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젊은모색(국립현대미술관) 전시전경/Full Scene of Exhibition - The Grouping Youth ’90-New directions of Korea painting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Gwacheon)

하나의 작품은 작가의 심상을 반영한다. 작가가 생각하고 의도하는 모습이 작품을 통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드러나는 모습이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간에 작가의 삶과 의식은 자연스럽게 표출된다. 어쩌면 ‘작품은 곧 작가’라는 등식처럼 말이다.

작가 허진은 바로 이러한 등식에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그것은 그의 삶이 작품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 ‘예술적 삶’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직 그의 삶과 예술이 완결 아닌 과정의 한가운데에 놓인 상태라는 점에서 앞으로 어떠한 변모를 보일지는 속단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의 예술이 삶의 형태와는 무관하지 않다.

사실 허진의 작품세계에 있어서 주제는 자신의 일상적인 체험에 초점을 맞춘 것은 문명의 현대화에 따른 인간정신의 황폐화를 그냥 방관만 할 수 없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문제의 해결점을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표피적인 ‘아름다움’만을 고집하며 자신의 삶과는 맞아 떨어지지 않는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들과는 구분된다. 굳이 삶과 예술이 일치해야 한다는 당연성은 없지만, 예술이 삶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허진의 작품세계는 삶 또는 일상적 체험의 진솔한 표출로서 그 조형적 미술을 획득하고 있다.

▲ 상생도, 1990, 여러 종이에 수묵채색, 200×200cm/Sangsaengdo, 1990, ink and pigment on several kinds of paper, 200×200cm

“역사적 변천에 따라 세계에 대한 합리적 관조를 중시하고, 인간이성의 해방을 추구해온 합리적 성향과 극심한 문명의 현대화는 인간부재의 문화를 산출하기까지 되었으며, 작금에 이르러서는 고유한 전통적 가치관과 문화양식이 붕괴되고 인간정신의 황폐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현대문화의 제문제에 대한 해결점이 될 수 있는 방법의 일환으로 애매한 추상성보다는 명확한 성격을 지닌 형상성에 주목하고 이를 작품에 도입하여 서술적으로 풀어보는 방향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작가의 이와 같은 언급은 작품의도를 명로하게 드러내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것은 현대문명에 대한 문제제기를 전제로 한 형상성의 표출로 축약될 수 있다. 따라서 그의(ARTIST HUR JIN,許塡,허진 작가,한국화가 허진,HUR JIN,허진 교수,허진 화백) 주제인 일상적 체험들은 단순한 일개의 회고적 기술이 아닌 확장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 의미는 어떻게 보면 작품의 형식보다는 내용이 강조된 것처럼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작품이 일상적 체험을 주제로 하고, 그 주제를 형상성으로 풀어가면서 분명한 작품의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김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