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n 69-H, 162×130㎝, 1969

또한 여기에서 모노크로미즘의 방법적 도입이 명확해 진다. 그에게 있어 단색(單色)이란 하나의 방법론(方法論)에 이르기 위한 소재(素材)로서 존재할 뿐이다. 평면이라는 실체에 접근함에 있어 필요한 최소한(最小限)의 필요조건(必要條件)으로서 선택된 것이 바로 단색이 지닌 의미성(意味性)의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작품을 대하고 얼핏 단색으로만 파악하려 드는데 어쩌면 색깔의 무의미성(無意味性)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단색의 선택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이처럼 그의 작업에 있어서 색깔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품의 표면(表面)에 나타난 사실 정도이고 그 이외에 별다른 뜻이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수년 동안 발표되고 있는 ‘평면조건(平面條件)’이란 명제를 가진 일련의 단색작품들을 보면 얼핏 하나의 절망 혹은 적막과 만났다는 당혹감에 사로잡힌다. 이렇듯 사방(四方)이 가로막힌 듯한 사고(思考)의 부자유(不自由)를 강요(强要)당한다는 미묘한 절망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기존 미의식(美意識)에 철저히 길들여진 사람일수록 그의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의 당혹감은 더욱 크게 마련이다. 화면(畫面)에 나타난 이미지(像)는 고사하고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하는가 하는 이해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회화를 위한 캔버스가 마련되었고 거기엔 또 물감이 얹혀져 있음으로써 일반적인 회화의 형식을 고루 갖춘 듯 싶으나 이러한 회화적인 요소(要素)들이 사실상 최명영(CHOI MYOUNG YOUNG, 최명영 화백, 최명영 작가)의 작품을 더욱 비회화적이게 만들고 있다.

△신항섭, 미술평론가(現代美術의 位相, 화성문화사刊,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