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세계 2위 경제 대국 중국의 ‘차이나머니’가 전 세계에 침투하고 있다. 차이나머니는 자본이 부족한 국가 또는 기업에 경제 활력을 높인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기술 유출과 중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 확대 등 부작용도 낳아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발생하는 ‘양날의 검’이 되었다.

중국 주요 기업은 성장의 방법으로 해외 투자를 선택했고, 그 효과를 보며 외연을 확대했다. 과거부터 주요 북미·유럽 등 강대국의 제조업 투자를 공격적으로 진행했고 최근엔 정보기술 서비스 투자도 활발해지고 있다.

시장이 작지만 동양의 문화를 공유하고 콘텐츠가 강한 한국의 경우 자금 투자뿐 아니라 각종 파트너십과 판권 계약 등을 통해 ‘K콘텐츠’의 13억 중국 시장 진출을 이끌기도 했다. 한국 콘텐츠의 수출 1위인 게임 산업에선 넥슨의 ‘던전앤파이터’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 위메이드의 ‘미르의전설2’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드라마의 중국 수출 또한 역사가 깊다. 국내 콘텐츠 업계가 중국 덕을 본 것도 업계에서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전세가 완전히 역전됐다. 한국 콘텐츠가 절실히 필요했던 중국은 기술력을 갖춰 스스로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해 내고 있다. K콘텐츠를 기반으로 확보한 자금으로는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에 대규모 직접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게임의 경우 콘텐츠 자체가 한국 게임 시장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세계로 뻗는 ‘차이나머니’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세계로 뻗는 차이나 머니, 도전과 기회’에 따르면 전세계 해외투자 금액에서 중국의 해외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0.5%(전체 26위)에서 2018년 14.1%(2위)로 부쩍 올라섰다.

중국은 2018년 말 기준 188개국에 4만2872개 해외투자기업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해외투자가 외자유치를 초과하는 순자본유출국이다. 투자 기업은 아시아 지역에 가장 많은 2만4437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가별로 홍콩, 미국, 러시아, 호주, 독일, 싱가포르, 일본, 버진 제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캐나다, 한국 순으로 많다.

중국의 공격적인 투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가안보 유출과 기술추격 위협 등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때문에 미국은 외국인투자 심의위원회를 강화해 중국의 해외투자를 견제하고 프랑스, 영국 등 유럽도 반도체와 AI 등에서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고 있을 정도다. 

 
 

다만 지난 2017년부터 중국의 투자는 주춤하고 있다. 해외투자가 과열됨에 따라 중국 정부가 자본 유출 관리를 강화한 데다가 세계적으로 경기가 위축돼 투자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해외투자 증감률은 2016년 34.7%에서 2017년 19.3%로 줄었고 지난해엔 마이너스(-) 9.6%를 기록했다.

K콘텐츠로 뻗는 차이나머니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중국은 한국의 서비스 산업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한국으로의 투자는 2018년 말 기준 67억1000만달러로, 중국의 총 투자대비 0.3%(20위)다. 애초에 한국 시장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아 업계에서 느끼는 체감보다는 투자 비중은 낮은 수준이다.

산업별로는 서비스업(84.3%)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 외 제조업(14.7%), 농·축·수산·광업(0.7%), 전기·가스·수도(0.4%) 순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서비스업 투자는 2010년 중반까지는 도·소매 비중이 컸지만 최근 금융·IT기업 등에서의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통계에 따르면 콘텐츠 산업이 포함된 ‘여가·스포츠·오락 부문’에서 중국의 한국 투자 추이는 일정한 추이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16년에 20억달러 규모의 투자가 진행된 반면, 그 이듬해엔 1억6000만달러로 투자액이 뚝 떨어졌다. 이어 지난해엔 27억달러 규모로 다시 급증했다. 올해 1분기부터 3분기 누계로는 4억6000만달러 규모의 투자가 진행됐다. 이는 개별 기업으로의 대규모 투자가 전체 액수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차이나머니의 K콘텐츠 산업 침투는 게임 산업과 대형 연예인 기획사를 중심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두드러진다. 우선, 국내 여러 대형 기획사가 차이나머니의 영향권에 있다. 빅뱅, 블랙핑크, 위너, 아이콘 등이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중국 기업인 상하이 펑잉 경영자문파트너십과 텐센트 모빌리티의 지분이 12.52%를 차지하고 있다. 양현석, 양민석 YG엔터테인먼트 전 대표의 지분율은 각각 17.32%, 3.56%다.

AOA, FT아일랜드, CN블루, 등 가수와 유재석, 노홍철, 정형돈 등 방송인이 소속된 FNC엔터테인먼트는 중국의 쑤닝유니버셜미디어가 지분 22%를 보유하고 있다. 한성호 회장이 보유한 22.02%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상장 당시 64%에 달하던 한성호 회장 일가의 지분은 현재 30%대로 줄었다. 한승훈 대표가 8.78%, 한 대표의 아내인 김수일 오엔이컴퍼니 대표가 3.36%를 보유하고 있다. 

보아, 엑소, 소녀시대 등 가수와 강호동, 신동엽, 이수근, 김병만 등 방송인이 속해있는 SM엔터테인먼트에도 지난 2016년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자금이 355억원가량 유입된 바 있다. 지분율은 4% 수준으로 알려졌으며 최대 주주인 이수만 회장의 지분은 18.74%다. 

 

국내 게임 산업에서는 텐센트발 차이나머니의 존재감이 돋보인다. 국내 2위 업체 넷마블은 텐센트의 자회사 한리버 인베스트먼트가 지분 17.56%를 가지고 있다. 최대 주주인 방준혁 의장(24.18%)과 2대 주주인 CJ ENM(21.83%)에 이은 3대 주주다.

‘배틀그라운드’로 우뚝 선 크래프톤도 일찍이 차이나머니가 투입된 바 있다. 텐센트의 자회사인 이미지 프레임 인베스트먼트가 지분 13.33%를 가지고 있다. 최대 주주인 장병규 의장은 지분 17.63%를 보유 중이다. 텐센트는 크래프톤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히트작 배틀그라운드의 모바일 버전 게임인 ‘펍지 모바일’의 공동 개발과 글로벌 서비스 권을 따내기도 했다.

국대 대표 플랫폼 사업자 카카오 또한 텐센트의 자회사 멕시모가 지분율 6.7%를 가지며 주요 주주로 자리잡고 있다. 김범수 의장(14.9%)와 케이큐브홀딩스(11.9%), 국민연금공단(8.1%)에 이어 4번째로 많은 보유량이다.

“차이나머니 유입… 장점 있지만 우려도 커”

 

전문가들은 국내 콘텐츠 시장에 유입되는 차이나머니에 대해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는 한편 우려를 표하는 분위기다.

심윤섭 한국무역협회 전략시장연구실 연구원은 “중국에 우리나라가 아직 큰 시장은 아니다. 그들이 필요로하는 자원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면서도 “기술적인 측면에서 우량 기업에 투자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게임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우리나라 콘텐츠 육성에는 자본이 필요하고 국내 투자 여건이 비교적 좋지는 않기 때문에 해외 자본이 들어오는 건 긍정적”이라면서도 “중국이 시장을 점령할 수도 있는 점은 우려된다”고 밝혔다. 위정현 교수는 “중국의 한국 투자를 보면 병아리를 키워서 잡아먹는 형태”라면서 “중국 전체 투자 규모와 비교하면 국내 투자는 극히 작은 액수지만, 종종 잭팟을 터트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투자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 예로 SBS 방영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중국에 판권을 약 6억원에 넘겼지만, 중국에서 약 1500억원의 수익을 발생시킨 바 있다. 

게임 산업 측면에선 향후 판호(중국의 영업허가권) 발급에 따른 중국 진출 가능성과 산업 종속 우려가 공존한다. 김사익 YK게임즈 대표는 “중국의 투자를 받은 기업은 한한령이 풀리고 판호 발급이 재개됐을 때 중국 진출에 좀더 용이할 것”이라면서도 “차이나머니 비중이 커지면 한국이 중국의 게임 공급을 위한 외주 국가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과거에 번번이 일어나던 중국의 인력빼가기도 이젠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이젠 개발력에서 한국을 앞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