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다사다난(多事多難)’의 끝이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준 2019년도 이제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 사건들로 어수선했던 만큼, 국내 유통업계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부침을 겪어야 했다. 특히 내수 소비심리에 의존적인 유통업체들은 대외적 악재들의 영향을 받아 침체된 경기로 인해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는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처럼 그 어느 때보다 세게 흔들렸던 올 한 해 유통업계는 한 번 돌아볼 가치가 충분하다. 2019년 우리나라 유통업계의 현재를 잘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 다섯 개를 뽑아 봤다.  
 

#유통산업발전법 

유통산업발전법은 1996년 처음으로 제정된 법안이다. 제1장 1조에 명시된 이 법안의 목적은 ‘국내 유통산업의 효율적인 진흥 그리고 균형 발전’이다. 표방하는 의도는 긍정적이지만 이 법안에 근거해 실제 집행된 변화들을 보면 산업의 진흥보다는 ‘균형 발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5월 1일부터 적용된 국내 대형마트의 의무 휴업일과 영업시간 제한이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유통 대기업이 주도하는 대형 할인점들의 공격적 출점은 확실히 중소상공인들의 상권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이에 정부는 중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상인들의 상권 보호를 위해 위와 같은 조치를 취했다. 

문제는 그 ‘상권보호’에 대한 의미부여가 지나쳐 최근 유통산업발전법은 대기업 유통업체들의 정상적 운영에 발목을 잡는 법안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들의 반대에 부딪쳐 현재 계류 중인 개정안에는 대형마트 뿐만 아니라 복합쇼핑몰의 의무휴업일 지정과 더불어 중소상공인 상권 보호구역 확장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내 개정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으나 최근 불거진 권력형 비리 사건 논란들로 인해 논의는 계속 미뤄졌다. 중소상공인들은 개정안의 조속한 시행을, 기업계는 개정안 내용의 재검토를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 출처=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최저가 경쟁 

2016년 초 쿠팡과 이마트의 대결구도로 대변되는 온라인 마켓과 오프라인 유통채널들의 가격할인 경쟁이 시작된 후 ‘가격’은 모든 유통채널에서 하향평준화가 이뤄졌다. 이후에는 신선식품, 빠른배송, PB상품 출시, 고객서비스 편의성 개선 등으로 업체들 간 경쟁이 계속되다가 20올해 초부터 국내 유통업계에서는 다시 최저가 경쟁이 시작됐다. 과거의 최저가 경쟁은 “우리는 경쟁사 A업체보다 B품목을 더 싸게 판다”였다면 지금의 경쟁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틀어 B품목은 우리가 가장 싸게 판다”는 양상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2019년 신년사에서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올해 오프라인 유통 채널 전략의 방향으로 ‘초가격 전략’을 앞세웠다. 이후 이마트가 국민가격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상시 최저가 할인가 판매를 표방하자 경쟁사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도 이와 유사한 내용의 기획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논란들이 수반됐다.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주 수입원인 유통 마진의 최소화를 어떤 주체에게 전가 했는가’혹은 ‘할인으로 인한 수익 감소를 어떻게 감당 하겠는가’등이었다. 전자에서는 공급업체들에 대한 유통업체의 ‘갑질’ 사례들이 논란이 됐고 후자는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수익감소로 논란이 됐다. 다만,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부진은 단순히 할인으로 인한 것이었다기보다는 내수 소비 자체가 위축됐거나 혹은 온라인 채널으로 이전됐거나 하는 등의 요인도 반영됐다.    
      

#새벽배송 

최저가 경쟁과는 다른 맥락으로 함께 이뤄진 각 유통업체의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새벽배송’이다. 본래 새벽배송은 2015년 식품 배송 스타트업 ‘마켓컬리’가 자신들의 차별화 전략으로 사실상 국내 최초로 제안한 서비스였다. 마켓컬리의 급격한 성장이 두드러지자 유통기업들도 새벽배송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의 오프라인 유통채널들에 이커머스 업계 최고의 이슈 메이커인 쿠팡 그리고 홈쇼핑 업체들까지 가세하면서 수많은 새벽배송 서비스들이 올해부터 시작됐다. 이에 따라 업계 추산으로 2015년 기준 약 100억원대였던 새벽배송 시장규모는 지난해에 약 4000억원 그리고 올해에는 약 8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기도 했다.   

▲ 출처= 신세계면세점

#면세점 

2017년 말부터 2018년 한 해 동안 계속된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국내 면세점 업계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방한 외국인의 국내 면세 관광에서 중국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소로 잡아’ 70%가 넘었기 때문이다. 2018년 말부터 중국과의 외교 관계가 서서히 누그러지면서 다시 중국인들은 우리나라의 면세점을 찾기 시작했고 올해 초부터 국내 면세점은 사드 보복 이전의 수준을 완벽하게 회복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내 면세점 산업은 내부적으로 삐걱대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것은 그와 비례하는 많은 송객수수료라는 비용이 들었고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상위 업체들뿐이었다. 이에 따라 대기업 사업자임에도 누적되는 손해를 감당하지 못해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던 서울시내 면세점의 사업권을 반납하는 일들이 생겼다. 두산과 한화는 올해 나란히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의 운영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포기했다. 여기에는 업계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일단 시내면세점 사업권의 숫자를 늘리고 본 정부의 잘못된 판단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지난 11월에 있었던 시내면세점 사업권 입찰에는  현대백화점 단 한 곳만이 신청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 출처= 픽사베이

#이커머스 

올 한해 유통업계를 정리하는 키워드를 한 개만 남기라고 한다면 당연히 ‘이커머스’가 남을 것이다.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들이 이커머스 사업만을 위한 법인을 세우고, 전자상거래를 지원할 수 있는 물류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기존 이커머스 전문 업체들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경쟁을 대비해 그간 약점으로 지적돼 왔던 수익성의 개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업체’만 빼고.) 

이커머스에 대한 대기업의 관심은 한편으로 큰 손해를 감수한 모험이었다. 오프라인 채널의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커머스 확장에 투입되는 자본은 큰 부담감이 됐다. 신세계(이마트)는 2분기에 창사 이래 최초로 분기 기준 영업 손실을 기록했고, 롯데쇼핑은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대비 56%가 줄어드는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수익보다는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유통 대기업의 이커머스 사업 확장은 부정적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전문 업체에 ‘입점하는’ 방법으로 경쟁업체들의 직접 이커머스 진출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 현대백화점의 행보는 눈에 띄었다.   
 
유통업계의 체계가 완전히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련의 변화는 그야말로 초미의 관심사가 됐고 이로 인해 옮겨지는 ‘소문’들은 뉴스가 돼 한동안 많은 이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 소셜커머스 티몬이 롯데에게 인수될 것이라는 뉴스는 재정상태가 좋지 않은 이커머스 업체들의 존속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많은 미디어들에게 ‘마지막 퍼즐 한 조각’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사실과 다르다”라는 양 사의 공식 입장이 나오면서 소문은 일단락됐지만 업계에서는 대기업이 주도하는 인수합병의 가능성을 아직까지도 열어두고 있다. 내년 3월에는 에는 롯데 이커머스 플랫폼의 공식 출범이 예정돼 있어 여기에도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