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대한항공을 주요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한진그룹에서 소위 ‘남매의 난’이 터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법률대리인을 통해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아버지인 고 조양호 회장의 뜻에 반하는 경영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비판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은 한 때 재계 8위까지 올라갔으나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이 타계한 후 아들인 고 조양호 회장, 조남호 전 한진중공업 회장,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사이에서 형제의 난이 발발해 사세가 크게 기운 바 있다.

현재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으로 촉발될 조짐이 보이는 남매의 난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남매의 난 시작되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23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선친인 고 조양호 회장의 뜻과 다르게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며 사실상 동생의 경영에 제동을 걸었다. 특히 조원태 회장이 가족과의 합의없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와 일각에서는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법무법인 원을 통해 “선대 회장님은 생전에 가족들이 협력하여 공동으로 한진그룹을 운영해 나가라고 말씀하시는 등 가족들에게 화합을 통한 공동 경영의 유지를 전하셨습니다”라면서 “선대 회장님 작고 이후 선대 회장님의 유훈에 따라 가족 간에 화합하여 한진그룹을 경영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생인 조원태 주식회사 한진칼 대표이사는 물론 다른 가족들과도 공동 경영 방안에 대해 성실히 협의하여 왔습니다”고 말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원태 대표이사는 공동 경영의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하여 왔고, 지금도 가족간의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라면서 “한진그룹은 선대 회장님의 유훈과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상속인들간의 실질적인 합의나 충분한 논의 없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이 지정되었고, 조 전 부사장의 복귀 등에 대하여 조 전 부사장과의 사이에 어떠한 합의도 없었음에도 대외적으로는 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공표되었습니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조 전 부사장은 한진그룹의 주주 및 선대 회장님의 상속인으로서 선대 회장님의 유훈에 따라 한진그룹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향후 다양한 주주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를 진행해 나가고자 합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경영복귀에 나서려는 것을 조 회장이 만류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잡음이 벌어지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여기서 조 전 부사장은 공동경영을 유훈으로 남긴 선친의 뜻을 조원태 회장이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부득이 하게 실력행사를 보여줄 수 밖에 없다는 선전포고에 나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사실 조 전 부사장의 복귀를 위한 무대는 이미 만들어졌다는 말이 나온다.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소위 땅콩 회항사건으로 그룹 내 모든 직책을 내려놨으나 지난해 3월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복귀하며 경영 일선 복귀에 시동을 건 바 있다. 동생인 조현민 한진칼 전무의 소위 ‘물컵 갑질’ 논란이 벌어지며 조 전 부사장도 복귀 보름만에 다시 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으나, 조현진 전무가 최근 다시 경영에 복귀하며 조 전 부사장 복귀도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말이 나온 바 있다.

명품 밀수 혐의(관세법 위반 등)와 외국인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혐의(출입국관리법 위반)도 집행유예를 받아 운신의 폭도 생겼고, 어머니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지난 6월부터 그룹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정석기업의 고문으로 복귀하는 상황에서 조 전 부사장이 복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조원태 회장이 누나인 조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를 달갑지 않게 보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대목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이 지정될 당시부터 시작된 잡음이 이제는 수면 위로 부상하며 소위 경영권 분쟁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논란이 벌어지기 전 삼남매 중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경영활동에 나섰던 인물이기 때문에, 재계에서는 한진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남매의 난이 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영권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지분률 추이도 미묘하다.

한진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진칼의 경우 조원태 회장이 6.64%, 조현아 전 부사장이 6.43%, 조현민 전무가 6.42%, 이명희 고문이 5.27%를 보유하고 있다. 삼남매의 지분율 차이가 크지않기 때문에 본격적인 ‘지분 전쟁’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다른 주주들과의 연대와 협의를 통해 조 회장 체제에 반기를 들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한진칼 지분 15.98%를 가진 주요 주주인 KCGI, 혹은 10%를 가진 델타항공과 함께 최근 지분을 늘린 반도건설 계열사도 아우르는 연합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한진그룹의 호텔부문을 분사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는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조 전 부사장과 연합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조 전 부사장이 한진그룹의 호텔사업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측의 생각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진그룹 정상화를 주장하는 KCGI 입장에서 선뜻 조 전 부사장의 손을 잡는 것도 어색하다.

한진칼의 지분 10%를 가진 델타항공은 경영권을 쥔 조원태 회장의 백기사라는 점에 이견의 여지가 없다.

7%의 지분율을 가진 반도건설의 행보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반도건설은 어머니 이명희 고문의 우군이며, 재계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어머니인 이명희 고문의 재가를 받아 입장문을 발표했다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면 조 전 부사장과 반도건설의 접점도 생기는 셈이다.

재계에서는 만약 남매의 난이 본격적으로 벌어질 경우, 차녀인 조현민 전무의 선택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조원태 회장과 델타항공, 여기에 조현아 전 부사장을 비롯해 이명희 고문과 반도건설, 또 외부 세력인 KCGI가 경영권을 두고 맞서는 상황에서 차녀인 조현민 전무가 일종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형제의 난 아픔 잊었나

고 조중훈 회장은 1945년 인천에서 한진상사를 일으키며 한진그룹의 역사를 열었다. 이어 1990년대에 이르러 장남 조양호는 항공을, 차남 조남호는 중공업을, 삼남 조수호에게 해운업을, 막내 조정호에게 금융업을 맡기며 본격적인 2세 경영이 시작됐다.

2002년 고 조중훈 회장이 타계한 후 장남인 고 조양호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했으나, 이후 차남인 조남호 회장과 4남 조정호 회장은 조양호 회장이 선친의 유언장을 조작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른바 형제의 난이다.

조양호 회장과 조남호, 조정호 회장은 2005년부터 법정공방을 벌이며 소모전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한진그룹의 성장 동력은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한진해운은 파산했고 조남호 회장은 한진그룹과 완전히 결별하는 등 '말로'가 좋지 않았다. 이들은 고 조양호 회장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화해하지 못했다.

재계에서 한진그룹을 둘러싼 남매의 난에 우려하는 이유다. 형제의 난을 겪은 고 조양호 회장이 임종 직전에도 “3명의 형제가 함께 잘 해 나가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한진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본격적인 내전은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는 한진그룹 전체의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고, 국내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