모바일 CIS를 양산했고, 2015년에 업계 최초로 14나노 핀펫 공정을 적용한 엑시노스7 옥타 양산을 통해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 올렸다. 이후로는 공격적인 EUV 공정을 내세워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133조원 투자 로드맵까지 나온 셈이다.

삼성전자는 광폭행보를 거듭했다. 파운드리 로드맵이 탄력을 받으며 단숨에 글로벌 시장 2위를 꿰찼으며, 7나노 공정을 기점으로는 사실상 TSMC와의 양강대결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에 성공했다. 특히 글로벌 파운드리(GF)가 7나노 레이스에서 탈락하며 삼성전자 내외부에서는 “업계 1위 TSMC와 겨뤄볼 만 하다”는 자신감도 감지됐다.

그러나 TSMC의 아성은 강력했다. 26일 업계 및 시장조사업체 트렌스포드에 따르면 4분기 TSMC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2.7%를 기록해 3분기 50.5%에서 2.2%P 상승할 것으로 보이는 반면, 삼성전자는 17.8%로 3분기 18.5%보다 0.7%P 줄어들 전망이다. TSMC가 시장의 절반 이상을 과점한 가운데 2위 삼성전자의 입지가 더욱 줄어드는 순간이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이유는 무엇인가

삼성전자가 TSMC와 비교해 기술적 측면에서 크게 뒤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EUV 5나노 공정 개발에 성공해 내년 상반기부터 양산에 돌입하는 등 초기술 격차는 여전하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현재 파운드리 생산시설인 화성캠퍼스 S3 라인에서 EUV 기반 최첨단 공정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21년 3나노 공정까지 노리고 있다. 7나노에 이어 3나노에서도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공정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TSMC도 삼성전자의 이러한 전격전에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전략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2020년 상반기 5나노 공정 양산을 개시하고 2022년 3나노 공정 양산을 대비하는 등 발 빠른 대비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신뢰’에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을 제조하며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도 나서는 한편 5G 네트워크, 파운드리 사업까지 진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파운드리의 경우 협력사를 모으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경쟁하고 있는 회사들이 선뜻 삼성전자에 파운드리 의뢰를 할 경우 기술유출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애플과 퀄컴 등 ‘큰 손’들은 대부분 파운드리 전문업체인 TSMC와 손을 잡는 경향을 보인다. 파운드리는 일종의 ‘제조 하청업체’와 같은 성격을 가지는데, 만약 삼성전자에 파운드리를 맡길 경우 자사의 핵심 기술력이 유출되어 삼성전자의 다른 사업분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가 만연하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하는 시스템 반도체 로드맵에 뛰어드는 순간부터 예견된 일이다. 삼성전자가 의욕적으로 시장 점유율을 늘리며 TSMC를 추격하는 상황에서 막판 ‘스퍼트’ 동력이 떨어지자 새삼 조명되는 리스크일 뿐이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분명하다.

업계 일각에서는 퀄컴이 최근 신형 스냅드래곤을 공개하며 최상위 5G 모바일 AP인 스냅드래곤 865 양산을 TSMC에, 핵심시장을 겨냥한 원칩인 스냅드래곤 765 시리즈는 삼성전자에 위탁생산을 맡긴 대목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상위 라인업 제작을 TSMC에 맡기고 핵심시장 라인업을 삼성전자에 맡긴 것은, 결국 최상위 수준의 기술유출 리스크를 우려한 퀄컴의 전략이라는 평가다.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사장은 최근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스냅드래곤 서밋에서 삼성전자에게 스냅드래곤 865 제작을 맡기지 않은 이유를 묻자 “(스냅드래곤 765 시리즈를 맡긴) 삼성전자와는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는 모호한 답변을 한 바 있다.

▲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삼성전자 결단 내릴까

삼성전자는 2017년 기존 메모리 사업부와 시스템LSI 사업부를 쪼개 파운드리 사업부를 신설했다. 시스템LSI 사업부에 팹리스와 파운드리팀을 두고 있었고 엑시노스 시리즈를 만드는 SoC 개발실과 파운드리 사업팀이 공존했으나 파운드리 사업팀을 사업부로 격상해 별도 조직으로 분리한 셈이다.

당시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마케팅팀 이상현 상무는 "새로운 응용처의 등장으로 국내도 로직(Logic) 반도체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면서 "다양한 고객을 지원하고자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리한 만큼 국내 고객사들과도 적극 협력해 나가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부를 신설한 이유는 이를 핵심 동력으로 삼으려는 의지도 있으나, 장기적 관점으로는 사업부 분리를 통해 협력사들의 ‘기술 유출 리스크’를 배제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TSMC와의 격차가 출어들지 않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이제 새로운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

파운드리 사업부를 완전히 분사해 별도법인으로 만드는 로드맵이다. 이렇게 되면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협력사들의 우려를 덜어주는 한편 삼성전자도 선택과 집중을 단행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SK하이닉의 행보가 좋은 사례다.

SK하이닉스는 2017년 아예 파운드리 사업을 분사해 SK하이닉스시스템IC을 출범한 바 있다. 성과는 고무적이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매출 4889억원, 순이익 536억원을 기록하며 완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다. 설립 첫 해에는 다소 걱정스러운 실적을 기록했으나 이후 반등에 성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런 이유로 삼성전자도 SK하이닉스처럼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물론 삼성전자는 이러한 분사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으나, 업계 내외부에서 여전히 ‘검토해야 한다’는 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을 SK하이닉스처럼 분사한다고 해도, 리스크는 여전하다는 반론도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D램을 주력으로 하는 메모리 반도체 회사지만, 삼성전자는 스마트폰과 메모리 및 모바일 AP같은 시스템은 물론 5G 네트워크 사업을 총망라하고 있다. 협력사 입장에서는 SK하이닉스에 기술이 유출되는 것과 ‘모든 것’을 가진 삼성전자에 기술이 유출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런 이유로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부를 완전히 분리해도 협력사들의 기술유출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석이다.

모든 기간 플랫폼을 가진 삼성전자의 강점이,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오히려 외연 확장에 발목을 잡는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의 장점과 약점을 극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초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당분간 포트폴리오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고무적인 행보가 보여 눈길을 끈다.

▲ 중국 바이두와의 협력이 눈길을 끈다. 출처=삼성전자

중국 바이두와의 협력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인터넷 검색엔진 기업 바이두의 14나노 공정 기반 인공지능 칩 '쿤룬'을 내년 초에 양산할 계획이라고 18일 밝혔다. 쿤룬은 클라우드부터 엣지컴퓨팅까지 다양한 분야의 인공지능에 활용될 수 있는 칩으로, 바이두 자체 아키텍처 'XPU'와 삼성전자의 14나노 공정, 아이큐브 패키징 기술을 적용해 고성능을 구현한 제품이라는 설명이다. 이상현 삼성전자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 마케팅팀 상무는 "모바일 제품을 시작으로 이번에 HPC 분야까지 파운드리 영역을 확대하게 됐다"라며 "향후에도 에코시스템을 통한 설계 지원, 5/4나노 미세 공정과 차세대 패키징 기술 등 종합 파운드리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포트폴리오 다변화, 파운드리 영토 확장을 통해 추후 시장 지배력을 끌어올리는 한편 전격적인 판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전략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