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수원지방법원에서 시중은행이 주도한 법정관리 첫 자율구조조정(ARS) 성공 사례가 나왔다.

24일 파산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제 1파산부(재판장 김동규)는 회생회사 A기업에 대해 채권단과 워크아웃 결의가 완료된 후 회생절차를 종결시켰다. 자율구조조정 제도인 이른바 ARS제도를 법원이 승인한 사례다.

자율구조조정 제도(ARS,Autonomous Restructuring Support)는 법원이 회생회사의 신청으로 법정관리를 유보하고 회생회사와 채권단이 구조조정 협약을 체결하는 제도다. 채권단과 합의하거나 기업구조조정 촉진법(기촉법)의 워크아웃을 적용하는 것이 자율구조조정의 내용이다. 

자율구조조정이 성사되면 회생회사는 회생신청을 취하하고 법원은 이 취하신청을 허가하는 절차를 거친다. 자율구조조정이 성사되지 않으면 회생회사는 법정관리를 선택한다. 자율구조조정은 기업이 법정관리 절차에서 생기는 기업가치의 훼손을 막고 신규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A기업은 이날 회생절차를 취하하고 법원은 이를 허가했다. 

기존에 ARS를 적용한 회생기업은 다수 있었으나 법정관리 개시결정 이전에 기촉법의 워크아웃 결의가 통과돼 자율구조조정이 성공한 기업은 현재까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수원법원에서 나온 ARS는 KEB하나은행이 주도해, 기촉법 워크아웃을 적용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업구조조정 첫 사례에 주채권자 하나은행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화성시에 소재한 A기업은 유동성 위기로 지난 8월에 수원지방법원에 회생을 신청했다.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은 A회사에 대한 ARS절차 진행을 법원에 건의했다. 회사의 기존 매출 안정성과 기술력을 인정한 조치였다.

법원은 하나은행의 건의로 채권단 협의를 거쳐 법정관리를 유보했다. 회사는 이후 회계법인의 실사를 거쳐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절차를 밟았다. 하나은행은 이때 법원 조사위원 명단에 있는 회계법인과 회사 실사에 관한 용역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조사위원 명단에서 무작위로 회계법인을 선정하는 다른 회생절차와 다른 점이다. 

하나은행은 실사결과를 토대로 채무조정 등 구조조정안을 채무자 회사와 협의했다. 은행은 다시 금융채권자협의회를 소집, 앞서 A기업과 협의한 구조조정안을 다른 채권단에 안건으로 회부했다.   

하나은행이 회부한 안건은 A기업의 담보채권자 100%, 일반 채권자의 99.5%의 동의를 받았다. 회생절차는 채권단 동의로 기촉법상 워크아웃 절차로 전환되는 데 성공했다. 

채권단은 향후 A기업에 대해 원금상환을 유예하는 등 기업개선계획 약정(MOU)에 따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법원은 워크아웃 협약에 이르는 동안 법적 지원에 나섰다. 재판부는 회생회사가 강제집행을 당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회생회사의 재산 유출도 막았다. 이후 재판부는 채권단과 회사의 워크아웃 협약 과정을 모니터링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밖 워크아웃 협약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채권단에 기울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재판부가 이 같은 불공정 시비를 우려해 계속 협약을 감시했던 것.  

채무자 회사와 채권단, 그리고 법원과의 긴밀한 소통은 이번 ARS의 성공요인으로 평가된다. 

첫 회생절차 워크아웃을 대리한 법무법인 대율 안창현 대표 변호사는 “회생신청 시작 무렵부터 워크아웃 절차 진행에 대해 법원, 채권단과 긴밀한 협의가 이뤄졌다”며 “채권단과 채무자 간의 의사 소통이 높은 동의율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롤모델 된 ARS 사례, 정부정책에 반영될까... "투자와 법정관리 이해하는 전문가 필요"

현행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은 폐지와 부활을 거듭해왔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관치와 채권단의 회수 중심 구조조정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논란 때문이었다. 현행 기촉법도 4년 후 폐지되는 한시법이다. 

법원이 주도하는 기업회생 기업 구조조정도 단점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법원의 관여로 공정성은 담보할 수 있지만 재판부의 통제를 받는 경영은 효율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또 거래가 단절되고 법정관리의 주홍글씨로 금융 지원이 끊기는 것도 문제였다. 

수원법원의 이번 사례는 기촉법의 단점과 회생절차의 단점을 해소했다는 의미가 있다. 구조조정 업계는 A기업의 사례가 기업가치 훼손 없는 출구전략으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앞으로 ARS공간은 신규자금(DIP금융)을 지원받거나 선제적 M&A의 공간으로 변모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정책의 초점도 이와 같은 ARS공간에 맞춰져 있다.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 지원 방안을 마련해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에 담을 계획으로 알려졌다. 한계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신규 자금대여(DIP금융)와 자율 구조조정(ARS)제도 활성화가 정책 방향의 핵심 주제다.

특히 P플랜 조기 정착에 방점을 뒀다는 후문이다. P플랜은 기업의 회생계획을 회생절차 초기에 수립해 구조조정을 하는 기법이다. 경영위기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더라도 초기에 법원 관리에서 벗어나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상장기업 구조조정에 기촉법이 가미된 ARS가 적합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법원 밖 기촉법 워크아웃의 저조한 이용때문이다. 

서울대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센터장 박상인 교수)’가 밝힌 상장기업 워크아웃 구조조정 결과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워크아웃 중단율은 19%에 이른다. 채권은행과 기업 간에 맺는 자율협약의 중단율 15%와 법원의 법정관리 중단율 9%에 비교할 때 가장 높은 수치다. 구조조정 평균 기간도 982일로 자율협약 710일, 법정관리 578일보다 길었다. 또 졸업률을 따져보면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 주도의 워크아웃 졸업률은 17%로, 일반은행 주도 졸업률 82%와 중소기업은행 주도 졸업률 100%에 비해 크게 낮았다.

이 같은 ARS 활성화를 위해서는 전문가가 역할을 할 수 있는 플랫폼 구축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구조조정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캠코의 자본시장 매칭 플랫폼을 통해 자본시장 PEF를 끌어들여 회생기업에 DIP금융을 공급하는 등 관치 구조조정을 탈피하려는 상황”이라면서도 “투자시장과 법정관리를 동시에 이해하는 전문가가 부족해 원활한 매칭이 어려운 것도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기업 구조조정 시장은 법정관리를 이해하는 전문가는 PEF투자 시장에 어둡고, PEF투자 전문가는 법정관리를 잘 모른다”며 “정부가 마중물 역할과 동시에 전문가의 활용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