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모기지 대출액이 국민총생산의 3분의 2에 육박함에 따라 네덜란드 중앙은행이 주택 시장이 국가의 금융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출처= Finance magnates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수년 간 저조한 성장을 유지해 왔던 유럽 경제가 이제는 침체가 걱정될 만큼 부진에 빠지고 있다. 유럽 중앙은행들은 경기 회복을 촉진하기 위해 통화 완화와 최저 수준의 금리를 이어가는 가운데, 은행의 값싼 돈이 부동산 붐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프랑스 파리나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20년 주택 담보 대출 금리가 1% 아래로 떨어지면서 값싼 돈을 대출받아 아파트와 집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수익에 목마른 기관 투자자들마저 유럽 전역의 도시에서 다량의 주거용 부동산을 매입에 나서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코메르츠은행(Commerzbank)의 조르그 크래머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부채가 10년 전 금융 위기 수준 또는 그보다 더 높아 부동산 붐의 거품이 다시 한번 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마이너스 금리가 굳어지면서 위험이 현실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경제 전반에 걸쳐 중요한 것은 새 거품의 출현을 막는 것입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이전에는 시도해 본 적도 없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5년이 지나면서 주택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프랑크푸르트, 암스테르담, 스톡홀름, 마드리드 등 유럽 대도시 중심가의 주택 가격은 최소한 30% 이상 올랐고,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슬로바키아, 아일랜드는 평균 40% 이상이 뛰었다.

이로 인해 고소득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택을 소유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며 임대료마저 오르면서 서민층은 도심에서 떨어진 곳으로 주거지를 옮겨야 했다. 이에 따라 유럽 대도시 시장들은 임대료 억제, 재산세 인상, 주택 보조금 프로그램 같은 정책으로 시장에 개입하면서 곳곳에서 정치적 반발도 일어나고 있다.

저금리가 유로존의 경기 회복을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경제학자들은 현재 정책이 불평등을 반전시키려는 은행의 노력을 퇴색시키고 있다며 득보다는 해가 더 많다고 지적한다. 저금리 정책은 취약한 기업 투자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고, 주택 시장을 제외한 다른 어느 곳에서도 임금 인상의 기폭제가 될 인플레이션을 되살리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UBS의 스위스 부동산팀장이자 ‘세계 주요 도시들의 부동산 가격 급등 연례 보고서’의 주요 저자인 마티아스 홀츠히는 "이러한 역학 관계가 단기간에 완전히 바뀌었다"며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저금리가 부동산 가격을 거품 위험 지역으로 몰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경계 태세에 들어가 있다. ECB가 유럽의 금융 시스템을 올바로 규제하도록 돕는 자문기구인 유럽 시스템 리스크 위원회(European Systemic Risk Board)는 지난 9월,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웨덴 등 11개국에 주택 가격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 및 세금 정책을 시행하고 공급 및 가용성을 높일 것을 요구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Bundesbank)는 최근 독일 대도시 부동산 가격이 적어도 15% 내지30% 부풀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즉 한참 거품이 끼었다는 것이다. UBS는 뮌헨, 프랑크푸르트, 암스테르담, 파리를 위험에 처한 도시로 꼽았다. 글로벌 회계법인 딜로이트앤투시(Deloitte & Touche)는 ECB가 금리를 계속 0으로 유지한다면 평균 주택 가격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동안 주로 상업용 부동산에만 집중하던 자금이 풍부한 국내외 투자자들이 유럽 전역에서 주거용 주택 매입으로 선회함에 따라 역동성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주로 국채에 투자하던 연금과 보험 기금은 지불 금리가 0보다 낮은 독일 같은 나라에서 수익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자 채권보다 수익성이 좋은 부동산 펀드에 투자하게 되었다.

유럽공공주택연합(Housing Europe)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유럽인들은 월 소득의 4분의 1을 주택담보대출 상환이나 임대료에 쓰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는 20년 전에 비해 17% 높아진 것이다. 유럽인의 10분의 1은 월 수입의 40%이상을 주택 비용에 쓴다. 그 비율은 가난한 가구일수록 더 높다.

서민 주택의 부족은 분노와 정치적 갈등까지 야기하고 있다.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2016년 이후 집값이 30%이상 뛰면서 집주인들은 임대료를 대폭 올렸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지난 여름,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물가상승률로 정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스페인의 물가상승률은0.4%다.

주민의 70%가 세입자인 파리의 경우 주택 임대료는 2000년부터 2018년 사이 40% 오르자, 앤 히달고 파리 시장은 임대료 인상을 규제하는 엄격한 주택 규제 정책을 발표했다. 파리의 부동산 가격은 평방미터 당 1만 유로(1300만원)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했다. 히달고 시장은 파리가 ‘부자들을 빈민촌’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산층들이 시세의 절반 가격으로 주택을 살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원하는 주택 공급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주택 가격 급등의 충격이 가장 큰 곳은 아마도 베를린일 것이다. 30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베를린에 살던 노동자, 예술가, 학생들은 가족을 거느린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의 유입으로 계속 도시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주택 구입자와 투자자들이 두배로 늘어나면서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치솟았다. 최근 5년 동안 임대료가 50% 넘게 상승하자 시 당국은 5년 동안 임대료 동결을 시행했고(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규제조치다), 세입자들에게 임대료가 너무 비싸면 임대료 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이 정책이 시행되면서 독일의 부동산 주가는 크게 하락했다.

네덜란드 은행들이 올해 대출을 억제하기 위해 각종 조치를 취하는 동안에도, 네덜란드 가구들은 지난 3월 말 현재 5270억 유로(740조원)의 모기지 부채를 지고 있었는데, 이는 네덜란드 경제의 거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최근 네덜란드 주택 시장의 ‘체계적인 위험’이 금융 안정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 가격이 떨어지면 가구와 은행 모두에게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CB는 최근, 유럽 국가의 정치인들에게 자산 거품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과감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UBS의 홀츠히 부동산 팀장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영역입니다. 어느 누구도 주택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예측을 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합니다. 신문은 항상 ‘주택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거품은 아니다’고 말합니다만 그것은 거품이 터지기 전까지 얘기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