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묘하게 선배, 친구들로부터 같은 내용의 문자를 여러 건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이제 100세 시대는 기정사실인 것 같은데 남은 나이를 어떻게 준비하며 살지 아득하다며 답답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건이 동시에 온 게 우연일까요?

아님 벌써 이 부분도 대세가 된 걸까요?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언론 기고에서 100세 시대는 크게 3등분해서 살아보라고 제안합니다.

학생 30년, 직장 30년, 사회위해 30년으로 말이죠.

그분의 얘기가 맞아 보이면서도 멀리 느껴짐은 아직 절실함이 부족해서일지, 아님 때가 덜 되어서 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전 들은 말씀입니다.

지금은 80이 가까운 사회 원로 되는 분이 이십여 년 전 겪은 얘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성경 신구약의 주석을 처음 펴낸 목회자가 계셨는데, 그분의 팔순을 축하하는 자리에 참석했었다지요.

거기서 그 목회자가 ‘이 죄인이 팔순을 맞아 ..’라는 식으로 자격 없는, 죄인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보고, 참 겸손한 분이라고 생각했었답니다.

그런데 이제 원로 당신이 팔십을 향해 가며 그때를 생각해보니 당시 자신이 죄인임을 얘기한 목사님은 당시 ‘겸손했던 것이 아니라 진실했던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더군요.

평범한 우리로서 겸손함도 힘들진 데, 진실로 나아가고, 성장하는 어려움이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문득 생각난 어느 시인의 ‘겨울에 한 해가 바뀌는 이유’라는 시가 우리에게 위로와 함께 방향도 일러주는 것 같습니다.

‘...

사람들이 좀 추워하면서 반성하면서 긴장하면서 눈처럼 부드럽게 시련을 견디고 살얼음판도 좀 걸어보라고 무엇보다 따듯하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

특히 ‘따듯하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구절이 차가워지는 날씨에 더 가슴을 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