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최근 한진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남매의 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국내 대기업의 골육상쟁(骨肉相爭) 역사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분란’과는 거리가 먼 SK와 LG의 사례도 새삼 회자되고 있다.

남매의 난, 형제의 난, 사촌의 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23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동생인 조원태 회장의 경영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아버지 고 조양호 회장이 타계하며 삼남매의 공동경영을 유언으로 남겼으나, 조 회장이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골자다.

재계에서는 남매의 난이 벌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한진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진칼의 경우 현재 조원태 회장이 6.64%, 조현아 전 부사장이 6.43%, 조현민 전무가 6.42%, 이명희 고문이 5.2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KCGI가 지분 15.98%를, 델타항공이 10%를, 반도건설이 7%를 가지고 있다.

델타항공은 조 회장, 반도건설은 이명희 고문의 우군으로 평가된다. 조 전 부사장의 배후에 이명희 고문이 있다는 것이 정설인 가운데 앞으로 조 회장 및 델타항공-이 고문 및 조 전 부사장, 반도건설-KCGI 등 삼파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 조현민 전무가 캐스팅 보트를 쥘 전망이다. 그룹 경영권을 두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실 한진그룹을 둘러싼 '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고 조중훈 회장이 타계한 후 장남인 고 조양호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했으나, 이후 차남인 조남호 회장과 4남 조정호 회장은 조양호 회장이 선친의 유언장을 조작했다며 소송을 걸었기 때문이다. 양측은 고 조양호 회장이 세상을 뜰 때까지도 화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룹 경영권을 두고 벌어지는 골육상쟁이 비단 한진그룹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대기업에서 보이는 공통된 현상으로 봐도 무방하다.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의 경우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사례가 회자된다. 그는 고 이병철 창업주의 장자로서 한 때 삼성의 차세대 주자로 꼽혔으나 1969년 소위 청와대 투서사건에 휘말려 사실상 삼성을 떠나게 된다. 이후 동생인 이건희 삼성 회장과 재산상속 문제를 두고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현대그룹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정주영 명예회장의 차남인 정몽구 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5남인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회장의 다툼으로 시작된 형제의 난은 사실상 현대의 미래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두산그룹도 치열한 내전을 경험한 바 있으며 금호아시아나그룹도 비슷한 분쟁을 겪은 바 있다. 최근에는 롯데그룹에서 형제인 신동빈 회장, 신동주 에스디제이 회장의 치열한 경영권 분쟁도 있었다.

▲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고 최종건 창업주. 출처=SK

SK와 LG는 ‘조용’

국내 대기업 대부분이 골육상쟁의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유독 SK와 LG에는 이러한 분쟁소식이 들리지 않아 눈길을 끈다. 다양한 원인이 거론되고 있으나, 핵심비결은 ‘유능하고 극적인 중재자’의 존재다.

SK의 경우 한 때 ‘사촌의 난이 벌어질 뻔’ 했던 것이 사실이다.

SK를 창업한 고 최종건 회장은 1973년 11월 48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며 동생인 고 최종현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긴다. 이후 고 최종현 회장은 SK에너지 및 SK텔레콤을 일구며 그룹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무난했으나 고 최종현 회장이 1998년 별세할 당시가 관건이었다. 고 최종현 회장이 형이자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아들이 아닌, 자기의 아들인 최태원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창업주의 아들이 반발해 형제의 난이 아닌, 사촌의 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촌의 난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샀던 고 최종건 회장의 아들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과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 최태원 회장에게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위 ‘난’을 일으켜 경영권을 노리는 방식으로 그룹을 흔드는 것보다, 사촌동생 최태원 회장의 비전에 배팅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특히 최신원 회장의 경우 해병대 출신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의리와 명분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러한 철학이 계승 과정에서 고스란히 묻어났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는 현재 승승장구하는 SK의 고무적인 행보로 이어지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11월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166만주)를 비롯해 사촌형인 고(故) 최윤원 SK케미칼 회장 가족(49만6808주), 사촌형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과 그 가족(83만주) 등 친족들에게 SK㈜ 주식 329만주를 증여하며 남다른 우애를 보여주기도 했다.

LG도 마찬가지다. LG도 몇 차례 형제의 난, 혹은 사촌의 난이 벌어질 뻔 했으나 유능하고 극적인 중재자의 역할로 위기를 모면한 바 있다.

LG그룹의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은 1969년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그해 12월 향년 62세로 숨을 거둔다. 이 때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인 구철회 락희화학 사장이 욕심을 냈다면 현재의 LG도 많이 달랐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 고 구자경 명예회장이 고 구인회 회장의 흉상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LG

구 사장은 대신 형인 구인회 창업주 상태가 날로 악화되던 시기 동생들과 조카들을 불러 자신은 경영승계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며 창업주의 첫 째 아들인 구자경 당시 부사장이 그룹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LG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났으며 그의 자손들은 1999년 LG화재를 그룹에서 독립시킨 LIG그룹을 이끌고 있다.

고 구자경 명예회장에서 고 구본무 회장으로 이어지는 승계도 잡음이 없었으며, 3대에서 4대로의 승계도 잡음이 없다. 실제로 고 구본무 회장은 불의의 사고로 첫 째 아들을 잃자 장자승계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현 구광모 회장을 양자로 입적하고, 현재 구광모 회장은 LG그룹의 4세대 경영을 맡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 구본무 회장의 동생이던 구본준 현 고문은 역시 경영에서 손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