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와 유방의 차이점은 다른 사람을 인정했느냐에 있었다.

그 차이로 인해 한 사람은 제국의 황제가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항우는 자신이 항상 우월하다는 생각에 전장에서 맨 앞에서 공을 세웠고, 병든 병사들은 불쌍히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항우는 휘하의 장수들이 그 어떤 공을 세워도 자기만 못했다며 상 주기에 인색했다. 반면 항우에 비하면 유방은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았지만 휘하 사람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도록 믿고 맡겨 두었고, 나누어 가질 줄을 알았다. 때문에 강성했던 초나라 항우 진영은 갈수록 위축되고, 보잘것없던 유방 쪽은 커져갔다. 인정 받느냐 그렇지 못하냐가 전체 운명을 좌우했다고 볼 수 있다.

2010년 4월 소년법정에서 세간의 관심이 된 작은 재판이 하나 있었다.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훔친 죄로 구속된 소녀에 대한 것인데, 지금도 SNS를 통해 회자된다. 중년의 여성 부장판사가 담당했는데, 전과 14범의 소녀는 무거운 보호처분을 직감했다. 판결에 앞서 판사는 소녀에게 특별 주문을 했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하는 말을 힘차게 외쳐보라고.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게 생겼다.”

예상치 못한 재판장의 요구에 머뭇거리던 소녀가 나지막하게 “나는 이 세상에서...”라며 입을 뗐다. 그러자 더 큰소리로 따라 하라며 다시금 주문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 “이 세상에는 나 혼자가 아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따라 하던 소녀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소녀는 이미 14건의 절도, 폭행 등 범죄를 저지른 전력 때문에 무거운 형벌이 예상되고 있는데도, 판사는 ‘일어나 외치기’로 판결을 대신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너’

소녀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간호사를 꿈꾸었다. 하지만 남학생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뒤 삶이 뒤바뀌었다. 후유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고, 그 충격으로 홀 어머니는 신체 일부가 마비됐다. 이후 소녀는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려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이런 내용을 알게 된 판사는 ‘소녀는 가해자로 왔지만, 삶이 망가진 소녀에게 누가 가해자라고 말할 수 있나? 책임이 있다면 여러분과 우리 자신이다’고 말하며 ‘소녀가 다시 긍정적으로 살아 갈 방법은 잃어버린 자존감을 다시 찾아주는 것뿐’이라 말했다.

판사는 소녀를 법대로 불러 다시 말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할까? 그건 바로 너야. 이 사실만 잊지 말거라.” 그리고 소녀의 손을 잡고는 “안아주고 싶지만, 법대가 가로막혀 있어 이 정도 밖에 할 수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인데, 바로 서울 가정법원 김귀옥 부장판사의 이야기다. 16세 소녀에게 이례적인 ‘불처분 결정’을 내리며 모든 사람을 감동케 했다. 판사로부터 인정 받은 그 소녀는 그 뒤로 어찌되었을까? 모르긴 해도 긍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애써오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인 중에 한 사업가가 있는데, 간이 배 밖에 나온 사람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다. 자수성가해서 폭넓은 사회 관계를 맺고 살아온 경험의 발로라는 것은 잘 알지만, 옆에 있는 사람이 불안해 지는 경우도 많다. 매사 너무나 적극적인 그의 태도인데, 의외로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주위 사람들이 늘 찾곤 한다.

함께 저녁을 먹고 기분도 전환할 겸 노래방을 찾은 경우가 있었는데, 막 자리 잡은 터라 서로 눈치를 보며 서로에게 미루고 있었다. 그러자 그 지인은 조금도 주저함 없이 곡을 선택하고 자신 있게 노래를 불렀다. 사실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들어본 음치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음정은 차치하고라도 이미 화면에서 지나간 지 한참인 가사를 열심히 불러댔다. 그렇게 몇 번 하고 나면 그 저 그런 아마추어들 사이에선 그가 제일의 용자였다.

그런 그는 ‘전문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런 자리에서 하는 얘기라고 해 봐야 가족, 여행, 연애, 음식, 술 등이 대부분인데, 그는 스스로 연애 전문가이고 여행 전문가이고 술 전문가라고 한다. 내가 ‘솔로면서 무슨 연애 전문가세요?’ ‘술 조금만 드셔도 취하면서, 술 전문가라뇨?’라고 태클 걸지만,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해야 남이 전문가로 인정해 주는 거야”, “전문가가 되고 싶으면 전문가라고 먼저 얘기해!”라며 나를 오히려 나무랐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늘 그를 찾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 농담처럼 한 말을 그렇게 듣나 하고 생각도 했지만, 사실 그는 전문가였다. 자신이 경험이 부족하다 싶은 것은 주위 경험자들에게 늘 배우고 다녔다. 배우는 데에 부끄럼이 없었다. 나를 포함 주위의 사람들이 어느 한 가지 분야에서는 나름 인정 받는 실력가들이지만, 그를 따라 잡을 수는 없었다. 스스로 그렇게 전문가로 포장하고 인정 받는 것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우리들은 진짜 전문가지만,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칭하기에는 쑥스러워했을 뿐, 그 사람만큼 열정적으로 전문가임을 얘기하는 것에 미치지 못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전문가로 모신다.

예전에 군복무시절에 겪은 일이다. 상급부대에서 지휘검열이 나왔는데, 중대장 경험이 처음이었던 지휘관이 상병 병장들보다 더 벌벌 떨었다. 검열 단장으로 나온 대령, 중령들이 하는 아주 사소한 질문이나 지시에도 어쩔 줄 몰라 했다. 옆에서 병력이 대기하고 있어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에는 지시만 하면 바로 처리가 가능했음에도 중대장은 직접 물건을 들고 뛰어 다니고, 빗자루 같은 것을 찾아 허둥지둥 댔다. 보다 못한 병장들이 “이리 주십시오. 저희가 하겠습니다”고 하자, “너희들은 너희들 할 것을 찾아서 해”라고 버럭 화를 냈다.

중대장이 비질을 하고 있으니, 사병들은 그 보다 더 험한 일을 찾아서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바닥에 꿇어 앉아 물걸레로 훔쳐낼 수 밖에 없었다. 한 겨울이었고, 실내가 아니라 건물 앞 국기 게양대가 있는 곳이었다. 거기는 바람이 불면 언제든 모레 먼지가 쌓이고, 검불 따위가 날리는 곳이었음에도 순간적으로 윗선에 잘 보이려는 마음에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린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사병처럼 행동하는 지휘관 밑에 있는 병사들은 더 아래를 박박 길 수 밖에 없었다. 검열단의 기가 찬 표정이 아직도 뇌리에 깊이 남아있다.

조직에 흔한 일이 윗사람의 지시를 아래로 이전시키면서 옵션을 한 가지씩 추가하는 것이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서 그러는 것인데, 예를 들어서 회장이 사장단에게 월말에 자료를 볼 수 있도록 지시한다면, 사장단은 임원들에게 일주일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료를 준비해 두라고 한다. 임원들이 팀장들에게 거기서 또 일주일 전까지를 지시하고, 팀장들은 다시금 팀원들에게 또다시 일주일을 옵션으로 달아 지시한다. 결국 팀원들은 월말을 3주나 남겨둔 시점에서 미리 마감해서 작성하니 엉터리 자료가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자료는 매주 다시 해야 하는 자료의 개미지옥을 부를 뿐이다.

급하면 도둑질 좀 해도 될까? 그러면 그 부하들은??

“급한데 군량미 좀 먹으면 어때?”

옛날 어느 작고 힘없는 나라가 있었다. 주위로부터의 침범으로 인해 늘 시달려왔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다 새 왕이 즉위하여 절치부심 군사력을 기르기 시작했다. 많은 수는 아니라도 농사 짓는 틈틈이 군사훈련을 병행하며, 군량미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미운 이웃 나라와 항전 의지를 키워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장군이 참모들을 불러모아 고민을 토로했다.

“좀 있으면 모친 칠순을 맞이하게 되고 여러 관료들을 불러 잔치를 열려 한다.”

그러자 부하 장수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바쁜 와중에 모친 칠순 잔치에 관료들까지 신경 쓰시느라 노고가 많으십니다.”

“그런데 잔칫상에 제대로 올릴 것이 없어 군량미를 좀 쓰고자 하는데 어떻겠소?”

대부분의 참모들은 그렇게 헤도 좋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데 유독 한 장수만이 결기에 찬 눈빛으로 ‘절대 안돼’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군량미는 나라의 숙원사업을 이루기 위해 백성들이 땀 흘려 거둔 곡식입니다.”

“군량미 좀 먹는다고 큰 일 생기는 것도 아니고 또 채워 넣으면 되지 않겠소?”

“그 식량은 오직 전쟁을 대비해 군사들을 먹이기 위해 비축해둔 귀한 곡식입니다.”

“햇곡식을 오래 두면 군내 나고 맛이 없으니, 먹고 나서 새로 채우면 될 거 아니오?”

“곧 전쟁을 앞둔 상황인데, 한 톨의 군량미도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별 거 아닌 군량미 조금 가지고 되게 빡빡하게 구네. 다른 사람도 아닌 장군님 잔치에.”

결국, 반대했던 장수는 군에서 쫓겨났고, 여러 관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팔순 잔치를 성대히 치렀다. 새로이 추수한 곡식을 군량미로 보충하기는 했다. 그리고 때를 보아 전 장병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장병들 사이에선 소문이 흉흉했다. 전장에서 쓰일 군량미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장수가 장군 노모의 팔순 잔치 때문에 희생되어 버렸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이 나라는 전쟁에서 과연 이겼을까? 이 얘기는 실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어낸 얘기다. 전쟁을 위해 비축해 둔 군량미를 한 가족의 사사로운 잔치에 쓴 것은 도둑질이나 마찬가지다. 또 이런 도둑질에 휘하 참모들이 동참했다면 모두 공범이다. 이런 장군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장병은 과연 몇이나 있을까?

뭔가 잘못됐을 때 아래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 일련의 사건 중에서 맨 마지막으로 관련된 사람을 비난하고 그에게 책임을 묻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화는 풀릴지 몰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면 원인부터 파악해야 한다. 사실 그 원인은 개인이 아닌 조직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는 개인보다 그 위 다시 말해 ‘아래’가 아닌 ‘위’를 바라 봐야 한다. 도둑놈 휘하에서 목숨을 거는 일도 그렇고 사병처럼 벌벌 기는 장수 밑에서도 결코 용맹한 병사는 나올 수 없다.