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 750만 명의 홍콩은 집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 중 하나다. 이곳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에도 집을 장만하기 위해 악전고투할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머물 곳이 없다.    출처= Finbarr Fallon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끝없이 늘어선 묘비가 홍콩의 산허리를 휘둘러 늘어서 있다. 한자로 글귀가 새겨진 회색 묘비 행렬 사이로 초록빛은 겨우 간간히 보일 뿐이다.

이 산비탈은 수천 명의 홍콩인들이 땅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집이다.

CNN이 최근 홍콩의 ‘죽은 공간’(Dead Space) 사진 시리즈를 소개했다. 이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 핀바르 팔론은 홍콩의 모든 묘지를 방문했다. 드론까지 동원해 도심 속 묘지를 촬영하면서 팰런은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관계를 한 가지 구성으로 그려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 사는 팰런은 홍콩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홍콩의 가장 번잡한 상업지역 중 하나인 완차이(Wan Chai, 灣仔) 지구의 공동묘지를 목격하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물리적 공간의 한계가 우리가 살고 죽는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가 알기 위해 홍콩의 ‘변화하는 죽음의 문화’를 카메라에 담았다.

매장 공간의 부족

팰런이 태어난 영국에서는 묘지가 대개 평평하고 푸르고 널찍하며 정원처럼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다. 그러나 홍콩에서는, 죽은 사람들을 위한 환경조차, 비좁은 공간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인구 750만 명의 홍콩은 집값과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 중 하나이다. 이곳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에도 집을 장만하기 위해 악전고투할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머물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 육상 묘지의 포화로 가상 묘지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출처= iVeneration

도시의 사설 영구 묘지의 분양 가격은 현재 28만 홍콩달러(4300만원)에 달한다. 그러나, 홍콩 인구의 노화와 죽음을 연구하는 홍콩대학교의 에이미 차우 교수는 실제로는 거의 4배에 가까운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말한다. 홍콩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 묘지 자리는 이보다는 저렴하지만, 사실상 모든 묘지가 이미 모두 점유되어 있어, 사람들은 6년 후 강제 퇴거 대상이 되는 재사용 묘지를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대다수의 홍콩인들은 이제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으면 매장 대신 화장을 선택한다. 그러나 화장도 만만치 않다. 이미 수천 명의 가족들이 납골당에 유골 항아리 한 두개를 보관할 공간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신청자들은 7년까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고 자리가 나기를 기다린다고 차우 교수는 설명했다.

팰런은 홍콩과 같은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에서도 매장 공간이 바닥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오래된 묘지 위에 고속도로와 새 주택을 건설하면서 수천 개의 무덤들이 철거되었다.

팰런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죽은 사람들에게 예를 표할 수 있는 일본의 새로운 ‘가상 묘지’ (virtual cemeteries)를 지적하며 "도시 공간이 점점 제약되면서 사망자를 위한 물리적 공간은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과 관습 변해야

가상 묘지의 등장과 화장 선호도 증가는 홍콩, 싱가포르, 도쿄 같은 아시아 대도시에서 죽음과 관련한 문화가 변화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그러나 실제 무덤 공간이 없다는 것은, 중국인들이 조상들의 무덤을 방문해 조상을 기리는 연례 명절인 청명절(淸明節, Qingming Festival 또는 Tomb-Sweeping Day라고도 함) 같은 전통적인 믿음과 관습에는 위협이 될 수 있다.

▲ 홍콩의 해상 묘지(floating cemetery)도 죽음 문화 변화 대안 중 하나다.    출처= BREADstudio

"많은 아시아 문화들이 이런 의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 지향적으로 볼 때, 도시들은 죽은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에 극적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효를 중시하는 동아시아 문화에서 조상을 위해 영구적인 장소를 찾는 것은 존경과 효도를 보여주는 방법이었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묘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중국 문화 중 또 다른 오랜 믿음은 긍정적인 풍수(風水)를 위해 죽은 사람을 바다에 면한 산에 눕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홍콩에 이런 곳은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이미 많은 홍콩 사람들은 전통을 배제하고 사망자의 재를 집에서 보관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차우 교수는 그런 방식을 도입한 가족들은 명절 때마다 묘지까지 험한 여행을 하는 대신 원할 때마다 조의를 표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편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또한 공간 부족이 죽음과 관련한 문화를 바꾸는 한 가지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에는 전망이 좋은 큰 집에서 살고 싶어했지요.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작은 집에 만족하며 살지요. 살아 있을 때의 집에 대한 생각도 이렇게 바뀔진대, 죽음의 장소에 대한 기대를 포기할 수 없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